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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재벌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일보 2012.07.21 00:03 종합 36면 지면보기


재벌개혁 논쟁이 뜨겁다. 재벌개혁 없는 경제민주화는 허구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재벌개혁이 투자와 일자리를 축소시켜 결과적으로 서민에게 해롭다는 반론도 있다. 경제력 집중 심화 문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쪽은 심화됐다고 하지만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재벌과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 여부도 논쟁 거리다.



경제민주화 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재벌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재벌개혁 논의의 첫걸음이다. ‘재벌’ 문제는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의 지배권 승계와 이러한 불법·편법적 승계가 용인되도록 만드는 경제력 집중의 문제다. 따라서 ‘재벌’ 문제를 ‘대기업’ 문제로 둔갑시키는 것은 재벌개혁의 초점을 흐리는 시도다.



 지배권 승계와 경제력 집중은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행위의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가 항상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 사회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 사익 추구 행위는 철저히 막고, 개인의 사익 추구라는 에너지의 발산이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유인하는 법과 제도를 확립하자는 게 시장경제체제다. 그런데 재벌의 지배권 승계와 경제력 집중은 시장경제체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재벌 지배권 승계와 경제력 집중은 계열사 간 또는 계열사와 총수 일가 간 출자와 내부거래, 문어발식 사업영역 확장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부정하고,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분식회계, 배임, 횡령 등의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 이러한 명백하고 중대한 범법 행위에 대해 법원은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경제력 집중은 언론계·법조계·정치계·관계·학계에 대한 관리와 영향력 행사를 통해 사회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행위를 용인하게 만든다. 또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충격을 경제위기로 심화시키고 산업의 혁신과 역동성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따라서 재벌개혁은 시장경제체제의 정립을 위해 꼭 필요하다.



 재벌개혁은 재벌 총수 일가에게 “불법·편법적 방법으로 종잣돈 및 종자기업 만들기와, 종자기업을 중심으로 한 출자구조의 자의적 변경을 통해 기업집단의 지배권을 승계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배권 승계·강화와 경제력 집중 심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구조적 정책수단과 행위규제 정책수단이 함께 사용돼야 한다. 구조적 정책으로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사업지주회사 금지 등을 포괄하는 소유·지배구조 개혁이 필수적이다. 행위규제로는 부당내부거래의 실효적 규율이 필요하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가 집행된다면 재벌은 지배권 승계의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차명거래에 더 의존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차명거래의 불법화와 그 유인을 제거할 수 있는 처벌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경제력 집중 억제책으로는 기업집단의 자금력을 이용한 개별시장에서의 지배력 남용에 대한 규제와 공기업 인수 참여 제한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성장에 재벌의 기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건전한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어렵다는 것 역시 대다수가 공감하는 바다. 재벌개혁은 총수 일가의 역할이 건전한 주식회사 제도에서 대주주의 역할로 전환되도록 유인함과 동시에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경제민주화의 초석이 될 것이다. 오늘날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과 지배권 승계·강화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계급화를 동반하고 있다.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확립뿐만 아니라 정치민주주의의 형해화를 막기 위해서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투자와 일자리 관점에서 다시 보자



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교수
여야와 국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들 재벌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정작 객관적 지표를 살펴보면 이런 상황이 의아해진다. 매출액 비중을 보자. 2000년 당시 전 산업(금융보험업 제외) 매출액에 대한 4대 그룹 매출의 비중은 25.2%였는데, 2010년에 18.8%로 오히려 줄었다.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다는 아우성이 무색하다. 자산을 기준으로 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격차도 대체로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도 재벌이 악한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좌절한 대중이 희생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 것 같다. 7% 성장을 구호로 내걸고 출발한 이명박(MB) 정부였는데, 현실은 전혀 딴판으로 전개됐다. 성장률은 3% 수준이고, 내수는 엉망이다. 유럽 재정위기 등의 핑곗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국민의 기대는 좌절됐다. 모든 어려움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때문인 것 같아 보인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돈을 쓸어 담고 있으니 서민의 어려움이 재벌 탓인 것으로 보인다. 내수 재벌들의 어려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재벌개혁으로 서민들의 삶이 나아질까? 그럴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투자 위축이다. 순환출자 규제와 출자총액제한 부활은 재벌 계열사의 숫자를 줄이기 위함이다. 계열사가 느는 것은 투자가 늘기 때문인데, 계열사를 못 늘리게 하면 당연히 투자도 못 늘어난다. 그 결과 일자리 공급 역시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다.



 기존 계열사를 떼어내야 한다면 더욱 문제다. 이미 빵집이니 MRO 같은 계열사를 떠밀려 매각하는 과정에서 그곳의 임직원과 소액주주는 강제로 소속이 바뀌는 봉변을 당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르겠다.



 투자 위축은 중소기업에도 나쁜 소식이다. 지난 10년간의 통계를 보면 대기업과 하도급 관계인 중소기업의 순수익률은 4.65%로서 하도급을 주는 대기업의 4.75%와 거의 같다. 반면에 하도급 관계가 아닌 일반 중소기업의 순이익률은 2.4%다. 단가 후려치기 등의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대기업 협력업체가 되려는 이유는 그나마 그게 가장 낫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면 그런 기회도 줄어든다.



 대형마트를 억제해서 재래시장을 보호하려는 정책 역시 서민에게 불리할 수 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재래시장과 동네수퍼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2만2500개인데,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7만3000개다. 생긴 일자리가 5만500개나 더 많다. 대형마트를 막는 것은 소비자가 싸고 좋은 제품에 접근할 기회를 막는 것임과 동시에 서민의 일자리 창출도 막는 것이다. 젊은 소비자가 찾아갈 수 있도록 재래시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옳은 접근법 아닐까.



 물론 재벌과 관련해서 고쳐야 할 것이 분명 있다. 법을 엄하게 세우는 일이다. 불법을 저질렀는데 재벌이라고 봐줘서는 안 된다. 기술 탈취 같은 불법행위도 철저히 처벌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특별사면권은 가급적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재벌개혁은 거기까지여야 한다. 투자를 위해 계열사를 늘리거나 좋은 제품을 값싸게 공급하는 등의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막아서는 안 된다. 작금의 재벌개혁 움직임은 정상적 기업활동마저 범죄로 만들어가고 있다.



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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