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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게 연쇄주점이더라, 침대 시트까지 똑같은 …

중앙선데이 2012.07.08 02:25 278호 11면 지면보기
1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이름에서 따온 ‘쥐이콰이제주뎬(居易快捷酒店)’. 쥐이(居易)는 거주하기 편하다는 뜻, 콰이제(快捷)는 급행(express), 즉 신속한 서비스라는 뜻이다. 주뎬(酒店)은 술집이 아니라 호텔을 뜻한다. 2 장쑤(江蘇)성 전장(鎭江)에서 난징(南京)으로 가는 303현도에서 마주친 공장의 풍경. 엄청난 매연을 내뿜고 있다. 3 보통 150위안(약 2만5000원) 내외의 숙소는 대체로 자전거 입실에 대해 관대하다. 4, 5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세워진 모텔 지하주차장. 중국에선 모텔에 투숙할 때 부서진 수도꼭지처럼 미리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아니면 나중에 변상표에 따라 돈을 물어내야 한다.
길은 마을들을 연결하기 위해 생겨나지만 길이 지나가면 마을은 서로 비슷해진다. 길을 통해 물자와 사람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닮아간다. 마을은 혼자 살 수 있어야 마을이었다. 의식주와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교육까지 한곳에서 해결하기 위해 모여 살았다. 근데 바깥으로 길이 나면 마을은 자급자족의 완전성을 잃어버린다. 유럽은 비단 없이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유목민이었을 테다. 유목민은 국경 없이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면서 정주민들과 부딪치고 정주민들의 문물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중개한다. 비단의 아름다움과 내구성을 알게 된 정주민들은 그 출처를 찾아 스스로 떠나고 길이 생긴다.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 ⑪중국의 숙박시설

길을 통해 비단과 도자기·차·종이와 같은 물건부터 종교와 미술 같은 문화까지 오고 간다. 이제 마을은 길이라는 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열매와 같다. 길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어떤 길에 매달리느냐에 따라 모습은 달라진다. 트럭이 지나가는 도로 주변에는 트럭에 필요한 냉각수와 연료를 제공하고 운전사들을 재워줄 곳이 들어선다.

312국도는 이제 눈에 들어온다. 30년쯤 전에 포장한 듯한 아스팔트에 왕복 6차로의 넓이, 역시 30년쯤 된 가로수들. 드문드문 나타나는 마을들도 식당·가게·차량정비업소·여관의 행렬에 마을 크기에 따라 각각 찻잎·휴대전화·농약·오토바이를 파는 전문점들이 들락날락 끼어드는 형국이다. 큰 도로가 안전하고 길찾기도 쉬울 거라는 생각에 312국도만 쫓아다녔는데 국도변으로 다녀서는 아무리 내륙에 들어가도 국도변일 것 같았다. 그래서 성도(省道)나 현도(縣道) 또는 모세혈관처럼 가는 향도(鄕道)와 같은 지방도로를 찾게 된다.

장쑤(江蘇)성 전장(鎭江)에서 난징(南京)으로 가는 경로를 검색하자 303현도가 보였다. 과감히 312국도를 버리고 이 현도를 따라가자 국도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다음 날이 5월 1일 노동절 나흘 연휴여서 관광지인 난징에서 숙소를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숙소를 못 구했다는 내용을 150자 블로그인 미투데이에 올리니 한국에 있는 중국인 친구가 그걸 보고 예약해서 중국의 메시징서비스인 웨이신(微信)으로 알려준다. 불과 7년 전 미국을 횡단할 때와 다른 세상이다.

전화기에 내장된 카메라모듈로 사진을 찍어 미투데이에 올리면 내 위치가 표시된다. 한국에서 미투데이의 친구들은 “오늘 속도가 왜 이렇게 느려. 아직 거기야?” 하고 댓글을 단다. 나는 “비바람이 불어서 속도를 낼 수 없었어”라는 변명 겸 푸념을 올린다. 7년 전에는 때때로 절대고독을 경험하기도 했다면 이번 만리장정은 언제나 대화 중이다. 친구들은 방공망의 중앙통제실에 앉아있는 것처럼 항로를 보고 어디로 가라고 ‘전통’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말투는 ‘난징에 가시면 부자묘를 꼭 가보세요’와 같이 정중하지만.

사람들은 어디서 자는지 궁금해했다. 그건 나도 매일 궁금하다. 해 질 무렵 낯선 도시에 닻을 내릴 때 첫 과업은 부두를 찾는 일이다. 어디에서 자느냐에 따라 그 도시에 대한 인상과 경험이 달라진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지만 예약하는 것도 번거롭기 마찬가지고 결과가 좋으리라는 법도 없다.

중국에서 외국인은 아직도 감시의 대상이다. 외국인이 투숙 가능한 숙소가 따로 있다. 국제대주점처럼 ‘국제’가 앞에 붙어있거나 ‘섭외(涉外)’라는 두 글자가 붙어있는 호텔들이다. 유스호스텔을 빼고는 보통 별 3개 이상의 호텔이다. 우시(無錫)에서는 세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날분의 체력이 바닥난 상태여서 숙소를 찾아 도시를 전전하는 것은 공자님도 짜증날 일이다. 거기다 큰 호텔은 가격을 떠나 자전거를 방에 넣지 못한다. 만리마(미투데이 친구인 ‘바람처럼’님이 지어주신 내 자전거 이름)를 지하의 음습한 주차장에 묶어놓고 물통과 자전거가방 4개를 이고지고 방으로 올라가면서도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이미 도인이 됐거나 실성한 사람 둘 중 하나다.

입실 절차도 더디다. 호텔 측은 여권과 비자를 스캔해서 공안에 전송한다. 공안에서는 내 이름으로 된 폴더에 차곡차곡 새로운 파일을 쌓아놓는다. 그래서 내 행적은 미투데이 친구들과 중국의 공안이 꿰뚫고 있다. 신분 확인이 끝나면 숙박비의 두 배쯤 되는 보증금(押金)을 낸다. 퇴실할 때에는 사용한 물품 값을 보증금에서 뺀다. 방에 비치된 안내서엔 종종 서비스의 종류가 아니라 기물파손 변상표가 먼저 나온다. 3000위안(약 54만원)으로 제일 비싼 컴퓨터에서부터 5위안으로 가장 싼 재떨이에 이르기까지 방 안의 모든 기물들이 파손됐을 경우 내야 할 돈과 함께 목록에 수록돼 있다.

중국여행안내서를 보면 호텔 직원과 함께 방을 보고 기물 상태에 대한 최종 합의에 이른 뒤 투숙하라고 조언한다. 정말 훌륭하고 이성적인 조언이지만 그냥 어서 눕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스탠드 전등이 안 켜진다든지, 수도꼭지가 부러져 있다든지, 변기가 고장 나 있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 퇴실할 때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이들은 무전기로 연락한다. 퇴실한다고 하면 ‘8309호 투이팡(退房)’이라는 ‘압수수색영장’이 무전으로 떨어지고 객실 담당(보통 중년여성이다)은 집행에 들어간다. 방에는 예외 없이 콘돔·팬티·면도기와 같은 유료 위생용품들이 비치돼 있다. 만약 콘돔을 사용했으면 이 중년여성은 ‘안취안타오(安全套) 2통’이라고 교신하고 프런트에 줄 서 있는 손님들은 술렁거린다. ‘저 사람이 밤사이 2통이나…’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프런트는 손님에게 친절하게 계산서에서 콘돔 항목에 ‘2통에 20위안’이라고 쓰고 밑줄 그은 뒤 그만큼 제하고 보증금을 돌려줄 것이다. 비치된 콘돔의 종류는 하나 이상이어서 진동 콘돔과 같은 신개념의 콘돔을 호기심 삼아 썼다고 하면 교신 내용은 좀 더 복잡할 것이다.

내국인도 숙박부를 기재한다. 예전에 한국에서도 까만색 두꺼운 표지의 숙박계에 까만 줄로 매달려 있던 볼펜으로 인적사항과 행선지를 적었다. 간첩 잡기용이라고 하지만 주로 반정부 인사들을 색출하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가 1998년 규제개혁위원회에 의해 폐지됐다. 숙박계를 쓸 때 신분증과 대조하지 않아서 유령인물들이 대거 창작되곤 한 것과 달리 중국에서는 신분증을 확인한다. 종종 유명인사나 고위공무원들의 투숙기록이 새어나가 인터넷 접속 횟수가 급증하곤 한다.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간섭이 낳은 순기능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베이징에 갔을 때 큰 ‘술집’과 ‘밥집’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역시 ‘대륙풍이군’ 하고 결론 내리기 전에 물어보니 대주점(大酒店)·대반점(大飯店)은 호텔을 뜻하는 것이었다. 와서 보니 숙소 종류는 더 많다. 초대소에서부터 여사(旅舍)·여관(旅館)·주점·빈관(賓館)·반점·객잔(客棧)…. 초대소는 국빈초대소처럼 으리으리한 곳도 있지만 대체로 노후한 여인숙 수준이다. 여사와 여관도 여인숙 수준이고 그 위로 빈관·객잔, 그 위로 주점이 있다. 물론 편차가 커서 다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주점과 반점이 숙소인 것은 주막처럼 밥도 먹고 잠도 자는 복합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주점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장(莊)급 여관과 호텔 등 숙소의 종류가 얼마 안 되는 나라에서 온 여행자의 골치를 썩인다. 비즈니스를 뜻하는 상무형, 휴양형인 도가(度假)형, 업무용인 경제형, 그리고 경제형 안에도 콰이제(快捷)가 있다. 어쨌든 대(大)자가 앞에 붙지 않는다면 대체로 100에서 200위안(1만8000~3만6000원) 사이다. 최근에는 연쇄주점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중국인 친구가 난징에 잡아준 숙소 역시 한팅연쇄주점((漢庭連鎖酒店). 미국의 홀리데이 인이나 수퍼8과 같은 모텔 프랜차이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균질한 서비스를 보장한다. 가장 큰 연쇄주점인 루자(如家)는 전국에 1000개나 된다. 이런 숙소는 어디에 있든 침대의 시트까지 똑같다.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새로운 것을 찾아 여행하면서 집과 똑같은 환경이 연장되길 원한다. 내게는 어디에 가든 같은 숙소에서 같은 시트를 깔고 자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하지만 상하이나 쑤저우에서도 연쇄주점에 묵었다. 그리고 난징까지.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중국도 미국처럼 거대자본의 연쇄점 사회로 바뀌어 가는 조짐이 보인다. 다양한 숙소 명칭의 미묘한 차이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가맹점들은 여행자의 길을 단조롭게 할 것이다. 어쩜 통과하는 곳들을 비슷하게 만들어 버리는 길이라는 존재가 수반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는 등 14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NHN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가 있다.

6월 23일까지 중국 자전거 여행을 하는 필자의 소식은 매일 미투데이(http://me2day.net/zixingch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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