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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중앙선데이 2012.06.30 22:49 277호 2면 지면보기
요즘 얼마나 노고가 많습니까. 나라 경제가 벼랑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부담감도 클 겁니다. 이런 터에 위원장에게 이 글을 보내는 제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시시비비 가리는 게 제 일이니 말입니다. 지난해 1월 취임 때만 해도 기대가 컸습니다. ‘대책반장’이란 별명답게 신속하고 과감하게 문제를 해결할 걸로 믿었습니다. “2008년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닥칠 것”이라며 저축은행과 가계부채를 서둘러 해결하려는 모습도 미더웠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말은 맞지만 행동이 달랐습니다. 일처리 방식과 순서도 틀렸습니다. 가계부채와 저축은행 문제가 여전히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저축은행 처리는 미진했습니다. 열흘 전 검찰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영업정지 당한 4개 저축은행의 불법 대출 규모가 1조3000억원, 오너의 횡령·배임액이 1200억원이었습니다. 예금주와 투자자, 주주들이 엄청난 피해를 봤습니다. 오너의 횡령·배임 수법도 지난해 영업정지 당한 저축은행들과 똑같았습니다. 지난해 9월 2차 구조조정 당시 이들 4개 저축은행도 같이 영업정지 해야 했던 이유입니다. 위원장이 저축은행의 불법과 오너의 탈선·전횡을 몰랐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축은행 실사와 조사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위원장은 또 과감하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 왔습니다. 그래 놓고 영업정지를 유예했으니 ‘언행 불일치’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위원장의 지나친 관용이 오너들에게 더 많이, 더 오래 도둑질할 기회를 준 겁니다. 잘못이 없더라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되면 책임져야 합니다. 하물며 위원장과 금융당국은 큰 책임이 있습니다. 검찰 발표 직후 여러 통의 e-메일이 왔습니다. 요약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이란 한탄이었습니다.

가계부채 처리 방식도 어설펐습니다. 가계부채는 부동산 거품의 산물입니다. 이미 형성된 거품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곧바로 터져버린다는 건 그간 겪었던 금융위기의 역사적 교훈입니다. 하지만 위원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곧바로 은행권부터 대출 총량 규제에 들어간 게 그 증거입니다. 부채 규모를 줄이려는 의도였지만 문제의 뿌리를 잘못 봤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이미 규모보다 부채의 질(質)이 더 문제였습니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저신용자와 저소득자, 그리고 여러 군데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부채가 훨씬 더 큰 문제였기에 이것부터 접근하는 게 맞았습니다. 위원장이 평소 말한 대로 금융위기가 오래간다면 가장 타격을 받을 계층도 이들입니다. 미국 금융위기의 시작이 저신용층의 주택담보대출이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위원장은 군사작전 하듯이 총량 규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은행부터 말입니다. 결과는 풍선효과였습니다. 은행 대출은 주춤해졌지만 대신 제2금융권과 대부업, 불법 사금융의 대출이 급증했습니다. 빚 부담은 더 늘고, 상환 능력은 더 떨어지면서 가계부채는 이제 위기로 치닫고 있는 겁니다.

좀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참 많습니다. 정책은 타이밍과 순서입니다. 가능한 정책수단을 모두 검토한 후 정책 효과와 시차를 따져 순차적이고 점진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대출 규제를 할 경우 저신용·저소득층이 이용하는 제2금융권부터 해야 합니다. 대출 축소의 영향을 들여다보고, 괜찮다 싶으면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등 다른 것도 규제하는 식이어야 합니다. 물론 강도도 조금씩 높입니다. 처음에 조였던 은행 대출은 마지막 순서여야 합니다. 순서가 틀렸으니 가계부채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정책 초점을 양보다 질에 두기로 바꾼 건 잘한 일입니다. 진작 그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큽니다만. 하지만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살얼음판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의 잘못과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됩니다. 책임을 다른 경제부처에 떠넘기거나 엇박자가 나서도 안 됩니다. 정책 공조와 국민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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