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즈 칼럼] 17만 명에게 듣는 세종대왕 ‘귀높이’

중앙일보 2012.07.02 00:47 경제 12면 지면보기
김정응
HS애드 상무
“뭐 하는 겨. 한마디 좀 해 봐.” 약 1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을 보니 그 당시 꽤나 충격이 컸었던 모양이다. 어머니 칠순 잔치에서 하객들의 성화에 감사 인사말을 한 적이 있다. 광고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많이 해본 터라 별 부담 없이 일사천리로 한 말씀 올렸다. 문제는 나중에 생겼다. 어머니로부터 너는 대학까지 나왔으면서 왜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던 것이다. 시골 어른들께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는 거였다. 하기야 평소 시골 어른들이 기대하는 바를 들은 적이 없으니 하고자 하는 말의 전달은 고사하고 공감, 소통의 단계까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함은 자명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은 ‘듣기가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이 안 통한다’ ‘말귀를 못 알아듣겠다’ 등 소통 부재에 대한 아우성이 왜 나오겠는가.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해 버리는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의 결과에 다름아니다. 베갯머리송사를 하는 부부 사이에서도, 하루 온종일을 함께하는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나아가 모두가 국민을 위한다는 위정자들 사이에서도 소통 부재의 1차 원인은 상대방의 입장을 잘 듣지 않음에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진정한 소통의 시작은 경청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경청 기술이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역사적으로 볼 때 듣는 기술의 최고봉은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새로운 세법 ‘공법’ 실시에 앞서 위로는 고관부터 아래로는 농민까지 약 17만 명에게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물었다. 어느 군주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청정(聽政)이다. 찬성 비율이 높았지만 반대 의견을 또다시 수렴하고 논의해 13년 후에나 세제로 확정했다. 세종은 부왕 태종으로부터 일찍이 ‘일의 대체를 안다’고 평가받을 만큼 통찰력이 뛰어난 임금이었지만, 신하들을 자주 불러 거리낌없이 직언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오늘날 마케팅 역시 듣는 기술이 경쟁력이다.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자와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마음을 잡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소비자의 관심과 희로애락을 듣고 또 들어야 한다. 물론 기업들은 지금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듣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장조사도 하고 컨설팅도 받는다. 그러나 듣기도 진정성과 간절함이 있어야 제대로 들리는 법이다.



 꽤 능력 있다고 평가받는 한 마케터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소비자와 만나는 구매접점 현장을 찾는다. 하루 종일 커피숍에 죽치고 앉아 젊은이들의 눈과 입을 보기도 하고, 전철을 타고 정처없이 이리저리 오가며 사람들을 요모조모 살핀다. 또한 남성이면서도 주말에는 주부들 틈에 끼여 장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소비자의 원하는 바를 더 생생히 듣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경청의 자세다.



 어느덧 한 해 중간에 와 있다. 상반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반기의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더 새로운 전략 구상의 일환으로 경청의 프레임을 채택해 보자. 지음(知音)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눈높이’에 이어 ‘귀높이’라는 남다른 경쟁력 있는 가치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응 HS애드 상무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