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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슈] 목조문화재 흰개미 공포 … 탐지견, 너만 믿는다

중앙일보 2012.07.18 00:51 종합 22면 지면보기
흰개미 탐지견 보람이가 훈련사 이명호씨의 안내를 따라 경주향교 목조 기둥의 냄새를 맡고 있다. 흰개미 탐지경력 4년의 베테랑 보람이는 원래 폭발물 탐지에서 흰개미 탐지로 ‘전공’을 옮겼다.
한여름 흰개미와의 전쟁-.


왜 탐지견인가
흰개미 특유의 냄새 잘 맡아
과거 서식했던 흔적까지 확인

 지난 10일 경주 한복판에 있는 경주향교. 신라 신문왕(682년) 때 세워져 조선 선조(1600년) 때 중건된 문화재다. 경북 유형문화재 191호로 지정됐다. 향교 대성전 앞에서 조사원 4명이 땀을 흘리고 있다. 탐지견 두 마리도 킁킁댄다. 목조 문화재의 천적으로 꼽히는 흰개미를 찾기 위해서다.



 흰개미는 나무구멍으로 침투해 안쪽에서부터 목조 건물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목조 문화재의 저승사자’로 불린다. 특히 지구온난화와 함께 한반도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흰개미의 개체수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920년대, 한반도 일부에만 서식하던 흰개미는 2004년 조사에서는 제주도에서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고르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흰개미의 증가로 국내 목조 문화재 보호에 비상이 걸렸다. 관련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부터 5년 주기로 중요 목조 문화재에 대한 전수조사와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피해신고가 있을 때만 조사를 실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흰개미 조기방재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이다. 경북 경주에서 목조 문화재 흰개미 피해조사를 하고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조사팀을 10일 따라 나섰다. 지난해(57건)에 이어, 올해는 대구·경북지역의 목조 문화재 63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흰개미 잡는 탐지견=오전 10시 30분. 탐지견 두 마리가 경주 향교를 뛰어 다닌다. 삼성생명의 지원을 받아 삼성에버랜드가 관리하는 흰개미 탐지견 보람(잉글리시 스프링거 파니엘)과 이룸(라브라도 리트리버)이다.



 탐지견들은 흰개미의 호르몬 냄새에 반응한다. 따라서 현재 흰개미의 존재 여부뿐 아니라 과거에 살았던 흔적까지 찾아낸다. 원래 마약 및 폭발물 탐지견으로 일하던 이 개들은 1년여의 훈련기간을 거쳐 2007년 말부터 흰개미 조사에 투입됐다. 대성전의 나무기둥 주변을 돌며 냄새를 맡던 보람이가 한 기둥 앞에서 갑자기 멈춰 선다. 훈련사 이명호씨가 줄을 당겨도 꼼짝하지 않고 기둥만 노려본다. 이 자리에 흰개미의 흔적이 있다는 신호다.



 탐지견이 피해구역을 찾아내면, 조사팀이 극초단파를 이용한 특수장비 티쓰리아이(T3i)를 나무에 대고 흰개미의 현재 서식여부를 판별한다. 전자기파를 나무 속으로 쏴 반사돼 나오는 신호를 수집하는 방식이다. 이명성 학예연구사는 “흰개미 탐지견을 이용하면서, 과거에는 어렵던 흰개미의 ‘즉시 발견’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날 향교에서는 흰개미 흔적 10여 건이 발견됐지만, 정밀조사 결과 현재 흰개미는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흰개미는 축축한 나무 속에 서식한다.(사진 위) 흰개미가 갉아먹은 목조건축. [사진 산림과학원, 국립문화재연구소]
 ◆방재 매뉴얼 시급=현재 국가가 지정한 국보·보물·중요민속문화재(2280건) 중 14.1%에 달하는 321건이 목조건축물이다. 아직 전수조사가 끝나지 않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중 상당수가 과거 흰개미 피해를 입었거나 현재 피해를 입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전북 부안의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제291호)과 개암사 대웅전(보물 제292호), 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 목조가옥들의 흰개미 피해가 확인돼, 긴급 방재를 실시한 바 있다.



 흰개미가 살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 피해 건축물 전체를 천막으로 감싼 후 약품을 살포해 살충·살균하는 훈증처리를 한다. 주변 토양에도 살충제를 뿌린다. 최근에는 건물 주변에 먹이를 놓아 흰개미를 다른 쪽으로 유인하는 방식이 사용되기도 한다. 문화재청 김명준 사무관은 “흰개미 예방요령, 피해확인 방법, 주거환경 관리법 등을 담은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재뿐 아니다. 한옥을 짓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일반 가옥의 흰개미 피해도 늘고 있다. 목조 주택이 많은 일본의 경우, 집을 매매할 때 흰개미가 없음을 증명하는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의 관련 법안이 구비돼 있다.





◆흰개미=전세계적으로 2400여 종이 있다. 한국에는 일본흰개미 한 종만 서식한다. 목재 안에 들어가 동그랗게 구멍을 파고 생활한다. 땅 밑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육안으로 발견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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