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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세일 명품관, 손님 하루 5명 … 그나마 대부분 구경만

중앙일보 2012.07.09 01:42 종합 4면 지면보기
불황이 깊어지면서 소득 기준 상위 10% 고소득층들까지 지갑을 굳게 닫고 있다.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주식·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금융자산 소득이 감소하자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휴일인 7일 고객들의 발길 이 뚝 끊긴 서울 시내 유명 백화점의 명품관이 한산하다. [김도훈 기자]


지난 6일 오후 7시쯤, 영업시간 마감을 앞둔 서울 강남의 유명 백화점 명품관의 S브랜드 매장.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S브랜드는 양복 한 벌에 850만원, 재킷은 500만~600만원 정도 한다. 주로 50대 후반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나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이 주로 찾는다. 그런데 이 매장의 매니저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상위 10%도 돈 쓰기 겁낸다



 “내장객이 예년의 절반인 5~6명밖에 안 됩니다. 그나마 구경만 하고 가는 고객이 대부분이죠. 명품 매장은 어지간해선 경기를 안 탑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최악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이어 “성공한 부자들이 주 고객이라 예약하면 반드시 구입했는데, 올해는 구매를 미루며 펑크를 내는 경우도 잦다”고 덧붙였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50~70대의 고소득층마저 지갑을 닫고 있다. 그동안 소득이 많아도 소비 기복이 심한 30~40대와 달리 사회적 지위가 안정적인 50~70대 부자들은 웬만한 불황에도 소비를 줄이지 않는 특징을 보여왔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씀씀이를 줄이며 소비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북의 유명 백화점 명품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5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많이 찾는 이 백화점의 L브랜드 패션매장. 이곳 매니저는 “요즘엔 하루 평균 고객수가 우리 직원 5명보다 적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며 “직원 한 명이 고객 한 명씩만 응대하는데, 하루 종일 손님 얼굴조차 구경하지 못하는 직원도 많다”며 허탈해했다. 그는 “올해는 경기 침체에 대통령 선거 같은 이슈까지 겹친 탓인지 극도로 소비를 조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고객이 줄자 콧대 높기로 유명한 명품들도 요즘은 ‘20~30% 시즌오프(철 지난 상품 할인)’가 일상화돼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초청 전화나 세일 우편을 보내도 매장에 나오는 고객들이 예년만큼 많지 않다. 또 할인행사를 해도 고객 1인당 구매액이 기존보다 뚝 떨어졌다. 한 백화점 명품관의 이탈리아 L브랜드 매장 매니저는 “기존엔 노부부가 함께 방문해 대략 500만원 정도를 쇼핑했는데 요즘엔 아예 매장에 나오질 않는다”며 “내장객들도 단품 위주로 사가 구매액이 200만~3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40대 남성들이 선호하는 K브랜드의 최근 세일 행사에서는 넥타이나 구두만 조금 팔렸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유명 명품관에서 만난 60대 노부부는 “세일한다고 문자가 왔길래 딱 구두 한 켤레만 사려고 왔다”며 “주식시황도 안 좋고 목돈 넣어둔 것 이자도 자꾸 줄어드는 것 같아서 요즘은 좀 적게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백화점은 명품관뿐 아니라 일반 매장의 매출도 줄었다. 백화점들은 올 초부터 할인매장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까지 30~70%의 파격가 할인행사를 잇따라 선보여왔다. 그래도 매출이 오를 조짐을 보이지 않자 지난달 말부터는 ‘한 달간 초특가 세일’을 진행 중이다.



 고소득층이 자주 찾는 호텔의 고급 식당가나 고가의 미술품 거래시장도 얼어붙었다. 서울의 특급 호텔 관계자는 “회갑연이나 돌잔치 같은 가족모임이 확 줄어 저녁때는 연회장에 빈 방이 많다”고 말했다. 미술품을 경매하는 서울옥션 측은 “고가 미술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최근 몇몇 작품이 억대에 팔리긴 했지만 구매자가 내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나 프랑스인이었다”고 밝혔다.



 서민들은 물론 고소득층마저 소비를 줄이면서 일부에서는 ‘소비 공동화(空同化)’를 우려할 지경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진영 수석연구원은 “가계 부채는 늘고 불투명한 경기 전망이 확산되자 모든 소득 계층의 소비가 줄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상대 경제학과 장상환 교수는 “정부는 소비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예측 가능한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부자들이 맘 놓고 쓸 수 있는 여행이나 레저 같은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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