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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도 몰 수 있다’ … 신개념 스포츠카로 대박

중앙선데이 2012.06.30 21:18 277호 24면 지면보기
1948년 출시된 포르셰의 첫 양산 스포츠카 356과 이를 타고 있는 페리 포르셰(1909∼98). 창업자 포르셰 박사의 장남으로, 부친이 개발한 비틀의 공랭식 4기통 1131cc 엔진을 좌석과 뒷바퀴 사이에 얹었다.
로또 1등에 당첨돼 스포츠카를 장만한다면 무엇이 될까.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포르셰(Porsche) 아닐까. 이 독일차 브랜드는 남자의 로망으로 통한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과 질주 욕망을 자극하는 ‘우르릉’ 배기음, 탁월한 주행 성능, 그리고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내리기 싫어질 정도의 운전 재미 때문이다.

김태진 기자의 Car Talk 브랜드 이야기 ⑮ 포르셰

포르셰 하면 고성능 이미지 이외에 ‘엉덩이가 예쁜 차’를 떠올리곤 한다. 특히 1993년 나온 마지막 공랭식 엔진을 단 911(포르셰 매니어들은 코드명 993을 따 993이라 부른다)이 그렇다. 2003년 일본 연수 중에 20여 명의 993 동호회원들과 차를 몰아본 적이 있다. 앞 차 꽁무니를 쫓아가며 넋 나간 듯 993의 뒤태만 내내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아, 어떤 미인이라도 뒤태가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감탄했다.

2003년 출시돼 포르셰 판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 주력 모델 SUV 카이엔. 근육질 디자인에 시속 250㎞의 질주 본능을 갖췄다. 한국에선 ‘서울 강남 아줌마의 차’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부유층 여성이 많이 탄다. 9010만∼1억5420만원.
유럽의 스포츠카 업체들은 수도 없이 망했다. 페라리·람보르기니·벤틀리·부가티가 그랬다. 차 성능은 뛰어났지만 비싼데다 여간해선 운전하기 어려워 시장의 저변을 넓히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포르셰는 81년 동안 장수해왔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 차 조작이 쉽다는 점이다.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다룰 수 있는 손쉬운 스포츠카를 만들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건 포르셰만의 디자인이다. 둥글게 솟아오른 헤드라이트, 잘록한 유선형 디자인과 아름다운 뒤태가 그것이다.

포르셰는 강력한 성능을 각인시키려고 모터스포츠를 적극 활용했다. 각종 자동차 경기에서 무려 2만8000여 회 우승했다. 이런 레이싱 유전자는 시동키에 그대로 드러난다. 좀 더 빠르게 출발하기 위해 운전자가 왼손으로 시동을 걸고 동시에 오른손으로 기어를 넣을 수 있도록 시동키를 왼쪽에 뒀다. 이런 전통에 따라 지금도 모든 모델의 시동장치가 왼쪽에 있다. 초보 자동차 도둑이 문을 따고도 시동장치를 찾지 못해 훔치지 못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포르셰의 시작은 1931년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천재 엔지니어 페르디난드 포르셰 박사가 설립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 ‘Dr. Ing.hc. F. Porsche AG(포르셰 박사 주식회사)’라고 지었다. 설립 초기에는 자동차 제작이 아니라 자동차 개발 컨설팅을 했다. 당시 독일 나치 정부로부터 국민차 사업을 의뢰받아 만든 것이 바로 폴크스바겐 비틀(Volkswagen Beatle)이다. 폴크스바겐은 국민차, 비틀은 딱정벌레라는 뜻이다. 비틀 생산을 앞두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이는 전투용 장갑차 퀴벨바겐으로 변신해 4만 대 넘게 생산됐다. 그런 이유로 포르셰 박사는 전후 전범으로 몰려 20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주인을 잃은 포르셰는 경영난이 심각했지만 아들 페리 포르셰가 수완을 발휘해 살려냈다. 아버지가 설계한 비틀의 차체와 부품을 활용해 소형 스포츠카 356을 생산한 것이다.

스포츠카의 대명사는 911 시리즈다. 1963년 데뷔 이래 지금까지 6세대의 진화를 거쳤다. 2.0L로 시작한 배기량은 4.0L까지 늘어났다. 처음 130마력이던 출력은 530마력까지 커졌다. 최근에는 시대 변화에 맞춰 네 바퀴 굴림(AWD) 모델까지 추가됐다. 변하지 않은 것은 포르셰만의 엔진이다. 일본 스바루와 함께 줄곧 수평대향(水平對向) 6기통 한 가지만 얹었다. 수평대향 엔진은 피스톤이 서로 수평하게 마주보고 움직이는 형태로, 진동을 상쇄하고 무게중심을 낮출 수 있다. 또 스포츠카답게 뒷바퀴의 접지력을 높이려고 엔진은 트렁크 부분에 달았다. 앞바퀴보다 뒷바퀴 폭이 넓은 것도 그런 연유다. 적재 공간은 줄었지만 작은 차체에 비교적 넉넉한 실내공간을 뽑아내려는 묘안이었다. 이런 구조는 포르셰 박사의 역작 비틀에서 비롯됐다.

스포츠카 시장은 일반 승용차보다 실물 경기에 민감하다. 그래서 포르셰는 경기 변동과 적자와 싸워야 했다. 2000년대 들어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4도어 세단 시장에 뛰어든 것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911 같은 스포츠카는 2도어 2인승에다 적재공간이 좁다는 한계로 매일 타는 차로는 부적당했다. 스포츠카를 찾는 계층이 두터울 리도 없다. 그래서 당시 승용차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등장한 SUV에 착안한 것이다. 넓은 실내공간을 갖추고 포르셰의 질주본능을 살린 SUV를 만들었다.

개발비 분담을 위해 포르셰는 1999년 폴크스바겐과 공동 개발 작업에 들어가 2003년 SUV 카이엔을 출시했다. 당시만 해도 SUV는 넓은 실내 공간과 오프로드(비포장도로 주행) 기능에 주력했다. 카이엔은 SUV 역시 시속 250㎞ 이상으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뽐내면서 고성능 SUV라는 틈새시장을 만들어냈다. 외관은 떡 벌어진 어깨의 건장한 남성 냄새가 물씬 난다. 보닛에는 부(富)의 상징이라는 포르셰 로고가 붙어 있다. 특이한 점은 포르셰만의 수평대향 엔진이 아닌 폴크스바겐 V6 3.0L 디젤을 단 차의 판매가 60% 이상이다. 이 차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이 회사 전체 판매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다음 도전은 4도어 세단이다. 2009년 첫선을 보인 4도어 파나메라는 널찍하고 고급스러운 실내에 스포츠카의 장점을 두루 접목했다. 출시와 함께 대박 행진을 하고 있다. 스포츠카가 아닌 이들 차량의 호조로 포르셰는 지난해 처음 연간 10만 대 판매벽을 돌파했다. 매출 109억 유로(16조원), 영업이익 20억5000만 유로(3조1000억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울러 2000년대 세계 최고 영업이익률(연평균 15%)을 기록한 자동차 회사가 됐다.

포르셰는 한국에서도 고속 질주하고 있다. 2006년 209대 팔리던 것이 지난해 1301대로 6배 이상으로 늘었다. 카이엔은 기대보다 훨씬 더 팔려 ‘서울 강남 부유층 아줌마의 차’로 불릴 정도다. 국내 판매 스포츠카 비중은 15% 정도다. 요즘 세계 자동차 시장은 운전 편한 차를 찾는 추세가 확연하다. 그래서인지 포르셰의 스포츠카 비중은 25%로 10년 전의 절반 이하로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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