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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 치는 세대가 필요하다

중앙선데이 2012.06.30 22:38 277호 31면 지면보기
중국 제나라의 관중이 환공을 따라 고죽이라는 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환공이 크게 걱정하자 관중이 말했다. “이럴 때는 늙은 말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좇아 늙은 말을 풀어주고 뒤를 따라가니 과연 잃었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또 한번은 숲 속에서 물을 못 찾아 병사들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 나이 든 습붕이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개미들은 겨울에는 양지바른 남쪽에 살고, 여름이면 그늘진 북쪽에 삽니다. 개미집을 찾아 한 치 높은 곳의 밑으로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다고 합니다.” 그의 말대로 하니 과연 물길을 찾을 수 있었다. 늙은 말의 경험과 습붕의 노련한 지혜로 모두가 삶을 얻을 수 있었다. 이래서 중국 고전에서는 60대를 ‘이순(耳順)’이라 하거나 손가락 하나로 사람들을 부릴 만하다 해 ‘지사(指使)’라고 불렀다.

이렇게 노년의 지혜가 다각도로 활용되던 동양에 서양의 정년제가 유입됐다. 1870년 55세의 팔팔한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는 당시 60세 넘는 인물들이 어지간히 거추장스러웠던지 의회를 통해 65세 정년퇴직법을 만들었다. 이후 사람들은 60대를 마치 ‘퇴출세대’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고령화 선진국인 일본은 이미 20여 년 전 노년(老年)이라는 호칭이 중압감을 준다고 판단해 60대를 ‘실년(實年)’이라고 명명해 정년을 위로했다. 그러나 호칭이 바뀐들 고령화 문제가 나아진 건 아니다. 오히려 악화일로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1% 수준인 우리에 비해 일본은 38%나 된다. 일본의 65세 이상 연령층의 평균 나이는 83세다. 이 중 절반이 홀로 사는 노인층이다. 65세 이상 노인이 사망할 경우 가족이 그 시신을 발견하는 비율은 셋 중 한 명뿐이다. 홀로 죽는 고독사가 두려운 노인들은 방마다 생명센서를 달아둔다. 우리도 2026년에는 노인 인구 비중이 20%에 달해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다.

서울시가 60대 노인층에 걸맞은 호칭을 붙여주고 싶어 공모에 나섰다고 한다. 기분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우리 사회는 경로우대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채 ‘노년층=퇴출세대’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노인층에게 짧은 관심을 보이는 건 그나마 선거철 정치인뿐이다. 표에는 주름살이 없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가 보수·진보의 대치 속에서 요동치다 보면 누가 옳은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노인정책은 새롭게 재검토돼야 한다. 예를 들면 노인계층을 가정 속으로 재결합시켜 소통의 구심점이 되게 하는 신(新)가족정책, 노인계층의 다양한 재능을 재활용할 수 있는 사회봉사 시스템, 귀머거리 보수와 막가파식 좌파를 아우를 수 있는 캐스팅보트로서의 정치집단화 등이다. 또 노인층의 대중화 성향을 공중화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노인층의 부정적 성향을 단계적으로 치유해가며 공기능을 확충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는 데 필요한 ‘회초리’의 역할을 위해서다.

김종서는 16세에 대과에 급제한 신동으로 젊은 나이에 형조판서까지 올랐다. 그런데 당시 영의정이던 늙은 황희 정승은 김종서의 아주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고 호되게 꾸지람하고 종을 불러 김종서 대신 엄하게 회초리를 맞게 하곤 했다. 이것을 옆에서 보던 맹사성이 사유를 묻자 “큰 그릇으로 키우기 위한 방편”이라고 답했다. 이에 맹사성이 “아! 낙상매(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한 일류 사냥 매를 일컫는 말)”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잘잘못을 앞장서서 지적하고 말을 안 들을 경우 적절히 회초리를 드는 세대가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회초리 없는 세대는 필연적으로 파멸의 길을 가게 됨을 우리 모두 알기 때문이다.



김재명 부산 출생. 중앙고성균관대 정외과 졸업. 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으며 전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 『광화문 징검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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