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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의 적들

중앙선데이 2012.07.08 00:01 278호 30면 지면보기
‘충격 실태보고, 외국인과 이성교제’라는 MBC 프로그램을 보셨는지? 이 프로그램은 한국 여성들을 에이즈에 걸린 바람둥이 외국 남성들의 성적 노리개로 표현했다. 단언컨대 한국 내 모든 외국인이 이 5분짜리 영상을 다 봤을 거다. 혹시 보지는 못했더라도 들어는 봤을 거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봤을 때 너무나 선정적인 데다 엉성하게 만들어진 탓에 난 어느 외국인이 풍자를 위해 장난으로 만든 패러디 영상이라고 착각했다. 한국의 최대 지상파 TV 중 하나인 MBC의 영상이라는 얘길 들었을 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한국인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그 내용이 얼마나 잘못됐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지를 제대로 알아챘는지 궁금하다. 대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목적은 뭔지, 정말로 궁금하다. 어떤 시청자를 대상으로 만들었는지도 알고 싶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이 프로그램에 비판적일 거라고 난 확신한다. 걱정되는 건 이 프로그램을 봤을 어린이들이다. 한국의 나이 든 세대들에겐 한국이 다민족 국가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다문화 사회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흐름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매년 늘어나고, 한국인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는 외국인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한국과 세계의 미래다. 이 아이들이 문제가 된 MBC 프로그램과 같은 편견에 노출되어선 안 될 일이다.

많은 외국인과 한국인들, 다문화 가족의 구성원들은 이미 MBC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 등을 통해 표출했다. 페이스북 모임도 결성했고, 회원 수는 80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MBC의 공식 사과를 원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MBC는 아직 사과하지 않았고, 그럴 가능성도 상당히 낮아 보인다.

MBC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 MBC는 요즘 파업사태로 내부 트러블이 많은 상황이다. 문제의 영상은 외주 제작이었고 MBC는 그 영상의 방영을 허용했을 뿐이다. 아마도 허가 과정에서 그다지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MBC가 지금처럼 근무 직원이 모자라거나, 근무 직원들마저 피로감이 누적된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 영상은 절대 방영되지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이미 벌어진 사태에 대해 변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MBC는 문제의 방송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옳다.

한국에 10년 가까이 사는 동안 나 자신은 한 번도 이런 식의 인종차별을 겪은 점이 없다는 것도 말해두고 싶다. 아, 한 번은 어떤 깡패 같은 사람이 날 보고 “양키는 집으로 돌아가 버려”라고 소리 지른 적은 있다. 하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한국인들은 친절했다. 그래서 난 공공 미디어가 도대체 왜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을 왜곡해서 전달하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질문이기도 하다. 삶이 예술을 모방하는가? 아니면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가? 만약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면 미디어의 이런 왜곡은 한국이 글로벌 사회에서 뒤처지고 있음을 내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것이라면 MBC의 기자·PD·작가들의 견해와 나의 개인적 경험 사이에 왜 아무런 접점이 없는지 이상할 따름이다.

선정성은 장사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서구 TV에도 선정성은 있다. 다이어트 관련 상품 광고들은 어딜 가나 똑같이 과장되고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우린 그 선정성을 인지하고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MBC가 방영한 문제의 프로그램이 무례하고 잔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항상 마주치는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며 배려심이 깊다. 그런 점을 한국 내 외국인 사회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미셸 판스워스 미국 뉴햄프셔주 출신. 미 클라크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아트를 전공했다. 세종대에서 MBA를 마치고 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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