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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할 때는 길게 봐야 미스샷 줄일 때 스코어 좋아

중앙선데이 2012.07.08 02:09 278호 20면 지면보기
지금 우리 증시 주가는 크게 빠지지도 오르지도 않는 지루한 양상이다. 주가의 큰 향배를 좌우하는 환율·금리 등 매크로(Macro·거시경제) 변수도 지지부진하고, 기업 실적 역시 뚜렷한 상승 동력이 되지 못한다. 방향이 잘 보이지 않으니 상반기 한때 7조원대에 달한 국내 증시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4조원대로 급감하는 등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20년 넘게 활동한 전문 투자가로서 이처럼 환경이 불확실할 때는 투자의 기본 원칙을 되짚어 보곤 한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첫째는 장기적 안목으로 시장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 이런 자세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고 주식 사서 무조건 오래 묵혀 두라는 뜻은 아니다. 주식 종목을 매수할 때 해당 기업의 대주주가 된다는 심정으로 마음속에 장기적인 성장의 그림을 그려보자는 뜻이다. 세계 3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캐피털그룹이 투자의사 결정을 하는 기준은 ‘그 기업의 지분을 100% 지불하고서라도 통째로 사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기업인가’라고 한다.

단기 전망은 상당 부분 최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할 수 있지만, 장기 전망은 전문가 예측이나 데이터만으로는 입증하기 쉽지 않다. 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과 이해력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특정 업종과 기업을 폭넓게 이해하다 보면 단편적 현상들에 파묻히지 않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핵심 투자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처럼 증시가 불안정할 때는 세상의 큰 변화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여러 분야 책을 싸 들고 휴가를 떠나 투자 자세를 가다듬는 게 낫다.

가령 지금 증시를 괴롭히는 유럽 문제는 단기적으로 풀기 쉽지 않은 구조적 문제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어떤 대책들이 필요한지 아마추어적 해답이라도 스스로 내려보는 탐구심이 필요하다.

개별 주식 종목으로 좁혀 보면 기업의 장기적 성장성은 대개 두세 가지 핵심 변수로 압축된 것 같다. 이 핵심 변수들이 서로 톱니바퀴 맞물리듯 좋은 방향으로 굴러가는지, 기업의 경영 전략은 잘 들어맞고 있는지 면밀히 들여다 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세상 어떤 주식도 확실한 수익을 담보하진 않는다. 가령 증시에서 이처럼 어불성설인 말은 없다. “친구가 좋다고 해서 사 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몇 년 지나 보니 꽤 돈이 돼 있더라.” 냉정하게 말해 그런 주식은 없다. 그야말로 운이 좋았을 뿐이다. 투자의 기본은 노력과 열정이지 운이 아니다. 남이 선물처럼 던져 주는 투자 아이디어에서는 한두 번은 몰라도 꾸준한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

또 다른 내 투자원칙은 ‘유연한 사고, 그리고 실수를 인정하는 겸손함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긍정·부정 요인을 종합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투자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투자자라고 옳은 투자 결정만 하는 건 물론 아니다. 자신의 투자 판단을 맹신해선 안 된다. ‘이보다 더 좋은 기업은 없다’는 생각에 함몰되면 그 회사가 제시하는 분홍빛 전망만 눈에 들어오고, 경쟁기업의 비판은 공연한 헐뜯기 정도로 폄하된다. 냉정을 잃은 데 대한 보답은 투자손실이라는 준엄한 결과로 나타난다. 물론 반대도 성립한다. 좋은 기업인데 부정적 요소가 부각돼 주가가 좀 내리면 참지 못하고 금세 내다 파는 수도 있다. 한참 지난 뒤에 ‘아차, 내가 그때 왜 팔았지?’ 하고 후회하곤 한다. 투자할 때 기대수익률 예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잠재 리스크가 어느 정도냐 하는 걸 판단하는 일이다. 골프 칠 때 좋은 스코어를 얻으려면 얼마나 공을 멀리 보내느냐보다 미스샷을 얼마나 줄이는냐에 신경 써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미국의 전설적 투자가 존 템플턴경은 “겸손한 마음가짐이야말로 지혜를 얻는 첫걸음이며 현명한 투자가의 덕목”이라고 했다. 성공 투자란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에 새로운 해답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다. 투자 환경이 달라지니까 부랴부랴 대응책을 강구하면 이미 때늦은 것이다. 변화 조짐을 남보다 먼저 찾으려고 매사에 더듬이를 곧추세우는 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미지의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올해의 반이 벌써 지났다. 바다 건너 이야기들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코스피는 다시 연초의 원점으로 되돌아와 있다. 주식시장은 커다란 괘종시계 같다. 가까이에서는 알아볼 만한 박자나 리듬도 없이 흔들리는 시계추의 바쁜 움직임만 보인다. 혼란스러운 시장의 모습 그 자체다. 하지만 한두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투자 시계의 바늘이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지 보인다. 시계가 가리키는 때가 상승장 행복에 취해 흥청망청하는 한낮인지, 흔들리는 거시경제 지표를 무시한 대가로 급락의 공포에 휩싸인 자정인지 잘 읽어야 한다.

한국 주식시장은 깊은 밤을 지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둠을 떨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리고 있고, 중국은 고정자산 투자를 다시 늘리기 시작했다. 한국도 주택시장 회복을 위한 정책들과, 하반기 경기를 살리려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가능성이 운위되고 있다.

공포를 이기는 투자, 군중의 움직임에 역행하는 투자를 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남들이 절망에 빠져 주식을 팔 때 사고 남들이 앞을 가리지 않고 사들일 때 파는 것이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크다. 불면의 밤을 보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새벽은 더디게 오되 여명이 가져다 주는 빛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황성택(46) 2008년 금융위기 때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한다는 뜻으로 ‘칭기스칸펀드’를 출시해 2년만에 1조원의 자금을 모았다. 종목을 선택할 때 기업 탐방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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