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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패션과 문화로 또래를 움직여라

중앙일보 2012.07.21 00:36 종합 31면 지면보기
남아공 수도 요하네스버그의 빌딩에 축구 스타 디디에 드록바를 모델로 쓴 에이즈 예방 캠페인 포스터가 보인다. 연예·패션 등 젊은이들의 또래 문화를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중앙포토]


또래 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

티나 로젠버그 지음

이종호 옮김, RHK

532쪽, 2만2000원




“압도적이고 매혹적 사례로 가득한 책.” 이 신간에 대한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서평인데, 실은 그 이상이다.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움직이려는 꿈을 가진 거의 모든 이들에게 멋진 암시를 준다. 당연히 대선 캠프, 기업 홍보, 선교 담당자, 그리고 국내 보수·진보 양 진영의 브레인까지 머리맡에 둬야 할 참고서다.



 신간이 다룬 사례는 우리가 매일 부딪치는 사안이다. 빈곤·폭력·억압에서 젊은층의 부글거리는 사회적 분노 내지 집단 무력증…. 여기에 10대들의 흡연·음주, 성인들의 주폭(酒暴)문화도 골치 아프다. 책에도 비슷한 사례가 숱하다.



 이를테면 남아공에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10대 미혼모 문제. 한때 사망률은 50%를 넘어섰는데, 에이즈 미혼모가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면 자녀도 자동 감염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분유를 먹이라고 권장하지만 전혀 안 먹히는 분위기다. 왜? 분유를 먹이는 순간 자신이 감염자임을 온 동네에 자랑하는 꼴이다. 순간 왕따가 되고, 남자·남편에게 버림받는다.



 그게 또래 압력(peer pressure)의 무서운 힘이다. 또래란 같은 나이만이 아니라 그룹 동료, 공동체 구성원을 포괄하는데, 그들 집단문화의 압력이 그만큼 강력하다. 때문에 에이즈 소녀들은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모유 수유를 한다. 그럼 이 책은 뭔가. 또래 압력을 거꾸로 활용하자는 발상의 대전환이다.



 실제 성공사례가 숱하다. 남아공 ‘러브 라이프’ 캠페인 대성공이 그렇다. 에이즈가 왜 무서운가 겁주는 방식을 포기했다. 대신에 광고전문가를 참여시켰다. 10대들이 좋아하는 연예정보·패션을 활용해 ‘러브 라이프’가 라이프 스타일이나 상품 브랜드인양 포장했다. 똘똘한 소녀들을 조금씩 끌어들였다.



 그 또래 그룹에 끼는 게 시크하고(멋지고), 세련된 무엇이라는 분위기를 띄웠고, 그때 에이즈 예방 정보를 뿌렸다. 콘돔 없이 섹스하자는 남자친구를 어떻게 발로 차버렸는지 한 소녀의 사례를 소개했고, 따라 하도록 했다. 삽시간에 분위기 대반전! 1998년을 기점으로 에이즈 사망이 확 떨어지기 시작했다.



 또래 문화의 힘은 정치 민주화도 앞당긴다. ‘발칸의 도살자’ 밀로셰비치를 쫓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가 현장에서 보니 세르비아 민주화 운동 오트포르(otpor·저항)는 전혀 새로운 문화전략을 구사했다. 막 유행하는 표어·대중음악을 동원했고, 정권을 조롱하는 길거리공연을 했다.



 즉 재래식 정치공세나 정당정치와는 전혀 달랐다. 오트포르에 낀다는 건 그 나라 1020세대 또래 그룹에게 영웅 탄생을 뜻하도록 살살 유도했다. 후줄근하던 10대 건달 녀석 하나가 경찰 한 명을 멋지게 따돌린 행위 하나로 소녀들의 우상이 되고, 삽시간에 만나고 싶은 남자 영순위로 떠오르는 식이다.



 “오트포르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요. 우리 운동은 멋진 삶에 관한 거죠. 정치를 신나는 것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게 많으실 것이다. 지난해 ’청콘(청춘콘서트)’이 왜 한국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는지, 그 무대의 주인공 하나가 대선 예비주자로 떴는지도 대충 이해된다.



 아직도 긴가 민가 한다면, 저자의 다음 말에 밑줄을 쫙 긋자.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거나 (바꾸려는 프로그램은) 대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거나,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이런 (재래식) 전략은 틀림없이 실패한다.” 또래 압력의 힘을 사회변화 지렛대로 활용하되 “축제처럼 즐겁게 하라.”



 저자는 그걸 또래 문화를 통한 사회적 치유(social care)라고 명명했다. 반복하지만 신간은 ‘왕건이’인데, 누구라도 자기 눈높이만큼, 관심만큼 얻어갈 것이다. 군대 통솔, 광고, 선거 등 어느 분야에도 해당된다. 즉 대중의 마음, 유권자들의 머리, 시장의 움직임을 훔치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현재까지 볼 때 한국 좌파는 이 책의 가르침을 거의 본능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모자란 우파는 세상을 개탄만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이 책은 전략전술서가 아니고 포스트모던해진 세상의 개혁에 관한 포괄적 저술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 프리랜서 기자로 첫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와 비슷한 책으론 『티핑 포인트』(말콤 글래드웰 지음)과 『마이크로 트렌드』(마크 펜 등 지음)이 있다. 왜 사회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변화하는가, 1%의 작은 변화가 큰 변화로 이어진다는 내용 등인데, 구체성 면에서는 이 책이 한 수 위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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