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이청준의 ‘눈길’ 되바라지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

중앙일보 2012.07.13 03:21 Week& 6면 지면보기
손민호 기자
고(故) 이청준(1939~2008) 선생의 기일(7월 31일)을 한 달쯤 앞둔 지난달 말. 전남 장흥에서 연락이 왔다. 장흥군이 예산 1억원을 들여 ‘눈길’을 복원했다는 소식이었다.



통화를 끝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4년 전 선생이 가시고서 한 달 뒤 레저터치는 장흥에 내려갔다. 긴 세월 타향을 떠돌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 누운 대가를 기리기 위한 애도의 걸음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그 길을 걷고 싶었다. 먼 옛날 학생 이청준과 노모가 눈 내린 이른 새벽 나란히 걸었던 그 시오리(里) 산길을 걷고 싶었다.



그러나 그 길은 이미 잊혀져 있었다. 마을 뒤편 고개 위로 올라서자 길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 위에 올라 오래전에 끊긴 길을 무던히 바라봤다. 저 수풀 헤치고 저 모퉁이 돌아 저 고개 다시 넘어야 아들이 새벽 어둠 속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났던 그 버스정류장이 있겠구나.



4년 만에 선생의 고향 진목마을에 들어섰다. 생가 마루에 놓인 방명록을 펼쳐들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선생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반가웠고 고마웠다.



‘눈길’은 기대 이상이었다. 걷기 여행이 유행을 타자 요즘 지자체마다 길을 만든다고 소란을 피운다. 여기서 ‘소란’이라고 쓴 건, 길이 관광지를 이어붙이는 토목사업으로 전락한 꼴을 하도 많이 지켜봐서다. 그러나 눈길은 다행히도 되바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흔한 데크로드 하나 깔지 않았고 부러 포장하지도 않았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들어앉아 있었다.



‘눈길’은 선생이 1977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교생 이청준이 광주에서 유학하던 시절, 어머니는 가세가 기울어 아들 몰래 집을 판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집으로 내려온다. 어머니는 집주인에게 사정해 아들이 하룻밤 고향집에서 머물게 한다. 이튿날 새벽, 모자는 눈 쌓인 산길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아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하자 어머니는 홀로 그 눈 쌓인 길을 되밟는다.



‘눈길을 혼자 돌아가다 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겄냐. … 하다 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 오목모목 디뎌놓은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눈길’에서 인용)



장흥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문학관광기행특구다. 이청준 선생을 비롯해 한승원·송기숙·이승우·위선환·김영남 등 걸출한 문인 80여 명이 장흥 출신이다. 얄궂게도 장흥은 선생이 가신 2008년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됐다.



이제 겨우 길 하나 냈을 뿐이다. 앞으로 장흥군이 할 일이 정말 많이 있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있는 길? 소울 로드? 레저터치가 알기로, 전국에서 이청준의 눈길보다 더 사연 곡진한 길은 드물다.



손민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