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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한 세계화와 과잉금융·과잉부채로 위기 증폭

중앙선데이 2012.07.08 02:21 278호 14면 지면보기
지난 4일 오후 ‘한국사회 대논쟁’ 좌담에 참석한 학자들이 토론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오른쪽부터 이지순 서울대 교수, 박상용 연세대 교수, 유종일 KDI 교수, 정용덕 서울대 교수(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 홍승일 중앙SUNDAY 에디터. 조용철 기자
홍승일 경제에디터=현대 문명국가의 시민들은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부터 작금의 유럽 재정위기에 이르기까지 세계경제와 글로벌 증시의 키워드는 ‘위기의 상시화’와 ‘세계화의 부작용’이다. 분명 경제위기는 지난 세기보다 자주 일어나고 그 파장도 국지적이 아니라 지구촌 전반으로 강하고 넓게 파급된다. 사회과학 대논쟁의 직전 12차 토론 주제가 유럽 재정위기였다. 시야를 좀 더 넓혀 위기가 빈발하는 시대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위기는 왜 점점 잦아지는지, 정부와 기업·가계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우리나라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에 특히 절실한 질문들이다.

연중 기획 한국사회 대논쟁 <13> 글로벌 경제위기 왜 빈발하나

이지순 서울대 교수=사실 위기는 우리와 늘 같이 있지 않았나. 경제위기가 빈번해졌다고 느끼는 건 우리 경제가 그만큼 세계경제에 깊숙이 편입됐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 역사와 위기가 공존해 왔던 건 인간이 능력에 벗어나는 일을 종종 하기 때문 아닌가 싶다. 세계경제가 통합되다 보니까 따로따로 살던 시절엔 별 탈 없던 일들이 시스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됐다. 물론 경제혁명이나 시장 발달 등으로 인류는 위기 대응 능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인간의 근원적 불완전성 탓에, 또 지구촌 경제의 단일화로 예전에 없던 큰 위기를 자주 겪는 것 같다.

박상용 연세대 교수=두 가지를 말씀 드리겠다. 위기가 수천 년 역사에 죽 있어 왔지만 요즘 위기는 예전과 다르다. 지난 20~30년 동안의 경제위기를 보면 실물 쪽보다 금융 쪽에서 원인을 제공하는 것 같다. 금융과 실물경제가 너무 괴리됐다. 금융의 자기증식으로 과잉금융·과잉부채를 초래했다. 지난 30년 동안 금융 분야 혁신이 많이 일어났는데 이것도 내가 보기엔 과잉혁신이다. 규제 당국이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혁신이 과도하게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처럼 문제가 된 파생금융상품은 과잉혁신을 통해 정보 비대칭을 심화시킨 사례다. 이를 등에 업고 미 월가에서는 과도한 ‘위험 선호(Risk taking)’가 횡행했다. 위험도 높은 투자가 성공하면 고액 연봉을 받고, 잘못되면 (구제금융으로) 납세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도덕적 해이가 금융업계에 만연하게 됐다.

또 한 가지는 통합된 세계시장을 규율할 만한 ‘세계 정부’ 시스템의 부재다. 금융시장의 국경이 사라졌는데 시장 규제는 나라별로 하기 때문에 규제 지배구조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미스매치(불일치) 상황이다. 특히 다국적 금융회사나 대기업들이 통일된 글로벌 규제 없이 차익거래를 일삼고 과다 이윤을 챙기다 보니 한편에서는 경제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게 됐다. 아마 두 번째 문제점이 더 심각할지 모른다.

유종일 KDI 교수=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정부가 개입하고 복지국가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자동 안정화 장치가 작동하고 경기변동도 완만해졌다. 대규모 금융위기도 사실상 사라졌다. 국내적으론 강력한 금융규제가, 국제적으론 브레턴우즈 체제가 작동해 금융이 비교적 안정됐다. 그런데 70년대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와해돼 변동환율제로 전환하고 유로·달러 시장 등 역외금융이 발달해 자본 이동성이 증대되면서 투기 자본이 활개쳤다. 다시금 금융위기의 토양이 조성된 것이다. 그것의 정점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2008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사이먼 존슨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위기의 배후에는 늘 소수 특권적 정치·경제 세력이 있다”고. 그들이 과욕을 부릴 때 위기가 터지는데 미국이, 월가가 당시 그랬다는 이야기였다. 욕심은 욕심을 낳는다. 금융위기 패턴은 이렇다. 금융위기가 한번 몰아닥쳤다가 지나가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점점 과감하게 투자하는 사람이 돈을 벌면서 나중에 매니어로 발전하고 또다시 버블(거품)이 생기고 그러다가 패닉(공황)·크러시(붕괴) 과정이 반복된다.

세계경제의 거버넌스(governance, 지배구조) 이야기를 방금 하셨는데 찰스 킨들버거 식으로 말하면 세계경제의 리더십 문제다. 국경이 사라진 세계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통일된 규제, 최후 대부자 기능이 있어야 한다. 글로벌 경제 리더십이 작동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할 만한 미국·유럽이 다 나가떨어졌다. G20(주요 20개국)은 아직 효과적인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앞으로 상당 기간 요동칠 수밖에 없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 이후 경제위기가 국내외적으로 빈발하는 느낌이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고, 금융자본주의의 거버넌스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도 동의한다. 하지만 금융권의 이윤 추구 속성 자체를 문제 삼는 건 과하다는 느낌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위기의 빈발을 이야기를 할 때 여러 위기를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위기별로 원인을 따져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한국 등 동아시아의 외환위기와 미국발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는 모두 나름의 원인이 있다. 뭐가 같은지, 뭐가 다른지 면밀히 따져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박상용=약간 다른 각도에서 부연 설명하겠다. 20세기 들어 미국식 자본주의는 많은 나라의 경제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많은 나라가 발전했다. 그런데 시장을 규율하는 게임 룰을 각국 정부가 만들 때, 미국의 신자유주의 질서가 성공 모델이라고 해서 여러 나라에 무비판적으로 때로는 반강제적으로 이식됐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이런 미국식 신자유주의 질서가 부작용을 낳은 면이 있다. 가령 금융 글로벌화가 가속화하면서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의 금융업계가 경쟁적으로 정부에 규제완화 로비를 펼쳤다. 클린턴 정부 때는 투자은행의 부채, 자기자본 규제를 거의 없앴다. 그 결과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다.

유종일=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월가 금융자본의 입김 아래에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세계경제 앞날이 어려울 것이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에서 목소리가 부쩍 커진 인물인데 뉴욕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다. 규제받아야 할 사람이 규제 당국 대표를 겸하는 시스템이다. 무엇보다 리스크 관리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를 자처했는데 최근 투기적 거래에 실패해 20억 달러 손실을 봤다. 자본주의하의 이윤 추구를 누가 뭐라 하겠나. 문제는 이윤추구 행동으로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온당치 않은지 따져야 한다. 금융회사가 구멍가게도 아니고 제조업체와도 다르다. 문제가 생기면 사회경제적 파장이 너무 커 그렇게 놔둘 수 없는 거 아니냐. 그런데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모럴 해저드가 횡행하면 무리한 리스크 테이킹은 계속될 것이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살살 한 금융개혁마저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한다. 미국의 이런 리더십으로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를 제대로 이끌기 힘들다. 금융위기의 빈발을 막으려면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박상용=금융위기는 정치 쪽 책임도 크다. 민주주의 정치는 선거를 통해 경쟁하니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빠지기 쉽다. 특히 금융을 서민지원의 수단으로 활용할 때 위험이 증폭된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클린턴 정부 때 내 집 마련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싹텄다. 대출규제 완화해 소득 낮은 계층이 집을 사도록 부추긴 것이 발단이었다. 우리나라의 2000년대 중반 신용카드 대란이나 최근 저축은행 사태도 서민을 돕겠다고 무리수를 둔 탓이다. 또 유권자 표를 의식해 복지 프로그램을 마구 늘리는데, 결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많이 하고 비용은 당장 투표권도 없는 후세에 전가시키는 꼴이다. 유럽은 더 심해 다음 세대뿐만 아니라 유로존 내 다른 나라에 부담을 전가시키려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의 선거제도가 세계화 시대를 맞아 부작용을 빚고 있다.

이지순=금융을 다른 정책의 수단으로 애용하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의 1997년 외환위기도 금융으로 대기업 지원해 주다가 곪아 터진 것이다. 중소기업에 퍼주는 것도 물론 문제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벤처산업의 ‘닷컴 버블’ 붕괴도 근본적으로는 금융 이해가 부족한 정책 탓이다.

강인수=금융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유럽 재정위기만 해도 정치적 의사결정 잘못이 크다. 17개국 유로존 국가 중 가입 때 재정적자 비율(국내총생산 대비 3% 이하)을 지킨 나라가 거의 없다. 사실 출범 이후 상당 기간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할 것 없이 유로존의 혜택을 봤다. 유로존 덕택에 자본조달이 쉬워지고 외환 리스크가 없어져 역내에 자본이 많이 유입됐는데 이게 생산적인 부분에 쓰이지 않은 나라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이지순=그렇다. 경제위기는 가계의 경우 소득보다 소비를 많이 하고, 기업은 무리하게 투자하고, 정부가 재정적자를 많이 일으킨 탓이다. 미국 정부의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재정적자)도 매우 오래 지속했다. 기축통화국으로서 계속 돈을 찍어 막았는데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졌다. 그런 메커니즘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유종일=여러 경제 주체의 과다지출을 중심으로 경제위기를 설명하는 데는 다소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이런 과다지출은 잘못된 경제시스템이 부추긴다. 가령 금융 부문의 과잉팽창이 거품과 과다지출을 만들어냈다. 유럽 위기만 해도 방만한 복지와 과도한 재정지출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다. 그리스는 애초부터 재정이 안 좋아 유로존 가입조차 어려웠는데 정치적으로 가입했다. 요즘 위기를 겪는 스페인·아일랜드 같은 나라는 흑자국이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세수가 줄고 긴축정책을 펴면서 졸지에 불황과 재정위기를 맞은 것이다. 과도한 지출이라는 점으로 위기를 전부 설명하기 힘들다.

박상용=경제위기 빈발의 원인을 글로벌 불균형에서 찾을 수도 있다. 세계 시장이 통합되면서 중국·브라질·러시아·인도네시아 등 인구가 많은 신흥 국가의 노동력이 대거 노동시장에 편입됐다. 이들의 소득 중 소비하고 남은 저축이 자국 내에서 투자되지 못하고 미국·유럽 등 선진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가 과잉유동성을 초래하면서 금융산업의 거품을 키웠다. 브릭스(BRICs) 같은 인구대국이 꾸준히 경제 성장을 유지하는 한 이러한 불안정 구조는 지속될 것이다.

강인수=금융 문제가 해결되려면 실물경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머니게임의 부가가치 창출력은 한계가 있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들은 생산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길게 보면 중국·인도 같은 나라의 노동인구가 두 배 가까이 급속히 늘어 세계경제에 편입됐는데 이들이 소비를 열심히 해줘야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궁극적으로 소득이 늘어야 부채를 갚을 수 있다.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투자와 생산이 늘면서 실업이 준다. 이런 식으로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홍승일=자연스레 해법 부분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논의를 정리하면 과잉금융과 금융의 실물경제 지배, 이로 인한 부채 과다로 경제시스템이 취약해졌다는 점, 또 하나는 무질서한 세계화를 통제할 글로벌 지배구조가 없다는 점이 경제위기 빈발의 원인으로 집약된다.

이지순=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단기적 재정적자는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곤란하다.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늘어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박상용=정부 부채가 많아 재정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 많이 하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폴 크루그먼이나 조셉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는 이를 극력 반대한다. 지금 재정 건전성을 따지다간 공멸한다는 것이다. 재정이 단기적으로 악화되더라도 정부 지출을 늘려 경기를 진작해야 할 때라고 한다.

강인수=유럽발 금융위기 해법으로 크게 세 가지가 언급되는 것 같다. 우선 환율조정을 해야 한다, 유로화 가치를 더 떨어뜨려야 한다, 이런 주장인데 미국이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긴축재정인데 이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 소득이 줄고 실업자가 늘어나 각국의 정치적 부담이 크다. 그래서 유종일 교수 말씀대로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를 유도해 실질 부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다. 우리나라는 좀 헷갈리는데 두 가지를 다 해야 한다. 경기부양도 하고 재정 건전성도 유지해야 한다.

박상용=각국이 다양한 부채에 시달리고 그래서 경기 부양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막대한 부채 수준을 낮추는 데는 20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20년 동안 많은 나라가 경쟁적으로 고성장 정책을 추구해 부채를 줄여야 하는데 그에 들어가는 에너지 자원은 유한하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 같은 인구 대국이 중진국 수준으로 올라갈 때 그 나라의 경제 성장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나 천연자원 규모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해외자원 확보는 중국에 훨씬 뒤진다. 그렇다고 첨단 신기술이 골고루 있는 것도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경제에 앞길이 잘 보이지 않는데 올해 대선에서 이런 문제가 의제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지순=정치적으로 여러 논쟁은 있지만 현 정부가 추진한 녹색성장이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방법이 옳으냐 논란은 있지만 우리가 천연자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새로운 기술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정용덕=재정 확대가 단기적으로 불가피하다면 그 방향은 어때야 하는가. 산업 경쟁력 확대와 내수나 복지 확대 어느 쪽이 우선인가.

강인수=사회 인프라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 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것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재정정책은 중장기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기여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비 진작보다 생산적인 측면에 자원이 투입되도록 재정지출이 이뤄져야 한다.

이지순=좀 더 보충하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재정지출이 확대됐으면 좋겠다. 교육을 통해 인적자원을 키우고 거기서 소득이 창출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고용창출을 위해 서비스 산업을 혁신해야 한다.

유종일=좀 정치적 시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과감한 재정정책을 주문하기에는 최근에 우리 정부 부채가 급격하게 늘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 비율 절대치는 중장기적으로 크게 우려되는 수준은 아직 아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부채비율 상승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런데 4대 강 사업 등으로 정부 부채를 급격히 늘려놓고 정권이 끝날 때가 되니까 재정 건전성을 강조한다. 신나게 쓰고 다음 정권에 부담을 주니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박상용=정부 부채도 문제지만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해외 충격에 따라 국내 증시의 외국인 자금 유·출입이 심한 것도 이 문제에 비해서는 약과라는 생각이 든다. 가계부채 뇌관이 터지면 정말 걷잡을 수 없다. 금융회사들이 불안심리로 가계부채를 경쟁적으로 회수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필요하면 공적자금도 조성해 놓아야 할 것이다.

유종일=공감한다. 사실 인프라나 산업 경쟁력 강화, 장기적 고용창출에 도움이 되는 재정지출은 의미는 있지만 당장의 경기부양 효과는 작다. 그런 점에서는 복지와 소비진작에 직접 연결되는 재정 확대도 위기 때는 중요하다. 가계부채는 필요하면 약간의 탕감이 필요할 수도 같다. 돈을 빌려 부동산 투기한 사람들 탕감해 주자는 건 아니다. 평범한 서민들이 집 한 칸 마련하려고 대출 받아 집을 샀는데 집값 떨어지고 원리금도 갚지 못하는 ‘하우스 푸어’들이 양산되고 있다.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해 이런 문제를 풀면 좋겠지만 인구가 줄고 1인, 2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는데 근본적으로 어렵다.

박상용=유럽 위기도 문제지만 중국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내년께 중국이 경착륙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의 활로인 수출이 망가질 것이고 가계부채 등 여러 뇌관도 터질지 모른다. 정부와 언론 모두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과 그 여파에 대해 자주 경종을 울려야 한다.

유종일=미국·유럽 위기에 중국까지 경착륙하는 이른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시나리오도 상정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5%면 다른 나라에선 대단히 높은 수준이지만 10% 이상의 고공행진을 해 오던 중국 입장에선 재앙에 해당한다.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너무 높아 내수를 강화하는 쪽으로 힘써야 이런 외풍에 덜 당한다. 금융시장도 단기적으로 거시건전성 규제 같은 걸 강화해 외환 리스크를 낮추도록 대비해야 한다.

박상용=경제위기를 제대로 예측하고 대비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 사회과학도 좀 반성을 하자. 한국 학계는 너무 미국식이다. 연구 분야가 과도하게 세분화돼 있다. 분야별 칸막이가 너무 많고 칸막이 간 대화와 공동연구가 잘 안 된다. 사회현상을 진단 처방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우리나라 명문대나 연구기관 해외 박사의 상당수가 미국에서 배운 분들이라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취약할 수 있다.

유종일=미국 부동산 거품이 한창 진전될 때 재무 분야의 대가라는 유진 파마 교수가 “시장경제에서 버블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했다. 미국의 주류 경제학은 너무나 잘게 나뉘어지고 자기 모델의 세계에 빠져서 현실과 괴리된 이야기를 많이 해 왔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이 토대부터 재건축돼야 한다. 미시경제학을 보면 인간의 합리적 선택을 전제로 삼는데 ‘하드 사이언스’ 하는 물리학·화학도들이 보면 사이언스로 치지 않는다. 틀린 가정으로 현실을 설명하려 한다. 인간은 허점투성이인데 현명하다고 간주해 이론체계를 건설한다. 여기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진단 예측과 대응책이 나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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