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B정부 실세 재산가까지 왜 검은돈 함정에 빠졌나

중앙선데이 2012.06.30 23:11 277호 1면 지면보기
이상득·최시중·박희태 세 사람은 이명박 정권 탄생의 공신이자 실력자다. 이명박(MB)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며 고위 공직을 맡아 권력을 휘둘렀다. 세 사람은 신고 재산이 각각 77억원, 74억원, 97억원에 달하는 재산가다. 강부자(강남 땅부자) 내각으로 비난받을 때마다 이들은 “돈이 있어야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맥락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창업 공신’ 세 사람이 모두 돈 문제로 무너져 내렸다. 역대 정권의 권력 핵심들이 보여준 행태나 말로(末路)와 다르지 않은 데자뷰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이명박 정부는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는 자조와 비아냥이 터져 나온다.

이상득 전 의원 모레 검찰 소환

왜 그렇게 됐을까. 한마디로 한국 정치가 고비용·저효율의 후진국형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를 골자로 한 ‘오세훈 법’이 2004년 만들어졌지만 정치권 씀씀이는 여전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 때 이상득 전 의원은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공천자 30~40명에게 500만~1000만원의 ‘오리발’을 내려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대통령의 형인 이 전 의원은 MB가 못하는 집권당의 관리자 역할을 자처했다”며 “의원들 경조사까지 일일이 챙겼다”고 전했다.

전당대회가 열릴 때면 아예 뭉칫돈이 필요하다. 술 사고, 밥 사고, 골프 접대하는 돈을 포함해 20억~30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2008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당 대표 경선에 나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고승덕 전 의원에게 300만원을 건네려다 발생한 ‘돈 봉투’ 파문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청와대나 총리실 직원들의 회식, 단합대회, 홍보 활동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영수증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의 한 특보는 운전기사가 딸린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월 1000만원대의 식사비를 지출했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영수증을 처리했다는 후문이 들렸다.

핵심 실세가 아니어도 돈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돈 걱정으로 하루를 마치는 게 여의도 정치판이다.

정태근 전 의원은 30일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4년 동안 빚만 7000만원 늘었다”고 말했다. 현역 의원 시절 그는 세비·후원금을 합쳐 월 수입이 1300만원가량이었다. 세금을 뗀 실수령 세비가 800여만원, 후원금이 월 500만원 정도였다. 후원금으론 지역 내 사무실을 운영했다. 세비 800만원 중 400만원 정도는 밥값이고, 나머지는 경조사와 품위유지·잡비로 썼다. 이와 별도로 의정보고서 제작에 4000만~5000만원이 들었다. 원로 정치인 A씨 비서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지구당 같은 조직 유지·관리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용돈도 좀 줘야 하고, 법적으론 안 되지만 지역구 행사가 있으면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50만~100만원을 보내야 한다. 호텔 가서 네 명이 일식 먹고 사케 한 잔 하면 금방 100만원이다. 한 달에 밥값으로 1000만원을 넘기는 일이 잦았다.”

세비와 연간 1억5000만원 한도의 후원금만으론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구조다. 게다가 후원금 자체도 줄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회의 모금 총액은 310억원이다. 지방선거가 있던 2010년(477억원)보다 167억원이 줄었고, 2009년(411억원)에 비해 101억원 감소했다. 후원회당 평균 모금액은 1억400만원. 2010년(1억5600만원), 2009년(1억3900만원)에 비해 각각 30%쯤 줄었다.

돈에 목마른 많은 정치인은 후원자(스폰서)를 찾는다. 지연·학연은 기업인-정치인을 묶는 접착제와 같다. 양측이 고교 동창이라면 더 자연스럽게 회사의 민원을 이야기하고 스스럼없이 스폰서 역할을 하게 된다. ‘대가 없는 후원’이란 수사(修辭)로 포장된다. 경북 포항고 총동창회장을 지낸 이동조 제이앤테크 회장은 MB 정부 실세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건네진 로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를 부인하는 이 회장은 현재 해외 체류 중이다.

전직 의원 B씨는 “괜찮은 자리를 마련해 주고 돈을 받는 게 가장 안전하고 뒤탈이 없다”며 “자리가 좋으면 단가가 올라가고, 좋은 자리를 줄 수 있는 권력 실세라면 청탁이 밀물처럼 몰려든다”고 말했다. 공천헌금이 대표적 예다. 이상득 전 의원은 공천헌금 명목으로 20억원을 약속받고 2억원을 실제 받았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군소 정당인 정통민주당과 미래연합도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공천헌금으로 개인별로 10억원을 받은 사실이 선관위 조사에서 드러났다.

권력 실세가 아닌 의원들이 기댈 곳은 ‘물 좋은 상임위’다. 산하 기관과 공기업, 관련 기업이 많은 곳인데, 주요 대기업은 이들 상임위를 전담해 접촉하는 ‘대관(對官) 담당자’가 있다. 주로 부장급이 실무, 임원이 책임자다. 물 좋다는 국회 정무위에선 지난해 일부 의원이 신용협동조합중앙회로부터 직원들 명의로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다. 당시 정무위 소속 초선이던 C의원은 “여야 실세 의원에게 돈이 많이 갔다는데, 중진 의원들에겐 명의 쪼개기를 통해 합법적 후원금 형태로 1000만원 이상씩 갔다고 한다. 음성적으론 얼마나 세게 로비를 했겠느냐”고 전했다. 그래선지 19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 신청을 보면 국토해양위가 38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예결특위(37명), 지경위(22명) 순이다.

출판기념회는 새로운 자금줄로 각광받는다. 새누리당 C의원은 “출판기념회가 열리면 동료 의원들이 10만~30만원을 낸다. 대기업이나 소속 상임위 산하 기관장은 수백만원을 건넨다”며 “박근혜계 핵심인 L의원은 지난해 출판기념회로 수억원을 마련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전하진 의원은 최근 자신이 주최하는 행사를 위해 기업에 100만원부터 최고 2000만원까지 협찬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다. 전 의원은 “오해를 받아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민주통합당은 지난달 29일 “전 의원 행사는 기업 협찬금이 아닌 협박금으로 진행되는 것이냐”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스폰서 정치가 ‘생계형’이 아닌 재산 증식 수단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의 권영진 전 의원은 “정치 하면서 부정한 돈을 쓰게 되는 경우는 치부, 매표, 정치적 욕심 세 가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윤성이(정치학) 교수는 “상당수 정치인들이 도덕불감증에 걸려 있다”며 “정치 비용이 많이 든다고 불법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용인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현재의 정치자금 조달 구조가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는 만큼 정치후원금을 활성화할 제도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