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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힘든 룰,패자 아닌 승자가 하차...황당 서바이벌 쇼

중앙선데이 2012.07.08 00:13 278호 31면 지면보기
이달의 가수가 되어 ‘나가수’를 떠난 박완규(5월)와 JK김동욱(6월).
국카스텐의 ‘The saddest thing’은 절묘했고, 서문탁의 ‘Black Dog’는 반가웠다. 패기와 감성, 기교를 다 갖춘 이 실력파 젊은 밴드의 스타 탄생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고, 지상파 주말 예능프로에서 레드 제플린을 듣는 일은 감격스럽다. 이번 주 김건모와 한영애가 들고 나올 노래는 무엇일까-. 확실히 이런 기대는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아니면 갖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점점 매니어 프로 수준으로 기울어가는 ‘안습’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가 선전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컬처 #: ‘나가수 2’ 유감

한 달여의 휴지기를 거친 뒤 시즌 2로 등장한 뒤에도 ‘나가수’는 계속해서 룰을 바꾸고 있다. 생방송에서 녹화방송으로, 시청자 문자 투표에서 모니터 투표로. 가수들을 대기실에 따로따로 모았다 한자리에 앉혔다가.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룰이란 없으니 ‘잘할 때까지 계속 해보라’는 심정으로 느긋하게 보고 있다. 결국은 좋은 가수의 좋은 노래를 듣게 해주는 것이 이 프로의 성사를 가를 것이므로.
그렇지만 애정을 가진 팬에게는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나의 불만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아무리 외국의 서바이벌 쇼를 토착화시킨 포맷이라고는 하지만 왜 ‘서바이벌 쇼’의 가장 핵심, 즉 ‘승자를 위한 쇼’가 아니냐는 것이다. 서바이벌 쇼는 연속된 승부를 거쳐 탈락자를 걸러내 마지막 승자를 가려내는 쇼다. 이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승자가 탄생해 가는 과정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최후의 승자가 얻는 행복에 공감하게 만드는 구조다.

그 과정에서 탈락자가 나오고 아쉬움을 낳지만 그게 용납되는 것은 시청자들과 프로그램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바로 ‘최후의 승자’를 낳기 위함이다. 최선을 다해 경쟁자를 물리친 최후의 승자는 희열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승자를 응원하며 함께 달려온 팬들은 폭발적인 행복함을 느낀다. 그런데 나가수는 시즌 1이나 2나 할 것 없이 지나치게 ‘꼴찌’에만 시선이 집중돼 있다. 시즌 1에서 1위는 말로만의 영예일 뿐 아무런 혜택이 없었다. 외려 꼴찌를 일곱 번 안 한 사람에게 명예졸업을 안겨주는 것이 가장 큰 영예였다. 시즌 2에서는 심지어 꼴찌를 가리기 위해 예선 본선을 치른다. 이렇게 되면 꼴찌를 하는 사람에겐 지나친 부담을 줄 수밖에 없고, 보는 사람들도 민망하기 그지없다.

서바이벌 쇼에서 꼴찌란 이 쇼에서 가장 못하는 사람을 가려서 쫓아보내야 한다는 의미보다 ‘승자’를 위해 결국 나머지 사람들은 언젠가는 떠나야 하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내보내는 마음이어야 한다. 그러니 꼴찌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훨씬 더 가볍고 간단해야 한다. 더구나 시즌 2에서는 예선을 거쳐 매월 최고 가수가 경연을 떠나도록 하는 이해하기 힘든 룰을 내놓았다. 2주 만에 1등을 하는 순간 지속됐던 가수의 행복감도, 팬의 행복감도 일시 중지되고 만다. 서바이벌 쇼의 기본이 승자와 시청자가 오랜 기간 함께 느끼는 ‘증진하는 행복감’이라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빈약한 스토리 텔링이다. 요즘의 나가수는 선곡도 제각각, 분위기도 제각각이어서 공연 장면만 따로 보면 더 이상 볼 것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고 감동의 스토리 같은 것에만 기대 임재범 같은 굴곡진 인생 스토리를 가진 가수들만 나오기를 기다릴 수도 없다.

진지한 음악프로임에도 불구하고 ‘예능프로’임을 강조하며 개그맨의 뜬금없는 멘트로 썰렁한 분위기를 만든다거나, “떨려요”만을 강조하는 무대 뒷모습은 음악 프로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노래 외의 이야깃거리를 바란다고 억지 웃음이나 감동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음악 프로인 만큼 음악 선곡의 주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수의 인생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도 있고, 준비나 편곡 과정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첫 가수 오디션 무대에서 불렀던 노래’라거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불러줄 자장가’ ‘친구에게 띄우는 가을 편지’ 아니면 훨씬 더 추상적인 주제에 따라 가수들로 하여금 ‘선곡의 예술’을 펼쳐보일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이야기도 이끌어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차분하거나 열광적인 일관성 있는 분위기를 통해서라면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쇼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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