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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고래 싸움에 등 터진 한국

중앙일보 2012.07.13 00:01 종합 34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매년 이맘때면 푸닥거리하듯 반복되는 게 ‘고래 싸움’이다. 국제포경위원회(IWC) 총회를 전후해서다. 그동안 우리나라 주요 매체가 크게 다루지 않았을 뿐이지 관계자들 사이에선 해마다 꽤나 치열한 현안이었다. 일본만 하더라도 매년 IWC를 앞두고 연안 포경을 재개해야 한다며 신문들이 각종 기사와 사설을 쓰고, 현안을 중계할 정도로 관심을 쏟는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도마에 올랐다. 우리 대표팀이 과학조사계획을 발표하자 호주 길라드 총리가 느닷없이 항의를 하고, 이를 BBC방송이 보도하고, 뒤이어 유력 매체들이 비난까지 보태 보도하면서 세계의 비난 여론이 집중됐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포경 재개 필요성을 개진한 것은 올해 처음 한번 질러본 게 아니다. 이미 수년 동안 입이 닳도록 강조한 ‘오래된 노래’다.



 그런데 이런 여론의 오버에 마치 그동안 없던 일을 벌인 양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국제망신을 자초했다”고 비난하고, 환경단체들이 반대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런 한편으로 어업인들은 환영 성명서를 내고, 울산 장생포에선 샴페인부터 터뜨렸다. 이 와글거리는 여론에 2년 전 잠재적 포경국 선언까지 하며 강경하게 추진해 왔던 당국은 결국 ‘없던 일로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슬쩍 꼬리를 내렸다.



 지구상 동식물 중 잡느냐 마느냐로 이렇게 세계를 들썩거리게 하는 건 고래밖에 없다. 그건 바로 인류가 18~20세기에 걸친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몰아넣었던 잘못 때문이다. 사람이 먹기 위해서만 잡았다면 여기까지 가진 않았다. 고래 식문화라고 해봐야 에스키모와 일본인을 비롯해 몇 나라 안 된다. 그런데 당시 고래는 공업용으로 무궁무진한 이용 가치가 있었다. 고래기름은 마가린이나 고급 양초와 화장품 재료로 활용됐고, 소련에선 군수품 제조용 기름으로 사용했다. 그뿐이 아니다. 참고래 창자에서 나온 용연향은 사향만큼 훌륭한 향료였고, 내장은 비타민제와 호르몬제로 활용됐으며, 기름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는 비료로 썼다. 수염은 칫솔로, 심줄은 테니스 라켓 줄로 쓰였으니 정말로 고래는 만능이었다.



 이에 소위 세계 ‘열강’들이 달려들어 기름을 짜내느라 고래를 잡아들인 결과, 18세기만 해도 십수만 마리로 보고되던 흰긴수염고래는 1960년대 초, 적게는 300마리로 추산될 정도로 멸종 직전까지 갔다. 63년 흰긴수염고래 포획이 전면 금지됐고, 환경단체들이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미국은 71년 전면 포경 금지를 단행한 뒤 전 세계 동시 포경 금지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때 소련과 일본은 전체 포경의 80%를 차지해 두 나라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82년 IWC가 상업포경을 잠시 중지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아이슬란드는 포경 금지에 반대하고 고래를 잡는 중이고, 덴마크는 원주민 포경을 하고 있으며, 일본은 과학조사를 빌미로 연간 1000여 마리씩 잡는다. 대부분은 먹기 위한 포경이다. 이번 IWC총회에서 일본은 밍크고래 포획 허가가 안 나면 내년에 탈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덴마크도 원주민 포경 연장 요구가 거부되자 탈퇴 가능성을 밝혔다. 이렇게 잡아먹는 나라들이 더 큰소리치는데 여론은 이들에 대해선 잠잠하다.



 우리나라는 86년 근해 포경 금지를 선언한 후 국제 약속을 잘 지켰다. 지난해 세계에서 보고된 불법 포획 23건 중 21건을 우리나라가 붙잡았을 만큼 단속도 부지런히 했다. 고래 식문화를 가진 나라 중 이렇게 성실히 이행한 곳은 한국이 거의 유일할 거다. 그사이 고래들은 개체수를 늘려 연간 국내 연근해 어업 생산량(123만t)의 12% 정도 되는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지금 어민들은 물고기를 놓고 바다의 포식자 고래와 경쟁하는 판국이다. 그러니 이젠 30년간 계속된 한 어족에 대한 특혜, ‘고래의 평화시대’로 인한 우리 연근해 먹이사슬의 불균형 상황을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5000만 인구를 먹여살리는 좁은 연근해 어족 실상을 연구하겠다는데, 여론의 뭇매가 좀 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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