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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응급실 ‘전문의 전화 당직’의 모순

중앙일보 2012.07.02 00:00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수련
사회부문 기자
가 본 사람은 그 고통과 초조함을 안다. 병원 응급실 말이다. 통증과 두려움에 떠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재빠른 판단과 손길을 기다린다. 현실은 어떤가. 환자와 가족들은 시장 같은 응급실 곳곳을 두리번거리며 초조하게 의사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도 의사는 오지 않고 어떨 때는 인턴이나 전공의(레지던트), 응급의학 전문의 등이 반복해 증세를 묻기도 한다. 이쯤 되면 환자의 불안이 극에 달한다. 이런 응급실을 지난해 국민 5명 중 1명이 찾았다.



 정부는 8월부터 응급실 당직은 전문의만 서도록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5월 18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때 3년차 이상 전공의들이 당직을 서도록 했으나 이들이 반발하자 없던 일로 했다. 얼핏 봐선 의대를 갓 졸업한 인턴이나 1년차 전공의에게 몸을 맡겨온 환자들에겐 나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마냥 반길 만한 것 같지 않다. 전문의들이 당직을 서되 반드시 병원 안에 없어도 된다는 점이 걸린다. 집에 있다가 또는 병원 근처에서 일을 보다 전화를 받아도 당직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웬만한 응급환자는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담당하지만 이들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심각한 환자는 내과·외과 등의 전문의가 봐야 한다. 그래서 당직의사라는 비상진료체계를 갖추도록 의무화한 것인데 이들이 병원에 있지 않아도 되게 정부가 길을 열어줬다. 이게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를 위한 길인지 묻고 싶다. 정부 안대로 하면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전화 당직’은 병원협회가 제안한 ‘일종의 꼼수’인데 이를 정부가 받아준 것이다.



 전문의 당직은 방향은 맞지만 그리 가려면 전문의가 크게 늘어야 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지난해 6월 응급의료법이 바뀐 뒤 정부는 그런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응급의료기금이나 예산, 응급진료 수가(酬價)를 올리든지 대안을 냈어야 한다. 손 놓고 있다가 ‘3년차 레지던트 당직 의사’ 안을 냈다가 이마저 불가능하게 되자 ‘전화 당직’이라는 기묘한 안을 냈다.



 지금 당장 전문의 당직 체계로 가기는 쉽지 않다. 인턴과 전공의 1년차가 응급실을 지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당분간은 ‘2~4년차 전공의+전문의’로 가는 게 현실적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그리 하고 있다. 병원 실정에 맞게 선택하게 해야 한다. 대신 전공의 보수를 정부가 크게 지원하든지, 이들의 수련 프로그램을 바꾸든지 등의 대안이 있어야 한다. 이게 선결돼야 한다. 응급실은 국민 생명의 최전방 보루다. 나라가 할 일이다. 어떤 이슈보다 우선순위가 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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