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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발레 연출반쪽의 성공

중앙선데이 2012.07.08 00:32 278호 14면 지면보기
국립발레단의 컨템퍼러리 발레 ‘포이즈’(Poise·6월 29일~7월 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안성수 교수와 유명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의 공동작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한껏 받았다. 더욱이 국립발레단이 창단 5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준비한 창작 프로젝트 1탄인 만큼 한국 발레사의 반세기를 정리하는 의미 또한 담고 있기에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그러나 제작 초기부터 의문이 들었다. 무용 작품에서 연출이 별도로 필요한 것인가. 안무 작업에는 연출도 포함하는 것 아니던가. 굳이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면 왜 패션 디자이너가 발레 작품에서 연출까지 맡았을까.

국립발레단 ‘포이즈’, 6월 29일~7월 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안성수는 발레의 기본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의 동작을 만들어내는 국내 몇 안 되는 안무가 중 하나다. 신문방송학도에서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다방면의 관심사를 가졌던 만큼 그의 연출력은 눈부시다. 집요하리만큼 움직임 하나를 모티브로 삼아 캐넌 등의 형식으로 동작을 완성하는 안무법 또한 독창적이다. ‘선택’ ‘볼레로’ 등 다수의 수작을 보면서 그의 연출력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러한 그가 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결정권이라 할 수 있는 연출이라는 지휘봉을 넘겨주어야 했을까.

하지만 누가 무슨 역할을 했든,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작품의 완성도가 만족스러우면 속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화제가 됐던 만큼 대작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1막 30분, 2막 30분 등 총 60분 동안 줄거리나 특정 내용이 없는 대신 ‘균형(포이즈)’이라는 주제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러시아군 제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하양, 빨강, 검정의 세 가지 색 의상은 하양과 빨강 배경의 무대와 조화를 이루며 간결함을 표현했다. 25개의 대형 직사각형 구조물은 공중에 직각으로 매달려 조형예술로서의 가치를 보여주었고, 지름 16m 크기의 대형 회전판은 다각도의 신체를 아울렀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와 바흐의 음악, 그 속에 녹아 있는 안성수 특유의 반복적 움직임은 실상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순미를 강조하는 미니멀리즘에 충실한 나머지 예술의 본질을 남기는 기본 개념마저 제거하고 만 것이다. 무용-음악-디자인, 셋의 ‘균형’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디자인의 압승으로 마무리됐다. 하인츠 슈푀얼리(Heinz Spoerli)의 2001년 작 ‘올 셸 비(All Shall Be)’가 바흐의 음악에 맞추어 빨간색을 강조하며 미니멀리즘 발레로서 극찬을 받았던 것이 기억났다. 슈푀얼리가 안무는 물론 무대, 의상디자인까지 맡았고, 별도의 연출자는 없었다.

명장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막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협주곡 2번에 맞추어 두 쌍이 함께 펼치는 4인무는 오선지 위의 음표를 나타내듯 시각적으로 매우 훌륭했다. 2막에서는 김보람, 박수인 등 4명의 현대무용수들이 광대처럼 끼어들면서 컨템퍼러리 발레가 가지는 자유로운 표현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발레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하체 움직임과 한삼이 공중에서 휘날리듯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상체의 유연함을 보여준 김지영의 노련미는 압도적이었다.

국립발레단이 지난 50년 동안 무척이나 빠르게 성장해 지금의 자리에 온 것인 만큼 앞으로 50년은 더욱 힘찬 박차로 세계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일관된 비전으로 무용 창작활동의 모델이 돼 주어야 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근 들어 개념이 흐려지고 있는 무용 창작의 핵심 키워드인 ‘안무’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이 시대는 ‘동작 짜기’의 기술적 능력만을 안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융·복합이라는 시대적 조류를 변명 삼아 타 분야의 이름 있는 예술가를 연출자로 모시는 안무가의 안일함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안무(choreography). 무용과 기록에 관한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본래 무용의 발 동작을 실제로 적는 것(오늘날 무보법 dance notation 으로 불린다)을 가리켰지만, 18세기 말 이후 무용을 만드는 기술을 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무용의 모더니즘 출현 이후 안무의 범주에 연출을 포함시키는 개념이 만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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