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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고전 읽는 아이가 희망이다

중앙일보 2012.07.21 00:05 종합 38면 지면보기
정진홍
논설위원
# 아이들 방학이 시작됐다. 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딸아이가 저녁식사 자리에서 ‘소학’ ‘소학’ 하길래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가만 들어보니 방학 동안 『소학(小學)』 읽기를 해야 한단다. 학교에서 아예 한글로 번역된 『소학』 한 권을 읽으라고 내줬다며 책을 펼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인즉 “한 쪽도 채 안 읽었는데 벌써부터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며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고 웃는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시작하는 법! 방학 동안 영어공부 하고 수학공부 하라고 등 떠밀지 않고 『소학』 읽으라고 책까지 내준 학교가 참 고마웠다.



 # 『소학』은 본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가 제자 유자징(劉子澄)에게 일러 편집하게 한 후 교열·가필한 것이다. 중국 남송시대인 1187년께 만들어졌다 하니 900년 가까이 된 고전이다. 내용은 일상생활의 예의범절, 수양을 위한 격언, 충신·효자의 사적 등을 모아놓은 수신서(修身書)로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선 여덟 살 전후면 『소학』을 읽혔다. 염두에 둔 대상이 아동이라지만 정작 그 내용을 보면 성인이 되어서도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소학』만 깨쳐도 일생 사는 데 지장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삼성전자에서 최고경영자(CEO)만 20년 가까이 한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은 어릴 때 큰아버지 밑에서 『소학』까지 뗀 것이 일평생 단단한 바탕이 됐노라고 말한다. 그만큼 『소학』은 단지 아동교과서가 아닌 삶의 단단한 지침인 셈이다.



 # 사실 어디 『소학』뿐인가. 사람들이 좀 우습게 여기는 『천자문(千字文)』도 결코 예사 것이 아니다. 4자시(四字詩) 250수로 구성된 그 안에는 우주와 자연 그리고 삶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천지현황(天地玄黃)’ 즉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첫 구절에서 ‘하늘이 푸르다’ 하지 않고 ‘하늘이 검다’고 언명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우주적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빛의 산란 속에서 파랗게 보일 뿐 하늘은 본래 검다. 천자문은 놀랍게도 그런 원리를 첫 구절부터 담고 있다.



 #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에는 학동들이 맨 처음 『천자문』을 통해 한자에 대한 음훈을 깨침과 동시에 우주와 자연원리에 눈뜨게 하고, 그 다음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등을 읽으면서 기초적인 문장해독 훈련과 함께 교훈적인 내용을 터득한 후 『소학』과 『통감(通鑑)』을 배워 문리(文理)를 트고 식견을 넓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역경(주역)』의 순서로 읽었다. 이 고전 읽기의 커리큘럼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엔 앞으로의 천년도 넉넉히 견지해 갈 지혜와 방향이 담겨 있다. 내가 처음 우리 고전을 접한 것은 40년 전 여름방학이었다. 당시 난 서울 숭의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지금 내 딸과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었다. 고전 읽기 삼매경에 빠졌던 그해 여름, 난 참 많이 자랐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키웠다.



 # 요즘 주위에서 『논어』를 읽는 이가 적잖다. 그런데 잘 읽히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도 꽤 있다. 그러면 『논어』를 접고 『대학』으로 돌아가 읽고 『대학』이 읽히지 않으면 『소학』으로 돌아가 다시 읽으라고 권한다. 아예 『천자문』부터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초가 단단해야 문리도 트인다. 마찬가지로 고전은 삶의 기초다. 그래서 그 기초를 단단히 익히면 문리가 트이듯 미래를 보는 눈도 열린다. 곱씹어 읽으면 스스로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이 여름에 방학 맞은 아이들이 고전의 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처럼 우리도 주저 말고 고전의 세계에 빠져보자. 정말이지 세상에 쓸데없이 넘쳐나는 공해 같은 잡서들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처럼 거기 미래가 담겼고 그것이 희망을 열기 때문이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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