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랑스서 온 의궤, 대구 납시오

중앙일보 2012.07.18 01:22 종합 21면 지면보기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 행렬 중 뒷부분인 왕후 부분.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나오는 그림이다. [사진 대구박물관]


정조가 40세에 쓴 글과 글씨.
145년 만에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가 대구를 찾아왔다.

대구박물관 외규장각 의궤전
영조 혼례 행차, 정조 친필 …
글·그림으로 보는 조선 왕실
9월 9일까지 두 달간 열려



 국립대구박물관(관장 함순섭)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되었다가 지난해 반환된 의궤를 중심으로 한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와 조선왕실 혼례이야기’를 마련, 17일부터 9월 9일까지 시민들을 맞는다. 조선 의궤는 국가와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것으로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됐다.



 17일 전시장을 찾았다. 입구에 병인양요에 참전한 프랑스 해군 쥐베르가 『조선원정기』에 남긴 의미심장한 글귀가 보인다. ‘이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조건릉천봉도감의궤』의 한 부분. 정조의 건릉을 옮긴 과정을 기록한 의궤다.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가 강화도에 지은 규장각의 분소였다. 정조는 한양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외규장각에 임금이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 등 왕실의 주요 자료를 옮겨 보관해 왔다. 프랑스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강화도를 점령하고 의궤 등 189종 340여 권을 약탈한 뒤 외규장각을 불태웠다. 그 중 의궤 297권이 지난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가운데 대구엔 『인조국장도감의궤』 등 19종 22권이 내려왔다.



 전시된 의궤는 크게 두 종류다. 어람용과 4대 사고 등에 나누어 보관하던 분상용 의궤다. 같은 내용이지만 어람용 의궤는 각 장에 왕을 상징하는 붉은색 테두리를 그은 뒤 해서체로 쓰고 천연안료로 그림을 그렸다. 분상용은 그에 비하면 격이 떨어진다.



 이번 전시는 여러 행사 중 혼례·장례와 관련된 의궤를 정리했다. 의궤 이외에 정조어필과 영조옥책(영종을 영조로 묘호를 바꾼 뒤 옥에 적은 책) 등 왕실 관련 유물 등 모두 80여 점이 진열돼 있다.



 건너편 기획전시실에는 조선왕실의 혼례가 별도로 꾸며져 있다. 왕실도 신부감은 미모를 중시했다. 『세종실록』에는 ‘(며느리 감이) 인물이 아름답지 않다면 불가할 것’이라 적혀 있고 『세조실록』에는 ‘세자빈 간택을 위해 14세 이하 처녀의 혼례를 금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영조와 정순왕후 혼례의 잔치행렬’이다. 영조는 66세가 되던 해 15세의 정순왕후 김씨를 계비로 맞았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는 당시 영조가 친영례를 마치고 정순왕후와 함께 궁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담은 50쪽에 달하는 그림이 실려 있다. 이 그림에는 말 397필과 인물 1299명이 생동감있게 표현돼 있다.



 대구박물관 김희경 연구원은 “의궤에는 왕은 신성시돼 그려져 있지 않은 게 특징”이라며 “의궤를 보면 조선의 기록 정신과 예술적 품격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 50쪽 그림을 이어붙여 길이 1560m 한 장으로 만들어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전시장에는 또 아소갤러리(관장 조덕순)가 야생화 40여 점을 배치해 관람객을 맞기도 한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