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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축구는 민족주의를 넘어선다

중앙일보 2012.07.09 00:57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안 부루마
미국 바드 대학 교수
지난달 29일(한국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열렸던 2012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2) 준결승전에서 독일 국가대표팀이 이탈리아 팀에 패배했다. 그러자 일부 독일 신문은 경기 개막 행사에서 자국 선수들이 아무도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며 이를 애국심 부족이라고 몰아세웠다. 독일 선수들과는 대조적으로 이탈리아 선수들은 전원이 국가인 ‘일 칸토 데글리 이탈리아니(이탈리아인들의 노래)’를 큰 소리를 불렀다. 주장인 지지 부폰은 마치 기도를 올리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했다.



 이탈리아 팀은 결승전에서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스페인 팀에 패배했다. 그런데 스페인 선수들은 자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누구도 입을 벌리지 않았다. 스페인 국가 ‘마르차 레알’에는 가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 출신 선수들은 국가를 들으면서 불편해했을 것이다. 이 국가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939~75년, 국가원수로 통치)가 생전에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장려했는데 그는 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냐 주민들의 민족주의를 눌렀다.



 흔히 축구를 ‘전쟁의 대용’이라고 일컫는다. 라이벌 국가끼리 상징적이며 평화적으로 싸우는 장이라고 한다. A매치에 응원 나온 일부 팬은 ‘애국 경연 축제’에라도 참가한 듯 자국을 상징하는 의상을 한다. 예로 잉글랜드 팬들은 중세 기사 차림으로, 네덜란드 팬들은 나막신을 신고, 스페인 팬들은 투우사 복장으로 각각 등장한다. 이런 ‘국가대항 축구 응원 의상 경연대회’의 최우수상은 교황과 추기경 차림으로 등장한 이탈리아 팬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과거 일부 잉글랜드 팬은 ‘축구는 전쟁의 대용’이란 문구를 지나치게 사실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이들은 유럽에서 잉글랜드 팀의 A매치가 벌어지면 마치 대륙 침공군처럼 몰려다니며 시합을 유치한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선수들도 국가적인 적개심을 감추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8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네덜란드 팀이 독일 팀을 눌렀을 때 일부 네덜란드 선수는 보란 듯이 (선수들끼리 교환한) 독일 유니폼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닦아댔다.



 축구에서 국가적인 감정이 하도 크게 작용하다 보니 국가적인 특성을 경기 스타일에 빗대기도 한다. 잉글랜드 팀이 큰 시합에서 이기면 그 승리는 으레 영국의 경기정신인 ‘페어 플레이’로 표현됐다. 독일 팀은 ‘규율이 몸에 배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팀은 ‘로마 군단의 철벽 수비력’에 비유됐고, 네덜란드 팀은 ‘자유로운 개인주의’로 표현됐으며 스페인 팀은 ‘투우사의 우아함’으로 묘사됐다. 프랑스 팀이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프랑스인들은 다인종으로 이뤄진 자국 팀을 “프랑스 혁명정신인 자유·평등·박애를 형상화했다”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팀이 시합에서 지면 이러한 국가별 덕목들은 외려 결점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규율의 독일 팀은 상상력 부족, 탄탄한 수비력의 이탈리아 팀은 공격에 대한 공포, 개인기의 네덜란드 팀은 이기심, 다인종의 프랑스는 소수민족 출신의 애국심 부족 때문에 각각 경기에 졌다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거의 모든 팀이 비슷한 전술을 구사하는 지금의 축구에서 이러한 국가별 차이를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게다가 현재 최고의 유럽 클럽 팀들은 모두 다국적 팀이다. 선수들은 돈을 추구해 외국 팀에서 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다국적 클럽에서보다 자신의 국가대표팀에서 뛸 때 훨씬 더 적극적이며 성적도 좋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번 유로 2012를 마치면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축구가 이처럼 동일한 깃발·언어·역사를 공유한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화합을 이루며 함께 일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축구가 아름다운 이유 중 가장 멋진 것이기도 하다.



이안 부루마 미국 바드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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