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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한늬우스’의 추억

중앙일보 2012.07.13 00:02 종합 34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아무리 잘나가는 경제 전문가의 글이라도 논지가 너무 명쾌하고 뚜렷하면 일단 삐딱하게 보는 버릇이 있다. 중요한 경제 이슈일수록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똑 부러지게 가르마 타기는 쉽지 않다. 경제뿐 아니라 세상만사도 ‘다른 한편(on the other hand)’을 눈여겨봐야 할 때가 종종 있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94년까지 극장 가면 무조건 정부가 만든 ‘대한늬우스’를 봐야 했다. 독재정권의 일방적인 홍보물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4대 강을 홍보하는 코믹 영상물 대한늬우스를 방영했을 때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최근 한국 경제의 성공방정식을 정리해 『청개구리 성공신화』를 펴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대한늬우스가 경제발전 초기에 국민과의 효율적 소통에 도움이 됐다는 거다. 그는 “정권 홍보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 시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고 국민의 단합과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고 썼다. 농촌 새마을운동에서 나무심기 운동이나 부가가치세 도입까지 주요 정책은 대한늬우스의 간결한 동영상에 담겨 국민에게 다가갔다.



 5·16 쿠데타 이후 우리 사회를 병영화했던 군사 문화에도 ‘다른 한편’은 있었다. 최 전 장관은 정부와 기업에 도입된 군대식 브리핑을 높게 평가했다. 시간을 쪼개서 쓰는 대통령·장관·대기업 총수에게 장문의 보고서를 읽게 하는 건 무리다. 그는 “군대식 브리핑은 상황에 대한 빠른 이해, 선택 가능한 대안 분석, 신속한 결정 및 행동으로 이어지는 업무 처리가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아직까지 정부 보고서엔 군대식 브리핑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단다.



 경제개발기의 한국은 마치 무정형(無定形) 이종격투기 선수 같았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독자적 접근과 독일식·미국식·일본식 접근을 적절히 섞어 성공했다. 개방과 규제완화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와 거리를 뒀고, 서구 경제학자들이 권고하던 수입대체정책 대신 수출드라이브정책을 선택했다. 독일에 파견된 광부·간호사가 받을 미래 임금을 담보로 서독에서 첫 상업차관을 받았다. 요즘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고 부르는 현대 금융기법을 한국은 60년대에 이미 써먹은 셈이다.



 경제민주화의 깃발만 나부끼고 성장 담론은 사라진 이 시대에 개발연대를 추억하는 책이 나왔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요즘 같은 SNS 시대엔 대한늬우스는 그저 개그 소재일 뿐이다. 12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19대 국회 첫 기획재정위에 참석했다 의원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았다. “경제민주화 주장이 지나치면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될 수 있다”고 했던 박 장관의 최근 언급이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제정책을 강조해 온 그의 평소 발언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 대한늬우스라도 다시 틀어야 하나. 지독한 소통 부재의 현장을 지켜보기가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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