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무관심이 가정폭력 부른다

중앙일보 2012.07.02 00:00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최근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50년을 함께 산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수십 년간 남편과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오던 아내와 자녀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하고 있다. 흔히 안식처라고 생각하고 싶은 가정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하루아침에 발생하지 않는다. 그 사건들의 뒤에는 짧으면 몇 년, 심지어 50년 넘게 지속했던 가정폭력이 있다. 세상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세상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가정폭력 말이다.



 중앙일보 5월 29일자로 보도한 ‘홈메이드 크리미널(home made criminal-가정불화가 빚은 범죄자)’ 기사는 생애과정이론적 접근을 통해 성장기 가정환경의 중요성과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이 탐사보도는 수원지방법원 강력범죄자 159명의 양형조사보고서와 판결문을 분석해 대상자의 34.7%가 부모의 직접적인 신체적·언어적 폭력과 방임 등의 학대를 경험했으며, 66.7%가 부모의 이혼·외도·학대·알코올중독·정신질환 등을 경험했음을 보여줬다. 그만큼 성장기의 가정환경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여성의전화에 상담을 요청한 한 20대 여성은 대학을 졸업하고 그 어렵다는 취업에도 성공했지만 자신의 사회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린다’고 자신을 표현했다. 이 여성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극심한 폭력에 시달려 왔다. 지금은 별거 중인 아버지는 어머니를 외출도 못 하게 통제했고 사소한 일로도 폭력을 일삼았으며 심지어 흉기를 들기도 했다. 아직도 이 여성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올까 봐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등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이웃의 가정폭력 사건을 목격하면서 불안과 우울증세가 악화해 토하는 증상과 불안 증상으로 병원치료를 시작했다.



 가정폭력의 발생과 지속 과정에는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무관심이 커다란 역할을 한다. 얼마 전 개최된 한국여성의전화의 ‘여성폭력 피해자의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토론회’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였던 아버지를 어머니가 살해한 사건의 한 여성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저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 증인이며 유가족”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기에 사람들이 죽음의 극한에까지 몰리고, 수시로 강간당하는 이 엄청난 폭력에 무관심한지 정말 알고 싶어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역시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의 또 다른 여성은 자신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발 저희 아버지의 손이 사라지도록 해 주세요’라는 절규의 일기장을 공개했다. 이러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절규에 우리 사회는 어떠한 대답을 주었는가? 피해자의 살려달라는 절규에 “부부싸움인 것 같은데…”라며 사소하게 취급하기 일쑤였다. “부부싸움인 줄 알았다…”는 이웃의 무관심이 결국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수원 성폭력 살해사건’이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주는 절망의 대답이다.



 가정폭력은 강력범죄의 온상이고 모든 폭력의 뿌리며 결과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달 5일부터 화요일마다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을 열고 있다. 가정폭력이 야만적인 범죄행위임을 기억하고 근절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하자는 게 목적이다. 가정폭력 관련법을 전면 개정해 강력히 처벌하고 예방교육을 모든 학교·직장·공공기관에서 실시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뀔 때 가정폭력으로 인한 강력사건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