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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 깔고 북방의 실리콘밸리 건설 박차

중앙일보 2012.07.09 00:19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북쪽의 신개발지역. 경사진 지붕의 밤색 빌딩들이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많이 건설 중이다. 선양시 정부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이곳에 ‘북방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성장 거점 떠오른 中 랴오닝성 동북연해경제특구를 가다



중국 동북 지역의 중심인 랴오닝(遼寧)성이 꿈틀거린다. 1900년대 전반까지 중국의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산업기지로 떴다가 그 후 상하이(上海) 등 다른 연안 지역이 부상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곳이다. 그러다 최근 중앙정부가 동북 지역에 눈을 돌려 국가적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10월 차기 5세대 지도부 출범을 앞두고 랴오닝성의 성도(省都)인 선양(瀋陽)을 비롯해 진저우(錦州)·판진(盤錦)·잉커우(營口)·다롄(大連)·단둥(丹東)·후루다오(葫蘆島) 등 6개 도시를 잇는 연해경제벨트를 집중 육성키로 했다.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에 중국도 예외가 아닌 상황이라 일부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13억 인구의 내수 시장을 가진 중국이 오히려 세계 경제의 돌파구로 기대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 6대 도시가 새로운 중국 경제 거점으로 발돋움하려고 투자를 가속화하는 모습에 세계의 눈길이 쏠린다.



지난 3일 선양 시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가까이 달려간 윈다(CNWD)그룹. 중국의 대표적인 건축 설계 및 자재 회사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창문 새시와 엘리베이터, 전기 모터 등이다. 공장 한가운데 초대형 타워로 세워진 엘리베이터 테스트빌딩은 177m 높이로 몇 년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았단다. 돤톄한(段鐵漢) 기획실장은 “지난해 직원 2만여 명이 120여 개국에서 210억 위안(약 3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올해도 상반기에만 110억 위안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올해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가까이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앙정부의 동북 개발 프로젝트로 건설 특수를 보고 있는 셈이다.







윈다그룹에서 다시 자동차로 1시간 넘게 달려가 북방중공집단유한공사(NHI)를 찾았다. 140만㎡ 부지 위에 들어선 이 회사는 굴착기 등 건설장비와 대형 프레스, 전력 시스템 등을 생산하고 있다. 굴착기 공장 안에 들어가자 100여m 길이의 생산라인 네 곳이 풀 가동되고 있었고, 지름이 4m 가까이 되는 굴착기 한 대는 포장 중이었다. 류이(劉義) 생산부장은 “한 대에 4000만 위안짜리 터널 굴착기가 한 해 20∼30대 팔린다”며 “올해도 동북 경제개발 등 내수 건설시장에 힘입어 지난해보다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부는 지난해 ‘동북 지역 노후공업지대 12차 5개년(2011∼2015년) 재개발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3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동북 지역 2015년 미래 비전 로드맵’을 제시했다. 선양과 함께 6개 도시를 잇는 연해경제벨트가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1조1183억 위안(200조원), 외자 유치액 161억 달러(18조1000억원)에 달하는 새로운 경제거점으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랴오닝성 정부의 왕이훙(王易虹) 선전처장은 “중앙정부의 경제개발프로젝트 지원에 동북 지역의 중공업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베이징과 선양을 시속 350㎞로 주파하는 고속철도도 개통된다.



선양은 한발 더 나아가 북쪽 지역에는 첨단 정보기술(IT)단지인 ‘선베이신구’도 추진하고 있다. 선양시 정부 차원에선 ‘북방의 실리콘밸리’를 기대하고 있다. ‘첨단 비즈니스 파크’로 불리는 선베이신구 지역에는 경사진 지붕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끝이 보이지 않게 건설되고 있었다. 선베이신구사업을 설명하던 한 직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삼았다”며 “다국적 IT 기업 등 국내외 500개사를 입주시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다음날 선양에서 자동차로 4시간 달려 찾아간 곳은 진저우시. 이곳의 태양광 전문기업인 솔라기가에너지홀딩스를 가봤다. 지난해부터 태양광산업은 유럽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최대 수요처인 유럽 시장이 추락했지만, 세계적으로 공급업체는 크게 늘어서다. 태양광발전의 원자재인 잉곳은 물론 웨이퍼·셀·모듈까지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3400여 명의 직원이 54억 위안의 매출을 올렸다. 장즈광(張紙光) 부국장은 “글로벌 태양광 시장이 어둡지만 정부의 동북 개발 사업으로 중국 업체들은 오히려 위기 속에 기회를 맞고 있다”며 “올해도 전년 대비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사는 랴오닝성과 진저우시 정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매출의 10% 가까이를 연구개발비로 쓰고 있다.



진저우시는 국내외적으로 친환경 도시의 면모를 과시하고 지역 경제를 키우기 위해 내년에 세계 꽃 & 바다엑스포도 개최한다. 그 부지는 보하이만을 매립해 조성 중이다. 22억 위안을 투자해 1000만 관람객을 유치, 수백억 위안의 직간접 경제 효과를 노리고 있다.



5일에는 또 다른 연해 경제특구이자 보하이의 중심인 판진을 갔다. 판진에는 중국에서 셋째 규모의 석유시추 기지가 있다. 지평선 너머로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들판 곳곳에는 오뚝이처럼 좌우로 움직이는 석유시추기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판진시 정부의 가오커(高科) 상무 부시장은 “석유 매장량이 많아 석유화학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중국 동북 지역은 요즘 개발 붐이 한창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이런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중국 정부 스스로도 올 들어 글로벌 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이 식고 있어 경기 연착륙에 고민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한 대기업 인사는 “도심 곳곳에 짓고 있는 건물들이 완공을 미루는 경우가 많고, 다 지은 건물들도 입주율이 50%를 밑돈다”고 귀띔했다. 경기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자 중국 정부가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건설 붐을 통해 돈을 돌리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랴오닝성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종합적인 결과는 중국의 12차 5개년 재개발계획이 끝나는 2015년에 나온다.



선양·진저우·판진=이원호 기자 llhl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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