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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꿈을 꾸는 이유

중앙일보 2012.07.03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문창극
대기자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제 6개월도 남지 않았다. 관훈클럽이 후보 지망자들을 불러 토론을 시작했다. 예비 후보들이었지만 가을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한마디로 과거 냄새가 물씬 났다. 문재인은 “내가 독재에 맞서던 시대에 (박근혜는) 독재 핵심에 있었다”고 했다. 정몽준 역시 10월 유신을 거론했다. 그는 “경제발전이 장기 독재의 도구였다”면서 “박근혜가 유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신 때 무슨 말을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의 인물사가 독재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가 계속 이슈화된다면 선거는 과거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열매를 손에 쥐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우리는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가. 이번 대선을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이 많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경제위기가 각 나라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주의 체제는 개인을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들의 선택에 의해 권력의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지도자들은 개인의 눈치를 보고 여론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특히 SNS 등 전자 기술의 발달은 실시간으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이것이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우리는 개인을 중시하고, 권력은 악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권력에 반대하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민주세력이 아마 그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은 힘이 없다. 권력이라는 매개물이 있어야 힘을 모으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유신 시절은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권력의 속성이 가장 부각되던 때다. 그러므로 개인의 가치가 권력에 눌려 희생된 경우가 허다했다. 역설적이지만 그때도 민주주의의 위기였지만 지금도 민주주의의 위기다. 과거처럼 개인이 위축되어서가 아니라 권력이 긍정적인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개인을 리드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제는 민주주의를 하면서 어떻게 개인의 힘을 모을 수 있느냐다. 그 능력이 바로 리더십이다. 누가 흩어진 개인을 끌고 갈 리더십을 가지고 있느냐가 이번 대선의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로 향하는 마음이다. 비전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내세우는 것이 고작 사회민주주의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의 틀이다. 여야 후보들은 복지를 내세우지만 그 내용은 복지의 비용을 누구에게 많이 지울 것인가의 경쟁일 뿐이다. 비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번영을 가져다줄 시스템을 만들고, 사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도덕적 부흥이 일어나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각 개인이 인생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비전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가 이번 선거의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한다.



 리더십과 미래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인물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박근혜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소신과 원칙을 강조하며 실증적으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여론에 끌려다닐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선 정국은 그로 인해 과거지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에게는 미래의 이미지가 안 보인다. 미래지향의 가치에 부합하는 사람은 안철수다. 물론 그가 아직 이렇다 할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정치는 상징이다. 안철수는 미래라는 상징에 힘입어 등장했다. 자수성가한 IT 기업인, 가진 부를 나눌 줄 아는 사람,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기득권에 때묻지 않은 참신함… 그런 상징 때문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 과학의 분야에서는 창조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창조적 발상은 아주 간단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이어령 『우물을 파는 사람』) 안철수는 경제에서는 진보, 안보에서는 보수라고 말했다. 그런 사람이 왜 야당하고만 짝을 이루어야 할까. 왜 박근혜와는 짝을 이루지 못할까. 정치에서 이러한 창조적 발상은 불가능한가? 정치는 왜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흔히 그 이유를 ‘권력 속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게 바로 고정관념이다. 권력 주변의 인물들이 만들어낸 속박이다. 두 사람을 짝지을 창조적 방법은 없을까?



 권력의 고정관념으로는 불가능한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차원을 넘어 나라를 생각해보면 이런 창조적 질서가 생겨나지 말란 법이 없다. 이런 창조가 나올 수만 있다면, 이 나라는 분명히 한 번 더 도약하여 세계 최고의 나라로 비상할 수 있다. 내가 꿈을 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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