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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올림픽 감격과 월드컵 흥분

중앙일보 2012.07.09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7월, 성큼 다가온 올림픽 열기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올해 올림픽이 열리는 런던은 64년 전인 1948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던 올림픽을 12년 만에 부활시킨 곳으로 뜻하는 바가 크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서 열렸던 1936년 올림픽이 제국주의의 파탄과 종말을 예고하였다면, 1948년 런던 올림픽은 새 시대 지구촌의 평화와 번영을 기약하는 축제였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으로 월계관을 썼으면서도 영광보다 치욕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손기정 선수의 비애는 바로 우리 한국인이 식민지 시대에 겪었던 수모의 한 토막이었다. 그렇기에 1948년 7월 태극기를 앞세우고 최초의 올림픽 참가를 위해 런던으로 향하던 67명의 한국 선수단과 이들을 환송하던 전 국민의 가슴은 뿌듯한 감격으로 벅찰 수밖에 없었다.



 ‘승부보다는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 정신은 바로 한국 선수들에게 부합되는 말이었다. 우리는 1945년 해방은 되었지만 나라와 민족만 있을 뿐 주권국가에 걸맞은 정부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어정쩡한 처지였다. 1948년 5월 10일 유엔 결의에 의한 우리 역사상 최초의 자유 총선거로 국회가 구성되어 헌법 제정이 마무리 단계에 이를 즈음 선수단은 런던으로 향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선수단의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발대의 기개가 엿보였다. 마침 대한민국의 출범이 선포되기 하루 전인 8월 14일에 열린 런던 올림픽의 폐막식도 우리에겐 8·15 광복절의 전야제였던 셈이다.



 우리 선수단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의 헬싱키 올림픽은 물론 이후 열다섯 번의 올림픽에 꾸준히 참가하며 한국의 존재감을 지구촌에 확인시켜왔다. 그리고 1988년, 제24회 올림픽 성화는 대한민국 서울 하늘에 피어올랐다. 동서냉전의 대결로 미소(美蘇) 양 진영이 상호 보이콧한 반쪽 올림픽이었던 모스크바(1980), 로스앤젤레스 올림픽(1984)에 이어 냉전의 폐막을 예고하며 세계가 다시 하나가 되었던 88 서울 올림픽은 세계사적 의미가 남달랐다.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는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향한 인류의 소망과 평화통일을 기약하는 우리의 소원이 흠뻑 담겨 있다.



 88 서울 올림픽이 우리의 국가적 위상, 즉 ‘세계 속의 한국’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쟁의 참화로부터의 빠른 복구, 농업 중심의 후발경제를 비교적 짧은 기간에 수출대국으로 전환시킨 산업화의 성공에 더하여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성취한 민주화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세계사의 흐름은 냉전 종식과 더불어 권위주의 체제의 민주화라는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1987년의 6월항쟁과 6·29선언은 한국사회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차원에서 세계사의 예외지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개혁과 발전의 주류에 합류하겠다는 선택을 행동으로 밝혀준 것이었다. 그렇기에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은 단순한 순간의 감격을 넘어서 확고한 국민적 자신감으로 이어졌으며 세계화라는 새 물결에 적극 동참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었다.



 이렇듯 고양된 세계화의 분위기에 힘입어 FIFA는 2002 월드컵 대회를 한국과 일본의 공동개최로 결정하였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 행사가 동아시아의 중심지역에서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 상징성은 컸지만 과연 우리 팀이 세계 최강 32팀이 겨루는 시합에서 16강에 올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우리에겐 말 못할 부담이었다. 국민의 단합된 힘은 ‘IMF 외환위기’마저도 극복했다는 긍정적 분위기에 혹시라도 찬물을 끼얹게 되지 않을지.



 그러나 2002 월드컵의 기적과 같은 대성공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 한국이 16강, 8강을 넘어 4강까지 진출하리라고. 지난주 끝난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스페인, 준우승팀 이탈리아, 준결승에서 승부차기로 물러난 포르투갈까지 차례로 꺾은 우리의 쾌거는 세계를 놀라게 하고 우리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실 ‘붉은악마’가 선도한 국민의 단합된 뒷심이 없었다면 아무리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고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 대단하였다 해도 4강의 기적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민이 함께 경험한 감격과 흥분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얼마나 국민통합과 분열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88 올림픽의 감격과 2002 월드컵의 흥분처럼 국가발전의 전환기에 경험한 범국민적 감동은 사회적 유산으로 보전하여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국민통합의 접착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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