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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 女論] 1930년대 ‘골드 미스’ 약제사, 정영숙

중앙일보 2012.07.09 00:59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영아
명지대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정영숙씨. 경북 풍기 산(産)이다. 일찍이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경성약학전문학교를 마친 후 강릉 도립병원약국에 근무하였다. 씨는 본래 관후한 경상북도 산수를 타고나서 그런지는 모르나 모든 일에 원만하고 관대하다. 누구나 씨를 한번 대한 분이면 씨의 남성 이상의 너그러운 행동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폐가 있을지 모르나 여성에게 없지 못할 조바심을 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리고 일에 있어서 근실하기는 현대 여성 중에서 감히 짝할 사람이 적으리라고 생각한다.”(‘약제사 언파레드’, 삼천리, 1935.7)



 한국에 근대 약학교육이 도입된 것은 보통 1915년 조선약학강습소 설립으로 본다. 1년 야학제였던 조선약학강습소는 1918년 2년제 조선약학교로, 그리고 1930년 경성약학전문학교로 바뀌어왔다. 경성약학전문학교는 여학생의 입학을 허가하지 않아서 1931년 제1회부터 1947년까지 졸업생 모두가 남자였다고 한다(심창구 외, ‘한국 약학사’, 약학회지, 2007.12).



 하나 이러한 약학사(藥學史) 서술에는 의문점이 남아 있다. 단 한 명도 여성 졸업생이 없었다는 1931년 이후에도 약전을 졸업한 여학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이 앞의 인용문에 언급돼 있는 정영숙(鄭榮淑)이다. 그녀는 1931년 약전을 졸업하고 약제사면허증을 발급받았다(관보, 1931.4.23).



 이는 1930년에 경성약학전문학교로 ‘승격’되었다는 서술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약학전문학교라는 이름은 1930년부터 사용했으나 조선총독부에서 정식으로 승격 인가가 난 것은 1933년이었다. 또 남학생만을 입학 허가한 것은 1932년부터였고, 그 이전까지는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했다(‘상급지망자에는 경사’, 동아일보, 1933.3.7). 그러니까 정영숙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공식 교육기관을 거쳐 약제사가 된 거의 마지막 여성 중 한 명이다.



 또한 정영숙은 배화여고보의 제1회 우등졸업생이었고 1930년대 중반부터는 종로에서 약방을 운영한 재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이 19세 이전에 결혼하던 시절에 28세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아 부모의 걱정을 사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여자는 옛날부터 혼자 못 사는 법이니라”라며 다그치자 그녀는 당당히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제가 한번 혼자 살아봐야지요, 어떤가 하고.”(‘혼자 못 사는 여자는 안 될 정영숙씨’, 여성, 1936.4)



이영아 명지대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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