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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지루하다?

중앙선데이 2012.07.15 00:48 279호 31면 지면보기
나를 ‘박물관 큐레이터’라고 소개하면 대부분 “우와 멋지다! 부러워요!”라며 각별한 반응을 보인다. 나는 좀 당혹스럽다. 그래서 묻는다. “왜 박물관 큐레이터가 멋지고 부럽다고 생각하세요?” 돌아오는 답변은 TV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큐레이터 이야기로 시작한다. 4개 국어는 기본인 화려한 스펙에 외모까지 출중한 여성이 가냘픈 손에 하얀 면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작품을 꺼내 설명하는 큐레이터. 우연히 관람객 중에 재벌 2세가 있었고 그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화려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큐레이터라면 흔히 미술관 큐레이터를 떠올린다. 미술관 큐레이터가 예술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전시를 기획한다면 박물관 큐레이터는 박물관이 다루는 역사를 연구하고 이를 관람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관련 유물을 수집, 전시한다. 전공에 따라 자연사박물관, 미술관, 전쟁박물관, 과학관 등 여러 분야로 나뉘는 것이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미술관 큐레이터와 달리 학예사라고도 불린다.

‘박물관은 ○○○다’.
주로 어떤 단어를 채워 넣을까? 대개 ‘지루하다’ ‘어렵고 딱딱하다’ ‘학교에서 현장학습으로 가는 곳이다’가 일반적이다. 박물관은 진정 그런 곳일까?
박물관은 대중의 문화 향유 증진을 위해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동물·과학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전시·교육하는 시설을 총칭하는 용어다. 그러니 박물관을 학습공간으로 여기는 건 당연하다. 나와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걸 공부해야 하는 곳이니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한 노릇인가?
세상의 모든 박물관은 나란 존재가 오늘 여기에 있게 된 과정을 담고 있다. 잘 찾아보면 그곳에 숨어 있던 내가 보인다. 세상에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과연 누가 지루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박물관의 주인공은 유물이 아닌 인류, 곧 나다.

나는 특히 전쟁·역사와 관련된 박물관에 관심이 많다. 시드니 유대인박물관,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목아박물관 등이 내가 큐레이터로 활동한 박물관이다. 유물 보존을 위해 나도 드라마 속 큐레이터처럼 하얀 면장갑을 끼긴 했지만 늘 내 손에 조심스레 들려 있었던 것은 피카소의 작품이 아닌 전쟁의 흔적들이었고 낡은 목조각상이었다. 재벌 2세가 섞여 있을지 모르는 관람객들에게 우아하게 전시물에 대해 설명해야 할 나는 폭우가 쏟아지면 다리를 걷어붙이고 지하 전시실에 고인 물을 양동이로 퍼내야 했고, 부족한 전시예산으로 철물점을 전전하며 재료를 구입하고 직접 전시대를 제작했다. 이는 나뿐만이 아닌, 현실 속 모든 큐레이터의 실제 모습이다.

내가 박물관의 현재성을 강조할 때 가장 자주 언급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여주의 폰박물관이다. 폰박물관은 말 그대로 다양한 ‘폰’을 전시한다. 혹자는 옛날 전화기부터 현재 전화기를 모아 전시한 것이 뭐 그리 흥미롭겠느냐고 할 수 있지만 막상 가보면 전시물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현재 내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휴대전화의 역사는 30여 년에 불과하다. 왠지 ‘박물관’이라면 오랜 역사를 지닌 물건들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막상 폰박물관에 들어서면 30여 년도 꽤 긴 시간의 역사임을 깨닫게 된다. 나보다 고작 두 살 어린 친구가 공중전화 근처에서 발신만 가능했던 시티폰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때, 삐삐를 보며 ‘다마고치’를 떠올리는 어린이 관람객들을 볼 때, 나는 박물관의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박물관의 전시물은 현재 우리의 흔적들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 당장 국립중앙박물관부터 가보시겠어요? 가보지도 않고 지루하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테니까요. 박물관은 재밌어요.



송한나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에서 환경디자인학과 박물관 전공 석사. 목아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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