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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를 솜씨있게 이어야 버선코 같은 추녀선 나오죠”

중앙선데이 2012.07.08 02:22 278호 12면 지면보기
4일 오전 서울 숭례문 복구 현장. 숭례문을 둘러싼 대형 가설덧집 안은 후텁지근했다. 냉기라곤 5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만 겨우 느낄 수 있었다. 현재 공사진행률은 80% 정도. 2008년 어이없는 화재로 숭례문이 무너진 이후 만 4년 넘게, 연인원 3만 명이 투입돼 구슬땀을 흘렸다. 최근 중층(重層)건물인 숭례문 문루 위층에 기와를 덮는 작업이 거의 마무리됐다. 다음 달까지 문루 아래층에 기와를 덮고 10월 초 단청 칠이 끝나면 연말엔 새 단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숭례문 연말 완전 복구  마무리 작업 한창인 중요무형문화재 이근복 번와장

숭례문 복구 공사로 전통 건축물을 살리는 장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총지휘를 맡은 신응수 대목장 밑엔 부문별로 세 명의 장인이 있다. 한형준 제와장, 이근복 번와장, 홍창원 단청장이다. 각각 전통기와 굽기, 기와 덮기, 단청 칠하기 분야의 장인이다. 이 중 제와장과 번와장은 국내에 1명밖에 없다. 이날 만난 이근복(62·사진) 번와장은 2008년 중요 무형문화재 121호로 지정됐다. 지금까지 경복궁 수정전, 창덕궁 돈화문, 법주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등 국보급 문화재 수백여 건의 보수공사에 참여했다.

숭례문 복구에 쓰이는 전통기와는 2만2000여 장. 문루 위층에 1만2000여 장이, 아래층에 1만 장이 깔린다. 기와 한 장 무게가 6~7㎏ 정도다. 기와 이기, 즉 번와(<7FFB>瓦)는 일반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용어다.

이 번와장에게 고건축에서 기와 덮기가 왜 중요한지부터 물었다.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결정하는 기술입니다. 멀리서 봤을 때 건축물에서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오는 부분이 기와가 깔린 지붕마루니까요. 기와는 추녀의 선을 만들어 줍니다. 목수가 지붕 곡선을 아무리 예쁘게 잡았다고 해도 기와를 솜씨 있게 이어야 날아갈 듯한 선, 버선코 같은 선이 나옵니다.”

기와공사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정은 적심(積心)이다. 서까래와 지붕 사이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목재를 넣는 작업이다. 10여 명이 사흘간 꼬박 매달렸다. “그 위에 단열과 습기 조절을 위해 보토(補土)라는 흙을 덮은 후 기와를 깔지요. 적심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기와 선이 살지 않고, 너무 적으면 기와가 부서지기 쉬워요. 이 과정을 서툴게 하면 균열이 생겨 비가 새게 되죠. 비가 새서 적심이 썩는 건 100% 기와 공사 책임입니다. 비만 안 맞으면 전통건축물은 천 년이 지나도 끄떡없어요.”

이번 작업에선 지붕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기와 뒷부분에 구멍을 뚫어 구리선으로 연결했다. 일부에서 전통기법이 아니라고 문제 삼은 대목이다. 그는 “구리선은 눈이 많이 오거나 했을 때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는 처방인데 이걸 무조건 옛날엔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와 무게를 지붕에 골고루 나누는 일도 중요하다. “기와 하중을 못 이겨 추녀가 처지고 서까래가 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해체·보수공사 중인 수원 팔달문도 기와 무게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숭례문 같은 중층건물은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이죠.”

2003년 보수공사를 마친 경복궁 근정전도 당시 네 귀퉁이를 받치는 고주(高柱)가 부러졌다. 역시 지붕 무게를 못 견딘 탓이었다.
잠시 시계를 돌려 2008년 2월 10일, 그날로 돌아갔다. 국보 1호에 일어난 화재는 이 번와장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사건이다. 1997년 숭례문 보수공사에 참여했던 터라 심정은 더 남달랐다.

-화재 소식을 언제 들었나.
“집에서 TV를 보다 자막으로 뜬 뉴스 속보를 봤다. 너무 놀라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 달려갔다. 아마 소방관들은 내가 누군지 몰랐을 거다. 미친 사람처럼 무작정 뛰어들었다. 물길이 더 멀리 나가라고 소방호스 꺾어진 부분을 일일이 펴고 다녔다. 그때부터 새벽 5시가 넘도록 앉아보지도,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불 끄는 걸 도왔다.”

-심경이 착잡했을 것 같다.
“내 육신이 불타는 것 같았다. 특히 다 탄 숭례문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 심정은 말로 다 못한다. 지금도 그때가 눈에 선하다. 국민들이나 문화재청 공무원들도 참담했겠지만 직접 손을 댔던 장인들 느낌은 또 다르다. 평소 난 내 손이 닿은 건물은 다 내 집이라고 여기고 살았다. 주위 사람들한테도 ‘5대 고궁(경복궁·덕수궁·창덕궁·경희궁·창경궁)이 다 내 집이니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고 말했었다. 숭례문 앞을 지날 때마다 느낌이 얼마나 뿌듯했었는데….”

-화재 진압을 둘러싸고 논란도 있었다.
“숭례문은 길가에 있어서 궁궐에 비해 진화가 쉬운 편이다. 그런데 기와를 뜯어서 물을 뿌렸어야 하는데 기와 위에 그냥 물을 뿌리다 보니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 올해 5월 감사원 발표를 보면 강회다짐(기와와 적심목 사이에 석회와 흙 등을 섞어 다져 넣는 것) 층이 두꺼워 진화가 어려웠다고 하는데 그건 전통건축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다.”
이 번와장이 전통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버지 덕분이다. 전북 임실에서 목수·건축·미장 등을 하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늘 공사 현장에 데리고 다녔다. 잔심부름을 하며 자연스레 일을 익혔다. 기와가 집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그때 알게 됐다. 청년이 되자 전통건축을 좀 더 배우고 싶어 서울로 올라왔다. 돈암동에 있는 건재상에서 일을 했다. 기와집이 많은 성북동·명륜동·혜화동의 일감이 들어왔다. 이후 와공(瓦工) 고(故) 기선길에게서 3년간 기와 일을 배웠다. 빨래도 하고 밥도 짓고 용돈을 타 쓰며 도제식으로 기와 이는 기술을 익혔다.

-기와 작업을 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기와 이는 일은 특히 전통건축에서 제일 힘든 분야라고들 한다. 지붕 위에 올라가야 하니 위험하다. 잠깐 쉴 때도 지붕 경사면에 매달려 쉬어야 한다. 80년대엔 안전발판도 없었다. 작업하다 떨어지면 불구가 되거나 죽는 거였다. 그렇게 하루 15시간을 일했다. 더울 때도 문제다. 지상이 30도면 기와는 열을 받아 달아올라 40도쯤 된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엄지발가락을 계속 오그리고 있어야 하고 바닥이 얇은 신발을 신다 보니 발바닥이 어찌나 뜨거운지 모른다. 숭례문 현장은 가설덧집 때문에 통풍이 안 돼 더위가 더 심하다. 땀을 하도 많이 흘리니까 염분 보충을 위해 굵은 소금을 물과 자주 먹는다.”

-문화재 보수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나무가 썩은 걸 발견할 때가 제일 안타깝다. 새 나무가 보기엔 좋을지는 몰라도 나무는 오래된 게 좋다. 물건도 골동품이 가치를 인정받는 것과 똑같다. 보수공사 할 때마다 가장 먼저 따져보는 게 남아있는 나무를 얼마나 살릴 수 있느냐다. 숭례문도 쓸 만한 부분은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천 년을 내려온 나무를 썩었다는 이유로 버려야 할 때 얼마나 가슴 아픈지 모른다. 기와공사가 잘못돼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책임감을 더 막중하게 느낀다.”

-기법을 전수하는 일도 중요할 것 같다.
“숭례문 복구를 계기로 전통기법과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느꼈으면 한다. 선조의 기법을 우리가 배웠으면 후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줘야 한다. 우리가 전통기법을 조금이라도 바꿔버리면 후손들은 알 길이 없다. 15년 전 경기도 고양에 전통 번와 기법을 전수하는 교육장을 만들었다. 두 아들도 나와 같은 분야 일을 한다.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은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어려서 여름방학이면 피서 대신 용돈벌이 겸 공사장에서 일을 시켰더니 관심을 갖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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