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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의 기술 자주독립에 품질 지상주의 더해 압축성장 완성

중앙선데이 2012.07.08 00:24 278호 24면 지면보기
현대자동차의 영광은 정주영·정세영 형제가 쌓아 올린 기반 위에 정주영 회장의 장남인 정몽구(74·사진) 회장이 꽃피웠다. 그는 1980, 90년대 현대정공과 현대차써비스를 경영하며 자동차 공부를 했다. 특히 자동차 서비스 분야를 담당하면서 현대차의 품질 문제를 정확히 파악했다. 출고 석 달도 안 된 신차가 사소한 결함으로 서비스센터에 다시 들어오고 소비자들이 거친 불만을 쏟아내는 걸 지켜봤다. 원래 컨테이너 생산업체였던 현대정공은 90년대 초 미쓰비시 차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형태로 갤로퍼· 싼타모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미쓰비시는 로열티 외에 기술지도 명목으로 매년 수십억원씩 챙겨갔다. 겨우 적자를 면하던 시절, 피땀으로 번 돈을 갖다 바치며 기술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경험했다. 품질·기술이 있어야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품질에 목숨 걸라’ 독려한 정몽구 회장

98년 현대차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품질이다. 수시로 울산, 충남 아산 공장을 찾아 도어와 보닛을 쾅 하고 닫아봤다. 나사가 삐져 나오거나 조립 틈새가 보이면 공장장은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났다. 정몽구식 긴장 경영이다. 현대차의 공장장(부사장급 이상) 가운데 부임 1년도 안 돼 그만둔 경우가 수두룩했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품질회의에서 품질을 구매·재경·판매 등 전사적인 책임 과제로 삼았다. 사소한 하자라도 원인을 추적해 책임자를 문책했다. 조직에 절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퇴직한 한 전직 사장은 “새벽부터 회장실에서 연락이 오니 오전 6시에 출근했다. 업무를 챙기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21층(회장실) 호출이 오면 그만둘 각오로 승강기를 탔다. 이런 긴장감이 고질적인 품질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2001년 바닥권이었던 미 자동차조사업체 JD파워 신차 품질 순위가 쑥쑥 올라갔다. 2009년 일반브랜드 순위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정상급에 오르기도 했다.

품질 이외에 경영의 또 한 축은 ‘세계로 세계로’다. 정 회장은 중역들에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의 꿈이 바로 ‘해가 지지 않는 자동차 왕국(생산기지)’ 건설이기 때문이다. 2014년이면 러시아·브라질 공장과 중국 3공장을 포함해 8개국에 연산 400만 대의 생산기지를 확보한다. 그렇게 되면 120년 자동차 역사상 해외 공장을 짓기 시작한 지 20년도 안 돼 해외 생산능력 400만 대를 돌파하는 최초의 완성차 업체로 기록된다. 국내 생산시설과 합치면 750만 대로 도요타·GM·폴크스바겐에 이어 세계 4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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