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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獨에 불똥, 씨티그룹·도이체방크도 조사 돌입

중앙선데이 2012.07.08 02:33 278호 7면 지면보기
블룸버그 뉴스
# 2006년 3월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스은행
트레이더A: 이번에 달러 표시 3개월 만기 리보 금리를 낮출 수 있을까. 연 4.90% 정도면 좋겠는데…. 내 뉴욕 고객이 왜 금리가 그대로냐고 난리야. 늘 그랬듯 도와주면 고맙겠어.

英 바클레이스 은행 리보 조작 일파만파

금리 담당자 B: 연 4.90~4.91%로 써낼게.
트레이더A: 고마워. 내가 은퇴하고 회고록을 쓰면 널 소개할 때 네 이름을 금색으로 적어 넣을게.
금리 담당자 B: 무슨 소리! 그러지 않는 게 날 돕는 길이라는 걸 잘 알잖아.

영국 금융감독청(FSA)이 최근 홈페이지에 공개한 ‘바클레이스은행 금리조작 최종 보고서’에 나오는 트레이더와 금리 보고 담당자의 e-메일 대화 내용이다. 이 장면은 바클레이스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금융권에서는 같은 은행이나 증권사 소속이라도 다른 부서 간에 중요한 정보를 사적으로 공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내부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준법감시)라 한다. 바클레이스에서는 이런 원칙이 철저히 무너졌다. 리보금리와 연동된 파생상품을 다루는 트레이더와 리보금리를 영국은행협회에 보고하는 금리 보고 담당자가 대화를 나눠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바클레이스 직원들은 한발 더 나아갔다. 트레이더가 “금리 좀 낮춰달라”고 요청하자, 금리 보고 담당자는 선심 쓰듯 “낮춰서 써내겠다”고 말한 것이다. 금리가 낮아질 것을 알고 있는 트레이더는 금리 하락 상품에 베팅해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급기야 다른 은행의 트레이더와도 정보를 나눴다. 한 은행 트레이더는 바클레이스 트레이더에게 낮은 금리를 요청하면서 “친구, 이번에 신세 크게 졌어. 언제 시간 되면 퇴근하고 들러. 볼랭저(Bollinger) 샴페인 한 턱 낼게”라고 말했다. 볼랭저 샴페인은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의 하나인 고급 샴페인이다. 보통 한 병에 30만원을 넘는다.

밥 다이아몬드 바클레이스전 CEO가 지난 4일 리보조작 사건 증언을 하기 위해 영국 하원 재무위원회에 출석했다.[런던 AP=연합뉴스]
글로벌 대형은행 줄줄이 조작 의혹 받아
바클레이스는 자산 규모로 세계 7위, 영국 은행 가운데 HSBC 다음으로 크다. 300년의 긴 역사에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부도를 맞은 리먼브러더스 투자은행 부문을 인수해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했다. 그런 대형 은행이 리보금리 조작 혐의로 미국·영국 정부에 최소 4억5000만 달러(약 5200억원)의 벌금을 납부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지난달 27일 발표됐다. 이후 밥 다이아몬드 최고경영자 등 3명의 경영진이 사임하고 이 회사의 신용등급 전망이 강등되는 등 바클레이스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씨티그룹·HS BC 등 다른 굵직한 글로벌 은행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특히 영국의 부패사건 조사를 전담하는 정부 독립기구인 영국 중대비리조사청(SFO)은 6일(현지시간) “바클레이스를 비롯한 주요 은행의 금리조작 사태에 대해 정식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중대비리조사청은 부패 사건에 대한 조사 활동을 통해 책임자에 대한 형사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이에 따라 바클레이스 경영진에 대한 형사 처벌 가능성이 커졌다. 다른 은행도 조사 결과 비리가 밝혀지면 경영진이 형사 처벌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리보금리 조작 사태의 불똥은 영국의 주요 은행뿐 아니라 미국·독일의 은행으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독일 금융감독위원회(BaFin)는 리보 조작과 관련해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를 대상으로 ‘특별조사’를 하는 것으로 6일 전해졌다. 금융감독위는 리보금리 조작 혐의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는 7월 중순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와 씨티그룹도 자사에 대해 당국의 예비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6일 밝혔다. 씨티그룹은 일본금융청(JFSA)이 씨티그룹 글로벌마켓 일본지부의 트레이더 2명이 리보와 티보(TIBOR·도쿄 은행 간 금리)에 대해 나눈 대화 내용을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씨티그룹과 JP모건은 또 리보 설정과 관련해 자사를 상대로 개인의 민사소송이나 집단소송도 제기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7일에는 2008년 금융위기 때 파산한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경영진 7명이 파산 책임을 물어 집단소송을 제기한 소액주주들에게 2억7500만 달러(3221억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씨티은행 역시 2008년 자사를 통해 리먼브러더스 상품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스페인 투자자들에게 4290만 유로(약 641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금융질서 흔드는 범죄, 커지면 진짜 금융위기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전문가 중에선 진짜 금융위기가 왔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나 유럽 재정위기는 금융회사나 정부의 방만 경영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리보금리 조작은 금융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 사건이다. 특히 그런 금리 조작이 글로벌 금융권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금융권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영국 금융감독청의 발표 결과를 보면 이번 사태는 과거의 금융사고에 비해 심각하다. 도덕적 해이가 광범위하게, 조직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뤄져 특정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리기 어렵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가령 미 달러 리보금리의 경우 2005년 1월부터 2009년 5월까지 173회나 보고담당자에게 금리를 바꿔달라는 부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리보금리는 왜 중요한가. 리보(LIBOR)는 ‘London inter-bank offered rates’의 약자로 ‘런던 은행 간 금리’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런던 금융시장에서 한 은행이 다른 은행으로부터 담보 없이 단기자금을 빌리려고 할 때 예상되는 금리를 의미한다. 영국은행협회가 매 영업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조사해 공표하고 있다. 영국 파운드화뿐 아니라 미 달러·엔·유로 등 10개 통화에 대해 1일물부터 1년물까지 15개 만기, 총 150개의 조달 금리를 발표한다.

전 세계 많은 금융상품의 금리체계는 리보금리에 발행기관의 신용도 등을 고려한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되고 있다. 따라서 리보금리는 세계 금리의 기준인 셈이다. 세계적으로 10조 달러에 달하는 대출상품, 350조 달러의 금리파생상품이 리보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선 상업대출 및 모기지대출의 90%가 리보금리와 연계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이 외화대출을 받을 때 리보금리에 가산금리를 붙여 금리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리보+2%’와 같은 식으로 표시한다.

리보금리는 영국은행협회가 대형 우량 은행들에 ‘금리가 얼마가 될 것 같으냐’고 묻고, 은행들이 예상 금리를 제시하면 이를 취합해 산출한다. 문제는 예상 금리를 영국은행협회에 보고하는 보고 담당자의 주관적 판단이나 재량이 개입될 가능성이다.

이렇듯 현행 리보금리 산정 방식에 문제가 많지만 현재로선 뚜렷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예상 금리 대신 실제 금리를 쓰면 리보금리의 문제가 해결될 듯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아무리 대형 금융회사라도 어느 날엔 자금이 남고 어느 날엔 모자라기 때문에 매일매일 모든 만기의 자금을 다른 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환매조건부채권(RP) 금리나 미국 단기 국채금리를 리보금리 대신 이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금리가 쓰이지 않은 건 제각각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현실적인 대안은 도덕적 해이가 줄어들 수 있도록 영국 금융당국이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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