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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큰 바위 얼굴 경제 대통령’

중앙일보 2012.07.09 00:47 경제 12면 지면보기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
중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큰 바위 얼굴’이란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 소년이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그렇게 되는 내용이다. 실제로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러시모어 산에는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4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소설의 큰 바위 얼굴처럼 영웅을 기리는 미국인들의 마음에서 새긴 것일 터다.



러시모어 산에 새겨진 미국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 영웅인 조지 워싱턴, 그와 비슷한 위치의 천재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남북전쟁을 마무리하고 노예 해방을 실현한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이 가운데 루스벨트 대통령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스벨트 대통령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로 다른 사람이다.



 미국은 1861년부터 4년에 걸쳐 1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끔찍한 내전을 치른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단일화된 경제체제 하에서 미국은 서부 개발을 중심으로 대약진을 이룬다. 약 30년에 걸친 경제발전 끝에 19세기 말에 들어서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을 제치고 전 세계 생산의 4분의 1을 점유하는 세계 최대 생산국의 위치에 오른다. 현재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의 10%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 미국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서부 개발을 위한 막대한 규모의 철도, 철도와 근대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했던 철강, 석탄에 이은 새로운 에너지원인 석유, 그리고 이어진 전기와 자동차 등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현대문명의 기초는 이 시기에 다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 왕 록펠러와 철강 왕 카네기는 이 시대가 만들어낸 자유시장의 기업 영웅들이었다. 정부의 자유시장 절대 불간섭 정책 아래에서 그들은 기술 혁신과 뛰어난 마케팅 전략으로 경쟁 기업들을 누르고 시장의 절대강자가 된다. 창업가로서 그리고 혁신가로서 그들은 존경받는 영웅이 되어 마땅한 기업가들이었다.



그러나 망해버린 수많은 다른 기업가의 원망과 거대 기업 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은 피해갈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미국 사회는 30년에 걸친 쉼 없는 발전의 후유증이 사회 도처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때다. 시장 내 거대 독점의 폐해와 비참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 그리고 소수의 성공한 자와 다수의 실패자로 인한 양극화로 사회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 사회에서는 진보운동이 맹렬하게 일어나게 된다.



 이때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그는 뉴욕 주지사 때부터 독점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신설하는 등 ‘반재벌’ 정책을 폈다. 당시 미국에는 1890년 제정된 셔먼의 반독점법이 존재했지만 실효성이 낮았다. 이에 루스벨트는 대통령 취임 이후 거대 기업의 리베이트 관행을 저지하는 엘킨스법(1903), 철도회사 운임의 독점적 형성을 막는 헵번법(1906), 식육업체를 비롯한 식품업계 메이저 기업들의 비리를 차단하는 육류검사법 및 식품의약규제법(1906) 등을 만들었다.



1902년에는 무연탄광의 파업에 개입해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대기업을 굴복시켰다. 그리고 잠자고 있던 셔먼법에 근거해 노던 증권, 모건 철강, 스탠더드 오일 등의 기업합동집단(트러스트)을 상대로 45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이어진 스탠더드 오일을 상대로 한 소송을 통해 당시 최대의 트러스트를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



 루스벨트의 개혁정치로 미국 자본주의는 또 한번의 도약을 이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자멸한 유럽의 뒤를 이어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처럼 미국 사회의 큰 진보를 성취한 루스벨트는 당시 보수 세력의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실질적 개혁과 진보는 현실성이 부족했던 당시 진보세력의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둔 보수 세력의 실천에 의해 성취된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이끈 루스벨트 대통령은 결국 러시모어 산에 얼굴을 새겨넣게 됐다.



 정치의 계절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경제 현실을 직시하는 통찰력으로 시대 흐름에 맞는 진정한 개혁정책을 실천할 큰 바위 얼굴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길 고대해 본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 / 다산네트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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