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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으로! 글자의 틀을 깨다

중앙선데이 2012.06.30 21:03 277호 27면 지면보기
언제부턴가 트위터에서 한 미국 디자이너가 자주 언급되기 시작했다. 바로 허브 루발린이다. ‘그에 대한 21세기식 오마주가 시작되는 것인가’를 질문하던 차에 에이드리언 쇼네시가 트윗을 날린다.

시대를 비추는 북디자인 ④ 미국의 대표적 타이포그래퍼 허브 루발린

국내에서는 영혼을 잃지 않은 디자이너 되기의 저자로 잘 알려진 영국 디자이너 겸 저술가 쇼네시. 그가 루발린(아래 사진)에 대한 책을 쓴 것이다. 고급 한정판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예약을 받는 중이다. 출판사 홈페이지에도 들어가본다. 흥분에 가득 찬 서평이 올라와 있다. “세심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1950~60년대 뉴욕 광고의 기인으로 살았던 초년 시절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타이포그래퍼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위대한 성과를 낸 시절까지의 커리어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1918년 뉴욕.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아버지와 가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루발린은 음악적 분위기가 충만한 가정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색맹이었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고등학교 교사는 미술대학 진학을 권했고, 루발린은 쿠퍼 유니언대에 가까스로 합격한다. 합격생 64명 중 64등이었다. 하지만 졸업할 땐 최우수 학생이었다.

그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52년에 이르러서다. 이 당시 뉴욕은 유럽에서 건너온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이 뿌려놓은 모더니즘의 씨앗을 자양분으로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었다. 특히 그래픽 디자인계는 러시아 출신으로 ‘하퍼스 바자’의 아트디렉터 알렉세이 브로도비치를 중심으로 현대적인 시각언어를 이미 생산하고 있었다. 역시 러시아 출신인 ‘보그’의 메헤메드 페미 아가, 독일 출신인 ‘포춘’의 아트디렉터 빌 버틴, 오스트리아 출신인 ‘에스콰이어’의 헨리 울프까지. 혼란스러운 유럽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들은 곧 미국적 그래픽 디자인을 만들고 있었고, ‘뉴욕파’로 불리는 창작집단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루발린은 뉴욕파의 일원으로 유럽 디자인의 이성주의와 미국의 상업성을 적절하게 교배한 표현주의적 그래픽 언어를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

1964년 자신의 회사를 차렸을 때 이미 그는 뉴욕 그래픽 디자인계의 중심이었다. 광고, 포스터, 잡지, 로고타입 등 그의 손길은 인쇄술과 활자를 기반으로 했던 모든 그래픽 영역으로 뻗어나갔다. 그는 동시대 유럽의 디자인과 달리 장식적이고 개인의 주관적 표현에 기초한 타이포그래피를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좁은 자간, 기교와 장식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스펜서체로 요약되는 루발린의 ‘표현주의적 타이포그래피’는 과감하고 도발적이었다. 그의 이런 스타일은 그가 디자인한 논쟁적인 잡지 ‘에로스’1와 ‘아방가르드’2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에로스’와 ‘아방가르드’. 두 잡지는 루발린이 편집자 랠프 긴즈버그와 함께 만든 잡지였다. 잡지가 아니라 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두꺼운 하드커버 장정의 ‘에로스’는 1962년 출간 후 단 네 번만 발행됐다. 1968년 출간한 ‘아방가르드’는 음란죄로 폐간된다. ‘에로스’는 성과 섹스를 주제로 했던 잡지로 긴즈버그는 이 잡지를 통해 성에 대한 담론을 확장시키고자 했다. 서구 신좌파 지성인 사이에서 성의 해방은 당대의 정치학적 논제 중 하나였다. 여성주의, 흑인 인권 그리고 일상에서의 피임약 판매까지 활발히 논의되고 있었다. 이런 문제 제기는 그동안 억압돼온 신체에 대한 관심이자 가부장적이고 백인 중심적인 기존 질서에 대한 철폐의 요구였다. ‘에로스’의 출간은 이런 전복적인 문화운동의 연장선에 있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원초적인 제목과 달리 이 책의 디자인이나 내용은 전혀 성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적 이미지로서의 존 F 케네디, 우아한 매력을 풍기는 메릴린 먼로의 사진들, 흑인과 백인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포토 에세이 등은 격조 있고 품위 있는 디자인으로 태어났다. ‘에로스’는 성을 이야기했으나 선정적이지 않았다. 여성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남녀 차별을 낳는 일상의 성적 대화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려고 한 소신 있는 잡지였다.

외설적이라는 ‘에로스’에 대한 평가는 시대의 한계였다. 이는 ‘아방가르드’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소개했던 ‘아방가르드’는 말 그대로 시대의 맨 앞에서 돌진한 전위부대였다. 루발린은 이 잡지에서 훨씬 더 과감한 타이포그래피를 도입했다. 사회의 이면을 담아낸 충동적인 사진들과 좁은 자간, 그 자체로 도발적인 그림이 되는 루발린의 타이포그래피가 날카롭게 배치된다.

두 잡지 모두 너무 앞섰다. 이 때문에 그 전위성은 전통과 훈육의 시선이라는 시대적 한계에 의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루발린을 ‘규범을 깨트리는 자’라고 평했다. 루발린에게 규범은 단순한 디자인적 규칙이 아니라 기존 세계 질서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빽빽하게 조판된 활자들은 그래서 질서 재편을 위한 강박증적 요구처럼 읽히기도 한다.

허브 루발린.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를 되돌아볼 만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평등과 합리성으로부터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8월이면 나오는 루발린에 대한 새 책이 새삼스럽게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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