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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목소리와 소리, 그리고 아침이슬

중앙일보 2012.07.21 00:05 종합 38면 지면보기
서승욱
도쿄 특파원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지난달 29일이었다. 금요일 밤마다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의 총리관저 앞에서 열리는 ‘반(反)원전’ 시위대의 숫자가 확 불어났다. 간사이 전력 산하 오이(大飯)원전의 재가동을 정부가 밀어붙인 직후였기 때문이다. 3월 관저 앞 데모가 처음 시작됐을 때 300여 명에 불과했던 시위대 수가 날이 갈수록 늘더니 그날은 주최 측 추산으로 15만 명을 넘었다. 시위대의 함성은 퇴근길의 노다 총리에게도 들렸다. 이때 노다 총리가 주변의 경호관과 경찰관들에게 했다는 한마디가 문제가 된 것이다. “큰 소리(오토)구먼….”



 일본어로 사람의 목소리는 주로 ‘코에(こえ·<58F0>)’로, 그 밖의 소리는 ‘오토(おと·音)’로 표기한다. 노다의 실수는 시위대의 함성을 ‘목소리’가 아닌 ‘소리’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얌전하고 온순하기로 유명한 일본 국민들이 1960년 미·일 안보조약 체결 반대 시위 이후 52년 만에 길거리로 뛰쳐나왔는데, 총리가 이를 ‘잡음’쯤으로 표현했으니 뭇매를 맞는 건 당연했다. 누가 이 말을 언론에 전했는지 경위는 불투명하지만 노다의 발언은 이후 신문사 논설위원들과 지상파 TV 메인 뉴스 앵커들의 먹잇감이 됐다. 국회에서 이 발언을 추궁당한 노다는 “솔직히 그 말을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했고, “국민들의 목소리(코에)를 잘 듣고 있다”고 자신의 발언을 정정했다.



 국민의 반대를 뚫고 소비세 인상과 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이는 노다식 불도저 정치는 일본 내에서 강한 반발을 부르고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본인은 억울할지 몰라도 이번 발언으로 그의 불통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임기 초인 2008년 시위 관련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문제가 된 노다와 달리 이 대통령의 발언은 참모들과 머리를 맞대고 정교하게 준비한 연설문의 한 대목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대해 이 대통령은 “시위대의 아침이슬 노래를 들으며 국민을 편안히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라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다고 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폄하한 게 노다의 문제였다면, 이 대통령의 경우엔 너무 짜맞춘 듯한 부자연스러움, 또 진정성이 문제가 됐었다.



 ‘아침이슬’ 발언으로부터 4년여가 흐른 지금, 이 대통령은 정권을 함께 일군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에 들어가는 참담하고 불우한 임기 말을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위기 극복 등 잘한 일까지 묻히고 있다. 4년간 정권 내부의 동업자와 야당으로부터, 언론으로부터, 국민들로부터 측근들의 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그런 우려들을 단순한 ‘소음’이나 ‘소리’가 아닌 ‘목소리’와 ‘충언’으로 받아들였다면 이 대통령의 임기 말이 이토록 우울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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