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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불체포특권은 죄가 없다

중앙일보 2012.07.18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교통사고를 당한 부부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남편은 두 다리를, 아내는 손가락을 못 쓰게 될 위험에 놓여 있다. 남편은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아내를 먼저 치료해 달라고 한다. 의사는 남편이 고집을 피우자 아내부터 수술하기로 한다. 그 순간 다리 하나를 잃을 수도 있는 제3의 응급환자가 “남편 쪽이 우선권을 포기했으니 나부터 봐 달라”고 요구한다. 대체 누구부터 치료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 교수인 레오 카츠의 『법은 왜 부조리한가』에 등장하는 ‘응급순위 순환론’이다. 카츠의 결론은 “남편이 아내에게 우선권을 넘기는 걸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논리로 쌍방이 합의한 성매매나 장기매매를 처벌하는 법체계를 변호한다. 이 응급순위 순환론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논란에 대입해 보자. 불체포특권을 의원들 스스로 국민에게 반납할 수 있는 것일까.



 헌법학개론 책을 펴 보면 불체포특권은 의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의원의 신체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로 소개돼 있다. ‘국회의원은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는 헌법 조항은 1948년 7월 17일 헌법 제정 때부터 있었다. 17세기 전제군주에 맞섰던 영국 의회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1787년 연방헌법에 명문화했다. 대부분의 민주국가는 불체포특권을 두고 있다. 1당 독재였던 소련 헌법에도 ‘최고회의 대의원은 최고회의의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다.



 왕이 마음대로 의원들을 가둘 수 있는 시대도 아닌데 이 특권이 왜 필요할까. 3권 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다. 행정부나 사법부가 수사·재판을 통해 의회 기능을 무력화하고 의원, 특히 야당 의원을 정치적으로 탄압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수의 헌법학자가 “평등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며 국회의원은 이 특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보는 이유다. 헌법 교수 출신인 양건 감사원장은 『헌법강의』에서 “폐해가 있다고 해도 법률로 불체포특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책임을 물을 대상은 불체포특권이 아니다. 특권을 악용해 온 의원들이다. 수사받는 동료 의원을 보호하려고 ‘방탄용’ 임시국회를 여는 행태를 되풀이했다. 앞으로도 남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남용을 우려해 개헌 혹은 국회법 개정으로 특권을 없애거나 제한할 경우 국회는 검찰 수사의 칼날 아래 무방비로 놓이게 된다.



 아무리 국회의원들이 밉다 해도, 그들이 원한다 해도 불체포특권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의원들이 방탄국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 약속을 지키면 되는 일이다. 만약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방어벽을 하나 둘 허물기 시작한다면 언젠가 시민의 기본권도 내놓게 될지 모른다.



 설마 그런 상황이 오겠느냐고? 시스템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것이다. 독일은 가장 강력한 형태의 불체포특권을 인정한다. 연방의원의 경우 현행범이거나 범행 다음 날 체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기 동안’ 의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다. 심지어 기소될 때도 의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히틀러가 1933년 반대파 의원들을 체포한 뒤 수권법(授權法)을 통과시킴으로써 공포의 나치 시대를 열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불체포특권 포기를 내걸었다. 그리고 그 공약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블랙코미디를 연출했다.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약속을 어긴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체포동의안이 72시간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가결되게 만드는 게 정상”이라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발상을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번 소동은 한국 사회의 우선순위가, 헌법정신이 한바탕 정치쇼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선거의 계절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냉정한 판단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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