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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화는 입으로부터 온다

중앙일보 2012.07.18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정욱
정치부문 차장
이명박 정부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형 이상득, 그의 보좌관 출신으로 ‘왕차관’이라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박영준. 두 사람은 지금 서울구치소에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더 아픈 법이니, 이들이 느끼고 있을 참담함을 일반인들이 상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이들에게 가슴 아픈 말을 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이들의 추락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들이 대통령 친인척·측근들의 운명에 정통해져서일까. 정권 말기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의구심을 확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은 바로 당사자들의 입이었다.



 2008년 2월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박영준 총괄팀장은 정권 인수위 출입기자들을 만나 “장·차관 후보자 5000명의 자료를 훑었다. 이제 사람 이름만 봐도 지겹다”고 말했다. 인선작업의 고충을 토로하는 취지였다지만 듣는 쪽은 달랐다. ‘내가 실력자다’라고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었다. 권력에 민감한 공직사회와 기업은 새 정부의 실세가 누구인지 금세 알아챘다. 어디에 줄을 대야 하는지 숨죽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의 고민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그 후 이 정부 내내 그에게 사람이 몰려들고 “일이 되려면 박영준을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떠돌았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아예 입을 다물거나 “그저 실무작업을 도왔을 뿐”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2008년 3월 이상득 의원은 포항에서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이명박이가 내 말을 들을 것 같으냐” “대통령이 내 형이냐”고 말했다. 그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단성명 직후 터져나온 격정 발언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맥락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제 막 출범한 정권의 힘이 서슬퍼런 상황에서도 대통령의 이름을 직함 없이 마구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경우에 따라선 대통령에게도 호통칠 수 있는 사람. 국민들에게 각인된 인식은 이랬다. 그러니 정권 내내 만사형통(萬事兄通)이란 말이 떠도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통령에 대해 각별한 예의를 갖췄어야 했다.



 두 사람의 말은 결국 두 사람에게 벗을 수 없는 족쇄가 됐다. 실제와 상관없이 비리 의혹이 터져나올 때마다 그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이 같은 발언이 없었더라면 결백을 주장하는 그들의 말을 믿어주는 국민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게 틀림없다. 이 정부에서 각각 원로그룹과 실무그룹의 좌장격이었던 두 사람이 보다 언행에 신중했다면 잇따라 터져나오는 청와대 주변 비리 역시 크게 줄었을 게 틀림없다. 화(禍)는 입으로부터 온다는 옛말은 여전히 과녁을 찍어 맞힌다.



 이명박 정부의 또 다른 창업공신 정두언 의원의 발언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이상득 전 의원 등을 겨냥해 “그분들은 다 누렸지만 나는 이 정부 내내 불행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느끼는 불행을 국민들은 공감할 수 있을까. 김영삼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한보사태 때 “나는 깃털에 불과하다”는 홍인길 전 총무수석의 말이 떠올라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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