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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유럽 경제는 깜깜한데 독일 차만 빛나고 있다

중앙일보 2012.07.18 00:33 경제 4면 지면보기


최근 프랑스의 PSA 푸조-시트로앵은 국내외 공장에서 8000여 명의 인력을 구조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실적 부진에 대한 대응책이다. 39년간 가동해온 프랑스 오네 공장을 2014년 폐쇄하기로 했다. 여기서 일하던 인원만 3000명이다. 이에 비해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올 1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총 225만 대를 팔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대수가 11.3% 늘었다. BMW는 11.2% 증가한 43만 대로, 1분기 사상 최대 판매 기록을 달성했다.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8.9%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경제위기 속에서도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고속 질주 중이다. 같은 유로존 내인데도 프랑스와 독일 자동차 업체가 완벽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강국 명암 가른 노동유연성



 이에 대해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독일 자동차 산업의 강점은 탄력적인 고용조정뿐 아니라 해고를 동반하지 않는 독일식 노동 유연성”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또 “유럽 내 많은 기업이 생존을 위해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독일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고용 유연성 제도를 통해 기업들의 인력 구조조정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심각한 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에서 노동 유연성의 결과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노동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해 자동차 생산규모가 각각 세계 금융위기 이전의 75%와 60% 수준에 머물러 있고, 완성차 공장 가동률도 70% 미만에서 정체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 유연성이 높은 독일과 영국은 정반대다. 1950년대까지 미국에 이은 제2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세계 최대 완성차 수출국이었던 영국은 강성 노조, 치솟는 임금 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70년대 이후 자동차 강국의 지위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상황이 다르다. 재규어랜드로버는 3교대제를 통해 24시간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브랜드가 경쟁적으로 현지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등 영국 내 자동차 생산이 활기를 띠고 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기간제·시간제·파견 등 비정규직 고용규모는 2010년 783만5000명으로 2003년보다 27.7%(172만 명) 늘었다. 또한 정규직도 2003년 2282만8000명에서 2010년 2306만9000명으로 늘어나는 등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로통계국에 따르면 2011년 독일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56%가 정부가 주관하는 직업교육과 훈련에 참가하고 있고, 16%는 기업에 채용된 직후 수습 기간을 거치며 적응단계를 밟는다. 결국 안정적 고용으로 옮겨가기 위한 과도기적 고용 형태로 비정규직 고용이 널리 채택되고 있는 셈이다. 독일은 한편 파견근로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 실업자의 정규 노동시장 복귀를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해 왔다. 전에는 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최대 2년간만 고용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2년’이란 기간 제한이 없어졌다. 또 사업주와 파견근로자 간에 최대 2년, 3회까지 계약 갱신을 허용했다.



유로존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노동유연성을 앞세워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사진은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BMW 공장에서 근로자가 차량을 점검하는 모습. [블룸버그]


 영국 노사관계의 기본 틀과 노동정책 역시 대륙 국가들에 견줘 상당히 유연한 편이다. 최근 자동차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프랑스는 노사 현안 해결에 있어 노·사·정이 참여하는 삼자 합의주의를 택하고 있는 데 반해 영국은 정부의 직접적 개입을 배제하고 노사 간 자율적 교섭을 중시하는 ‘자발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임금협상도 대륙 국가들은 산업별 교섭을 하지만 영국은 주로 기업 단위에서 교섭이 이뤄져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경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음에도 강성 노조와 산업별 임금협상, 그리고 까다로운 해고 조건으로 인해 자동차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감산에 나서고 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차를 만드는 것보다 아예 생산대수를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피아트는 올여름 하루 평균 100만 유로에 달하는 비용 절감을 위해 8일간 미라피오리 지역본부 가동을 멈추기로 해 약 5400명의 근로자가 무노동 기간의 임금을 받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페인은 과거 독재정권하에서 노조가 탄압을 받았던 역사로 인해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과중하다는 평가다. 스페인 양대 노동단체인 ‘노조연맹’과 ‘노동총연맹’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규직 근로자에 대해 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도 올려줘야 하는 물가연동 임금제를 유지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포드는 지난해 말 스페인 발렌시아 공장에서 4000명을 한시적으로 감원했고, 르노는 올해 상반기 스페인 발라돌리드 공장에서 29일간 조업을 정지했다.



 한국의 노동 유연성은 어떨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국제평가기관들이 내놓은 각종 노동 유연성 관련 지표 순위에서 한국은 대체로 하위권이다. 2008년 OECD가 29개국을 상대로 한 ‘정규직 고용보호 수준’ 조사에서 한국은 19위였다. 지난해 국제경영개발원이 59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시장 유연성 조사에선 36위, 같은 해 세계경제포럼이 142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노동시장 효율성 분야에서 76위였다.



 한편 현대·기아차 노조는 지난 13일에 이어 20일에도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사내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이들의 주장이 현행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 들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동유연성 외부 환경변화에 인적자원이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배분 또는 재배분되는 노동시장의 능력을 뜻한다. 노동시장유연성이라고도 한다. 국제기구, 국가 또는 조사 주체에 따라 평가방법과 수치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유연한 근로시간, 노동시장의 인프라, 임금 결정방식과 신축적 조정 가능성, 해고의 용이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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