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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나서려거든 업종 1, 2위 업체 노려라

중앙선데이 2012.07.08 00:28 278호 23면 지면보기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스타인웨이(Steinway)라는 피아노 브랜드, 꽤 들어보셨죠? 세계 주요 연주홀에 놓인 그랜드피아노의 98%를 점유하는 최고 악기죠. 대당 가격 3억원 이상 제품인데 80여 개국에 깔려 있습니다. 제 스스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라도 피아노를 납품하고 싶어한 회사였는데, 이런 명품업체를 인수하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2009년 삼익악기가 이 미국 회사의 최대주주가 된 것입니다. 지난해엔 3%의 황금주까지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습니다.

CEO 일요 경영산책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②

저는 M&A를 고려할 때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가 1, 2위인 업체를 고릅니다. 그래야 인수한 덕을 볼 수 있죠. 또 불경기처럼 경영 환경이 나빠지거나, 익숙지 않은 업종이어서 우리 경영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덜 고전하지요. 브랜드 가치가 커야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를 완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승자의 저주란 인수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에서 치른 과도한 비용이나 인수 후의 경영난으로 심한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가리키죠. 1, 2위 브랜드를 인수하면 브랜드 가치를 축적하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미 GE의 1980년대 경영전략과도 상통합니다. 당시 잭 웰치 회장은 느슨해진 회사를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업계 1, 2위 하는 사업 부문 이외에는 거의 다 팔아버린 적이 있죠.

스타인웨이를 예로 보죠. 이 회사는 158년 역사의 세계 정상급 악기 회사이자 독보적 피아노 브랜드입니다. 50년 역사의 삼익은 최고급 목재를 사용하고도 스타인웨이 제품의 10분의 1 값밖에 받지 못합니다. 정보기술(IT) 업계에 이 법칙을 적용해보면 애플이나 삼성전자는 누가 인수하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고전 중인 노키아를 인수한다면 애플과 삼성을 따라잡으려고 기를 써야 할 겁니다. 제가 국내 한 시계업체 대표에게 스위스 시계 회사를 인수해보면 어떠냐고 권한 일이 있습니다. 브랜드 가치를 사라는 뜻이었죠.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면 글로벌 시장에서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데 그 단계를 뛰어 넘어보자는 제안이었어요.

저는 2000년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의 전신) 민영화 당시 경쟁 입찰에 참여했습니다. 두산 컨소시엄과 경합했는데 당시 상호신용금고(저축은행의 전신) 몇 곳이 부도나면서 컨소시엄 구성에 실패하는 바람에 마음먹은 입찰금액을 써낼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 두산 컨소시엄을 주도한 분이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입니다. M&A에 능한 분 아닙니까? 이분도 경영의 구조적 스피드를 높이려고 M&A에 힘쓴다고 하더군요. 어떤 원천기술 개발에 10년이 걸린다면 그 개발비를 단박에 투입해 그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사들이는 게 낫다는 것이죠.

유명 브랜드를 인수하면 다른 분야로의 확장이 용이합니다. 우리 회사 같으면 스타인웨이 생수를 만들어 팔 수 있겠죠. 유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1990년대 휠라의 라이선스 사업자로 참여하기 전 휠라는 스포츠 의류 브랜드였습니다. 신발은 제품 포트폴리오에 없었죠. 한국이 신발에 강한 점을 활용해 휠라 브랜드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본업인 의류보다 더 큰 비즈니스로 키웠지요. 의류에서 쌓은 브랜드 가치를 신발 쪽으로 전이한 셈입니다. 윤 회장의 뛰어난 경영 능력이 드러난 예입니다.

‘중국에 따라잡히고 일본은 저 멀리 도망간다’는 샌드위치론이 한때 풍미했지요? 우리 제품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면 이런 우려를 상당 부분 덜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 업체들과 비즈니스 상담을 해보면 지난 5년 동안의 엔화 강세에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일본 기업 특유의 저력으로 잘 버텨 왔지만 상당수 업체는 한계에 달했다는 느낌을 주지요. 브랜드 파워로 일본을 추월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해외 M&A는 대기업만의 관심사는 아닙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돈도 경험도 부족하지만 사업 모델이 좋으면 외부 도움을 받아 한번 시도해볼 만합니다. 다만 브랜드 가치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회사인지가 중요합니다. 만일의 경우 출구전략 차원에서 되팔기 쉬워야 하기 때문이죠.

노하우 하나 알려드리지요. 이런 중소 제조업체라면 한번 인수를 타진해볼 만합니다. 창업주가 연로해 은퇴할 때가 됐는데 2세가 없거나 이어받을 뜻이 없는 회사가 하나요, 창업주가 돌아가신 뒤 어쩔 수 없이 부인이 경영하는 회사가 또 하나입니다. 이런 기업주에게 신뢰를 얻으면 ‘이 사람 정도면 내가 어렵사리 키운 회사를 잘 지켜나가겠구나’ 하면서 회사를 좋은 조건에 넘기기도 합니다. M&A 타이밍도 중요한데, 이런 사람들과 평소 친분을 맺으면 언제 기업을 인수할지 적기를 고를 수도 있습니다.

좋은 회사라고 M&A 결과를 너무 낙관하다가는 큰코다칩니다. 회사가 괜찮아 보인다고 인수자금을 너무 많이 들였다든지, 인수 후 경기가 예상 외로 급전직하한다든지 하면 곤욕을 치를 수 있습니다.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고생만 잔뜩 하고 되판 일, 두산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여세를 몰아 미국 밥캣까지 인수했다가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고전한 일이 그것입니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려면 인수 대상 기업을 소상히 파악하고, 특히 미래 가치를 제대로 따져봐야 합니다.

제 방엔 큼지막한 세계 전도가 걸려 있습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무역장벽을 쌓고 그 안에 안주해선 곤란합니다. 삼익악기는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올리고 종업원의 80%가 해외법인에서 일합니다.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그렇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와 FTA를 맺든 우리가 손해 보지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을 떨치고 이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할 생각을 해야죠. 다시 피아노로 돌아와 볼까요. 삼익 피아노는 대당 평균 1500달러인데 중국산은 800달러짜리도 있어요. 중국산 값이 우리 제품의 2분의 1에 가깝지만 우리가 시장에서 그리 밀리지 않아요. 중국산 식품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 같은 것이죠. 한·중 FTA로 우리 농업이 망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 농산물의 브랜드 가치를 키우면 지금의 두세 배 값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요. 해외에서 성가를 올리는 우리 대중음악 K팝이 걸출한 예입니다. 이수만 대표가 이끄는 SM의 아이돌 가수 연습생은 일본어·중국어·영어를 두루 잘하는 지망생들로 구성됩니다. 처음부터 해당 언어권을 겨냥한 인재를 양성하니까 현지에서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겁니다.
 


황금주(Golden share)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의사결정에 반기를 들 권리를 부여한 주식.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취약한 업체가 방어목적으로 자주 쓰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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