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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잡’이 던진 화두… 정치·금융 유착을 통렬히 비판

중앙선데이 2012.07.15 01:53 279호 23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은행의 수난 시대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첨단 금융기법의 창안·전도사로 찬양받던 경영 구루(guru)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고 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골드먼삭스·JP모건 등 유수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갔다.

영화로 보는 투자의 세계

최근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의 리보(Libor) 조작 사건은 더 큰 충격이다. 금융 선진국에서 금리 조작은 상상하기 힘든 범죄 행위다. 금리는 물가·환율·주가 등과 함께 자본주의 사회경제적 의사결정의 절대적 잣대다. 소비·투자·저축·대출 등과 관련된 온갖 의사결정이 금리를 토대로 이뤄진다. 특히 영국 런던 은행 간 금리인 리보는 세계 금융시장의 간판 금리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금융상품이 리보를 기둥으로 삼아 가산금리를 정한다. ‘시티(City·런던의 금융 중심가)’의 배반에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에서 확인된 금융자본 혐오증이 더 깊어지고 있다.

은행주의 모습도 초라한 편이다. 유럽의 주요 은행주 23개로 구성된 유럽 은행업종지수는 3년 동안 61%나 떨어져 1988년 2월 이후 최저치다. 미국 은행업지수 역시 3년 새 20% 내렸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21% 올랐다. 우리나라도 3년 동안 코스피가 9% 오르는 동안 은행업지수는 28% 떨어졌다.

은행 수난 시대를 고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다. 그리고 이 금융위기의 진실을 파헤친 역작으로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Inside Job)’을 꼽을 수 있다. 비유적 표현을 번역하면 ‘내부자 범죄’다. 영화를 연출한 찰스 퍼거슨 감독은 정치학 박사 출신이다. 그는 정치와 금융의 영역을 오가며 금융자본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할리우드의 지성파 배우 맷 데이먼의 내레이션은 영화 흐름과 잘 어울린다.
퍼거슨 감독은 금융계 거물들에 대한 인터뷰와 뉴스 자료화면 인용을 통해 금융위기의 원인을 해부했다. 미 주택시장 붕괴와 ‘서브 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예견한 ‘닥터 둠(Doctor Doom·파국 예언자)’ 누리엘 루비니 교수, 억만장자 헤지펀드 운용자 조지 소로스, 각종 금융 스캔들 수사를 맡은 강골 검사 엘리엇 스피처 등이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증언을 한다.

영화의 진단은 금융의 발달이 오히려 세계 경제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역설이다. 1980년대 이후의 과도한 금융 규제 완화와 자유화가 글로벌 경제의 시스템 리스크를 증폭시켰다는 이야기다. 미 정치 권력의 책임이 도마에 오른다. 정치권은 2008년 금융위기 국면에서 탐욕스러운 금융 권력을 제압했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금융자본에 특혜를 줬다. 미 재무부는 우선주 매입이라는 형태로 은행의 자본 확충을 거들었다. 정부가 은행의 주주로 참여한 것이지만, 자금 제공의 대가는 연 5%라는 낮은 금리였다. 정부가 은행 경영진 선임에 대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단서도 들어가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치와 금융 권력의 뿌리 깊은 유착 관계가 위기의 본질이라고 영화는 고발한다. 거대 금융회사의 경영자가 정부 고위 관료로 발탁되거나 정계로 진출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금융회사와 한통속이 된 정부의 칼날은 무딜 수밖에 없다. 당시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이 내세운 논리는 ‘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였다. 대형 금융회사가 파산할 경우 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놔둘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은행을 미워하는 투자자들도 은행의 무질서한 파산과 금융공황에 대한 우려는 크다. 과거 인터넷 아마추어 경제논객 ‘미네르바’의 메시지가 얼마나 큰 불안을 가져왔는지 다들 기억하지 않는가.

이번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겪으며 유럽 각국 정부는 은행 파산을 어떻게든 막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미 정부가 2008년 했던 부실은행 처리방식과는 사뭇 다를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미국보다 좌파적 정서가 훨씬 강하다는 점, 또 최근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가 대통령이 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80년대 초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 집권기에 프랑스는 주요 금융회사를 국유화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 유럽 국가들은 은행의 자본 확충을 도와주는 대가로 은행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은행이 부실해질 때마다 납세자에게 손을 벌리는 관행을 바꾸려 할 것이다.
2008년 리먼 파산 이전의 세상은 금융의 시대였고 규제 완화의 시대였다. 금융은 규제가 사라진 자유시장의 상징이었고 제조업 못지않은 부가가치를 낳는 신성장 산업이었다. 반도체·조선·철강·자동차·휴대전화 등에서 세계 정상급이던 제조 강국 코리아에서도 금융의 후진성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자 조바심이었다. 한국의 금융회사는 너나할것없이 글로벌 투자은행(IB)이 되겠다고, 한국 정부는 ‘동북아 금융 허브’가 되겠다고 다짐하던 때였다. ‘인사이드 잡’은 현대 금융 역사의 전환점이 된 2008년을 핵심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잘 그려낸 영화다.



김학균(42) 각종 투자전략 평가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여러 차례 꼽혔다.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SK증권 등을 거쳤다. 한때 영화 제작자를 꿈꿨을 정도로 영화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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