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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닥칠 질병 알아내는 데 단돈 100만원!

중앙선데이 2012.07.08 00:14 278호 28면 지면보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피 한 방울을 뽑아 유전 정보를 읽어내고 부모에게 아이가 앞으로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과 신체적 능력을 설명한다. 1997년 나온 앤드루 니콜 감독의 명작 ‘가타카(GATTACA)’의 한 장면이다. 수업 시간에 이 영화를 함께 본 뒤 학생들에게 ‘본인이나 자식의 유전 정보에 대해 알고 싶은가?’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알고 싶다’는 쪽과 ‘알고 싶지 않다’는 쪽이 반반 정도였다. 그런데 앞으론 이런 토론 자체가 무의미해지게 됐다. 우리 뜻과 상관없이 개인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는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마치 병원에서 X선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송기원의 생명과 과학 유전체 해독

인간 유전체인 DNA는 네 종류의 염기인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서열이 이중나선 구조로 쌍을 이루고 있다. 유전 정보를 해독할 수 있게 된 것은 DNA 시퀀싱(sequencing)이란 염기서열 해독 기술 덕분이다. DNA 시퀀싱은 1977년 미국 하버드대 길버트 교수와 그의 학생 맥섬에 의해, 그리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생어 교수에 의해 처음 개발됐다. 맥섬-길버트의 방법은 네 종류의 염기 각각에 특이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잘리게 한 후 그 자리를 읽어내는 화학적 접근이었다. 생어 방식은 DNA 이중나선을 복제할 때 특정 염기에서 더 이상 복제가 일어나지 않고 끝나게 해 끝 부분을 비교해 읽어내는 것이다. 길버트와 생어 교수는 이 공로로 198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생어 방법이 더 효율적이어서 DNA 염기서열 해독은 주로 생어 방식으로 이뤄진다.

DNA 염기서열 해독이 가능해지자 인간 유전체인 30억 염기쌍의 서열을 읽고 해석하려는 인간 지놈 프로젝트가 90년에 미국 에너지부와 보건부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인간 지놈 정보는 의학 및 생물학의 발달을 가져오고 암이나 알츠하이머 등 유전자 이상에 의한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16개국 연구소가 참여했고 2조7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 2003년 완료됐다. 인간 유전체 지도의 초안은 2000년 완성돼 6월 26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인류는 오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지도를 갖게 됐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정확도를 높이는 보완 작업이 이어져 2003년 완성된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이 인류에게 공개됐다. 이 정보엔 인간 유전체 99%의 염기서열이 99.99%의 정확도로 포함돼 있다.

인간 지놈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완료됐지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은 더 필요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의 비용과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영국·중국이 중심이 돼 ‘1000 유전체 프로젝트’가 발족했다. 이 프로젝트는 한두 사람의 유전체 정보를 읽는 게 아니라 적어도 다양한 종족 1000명 이상의 유전체를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는 것이다. 인간마다 존재하는 1% 미만의 미세한 유전적 차이 중 질환과 관련된 차이를 발견하고 의학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었다. 2010년 1000명 유전체 초안이 발표됐고 올해 3월 아마존을 통해 이 정보가 일반에 공개됐다. 현재는 세계 27개 인종 2500명의 유전체 정보를 읽는 일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빨리 여러 명의 유전 정보를 읽어낼 수 있게 된 것은 2007년 차세대 유전체 해독기술인 NGS(Next Generation Sequencing)가 개발된 덕분이다. 1세대로 불리는 생어 염기서열 기술은 정확도는 높지만 대규모 시퀀싱이 불가능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일루미나(Illumina)사에 의해 처음 개발된 2세대 NGS는 대량 병렬염기해독 기술을 사용해 한 번에 읽어낼 수 있는 유전체의 양이 매우 많다. 시간도 크게 단축시켰다. 2011년 10월 기준으로 인간 유전체를 읽는 데 800 만원이 들었다. 2014년엔 100 만원으로 하루 만에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올해 1월 라이프 사이언스사는 개인 유전체를 100 만원으로 하루에 읽어낼 수 있는 사무실 프린터기 크기의 이온 프로톤 염기서열 해독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3세대, 4세대 염기서열 해독기가 개발되고 있어 비용과 시간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의료 서비스엔 혁신적 변화가 예측된다. 개인의 유전 정보에 따라 미리 취약한 질병에 대한 예방과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인 치료법을 찾는 유전자 맞춤형 치료가 곧 가능해진다. 문제는 이에 수반되는 개인 유전체 정보 프라이버시와 차별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를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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