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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엔 ‘아인슈타인 시간’이 흐른다

중앙선데이 2012.06.30 21:00 277호 28면 지면보기
살바도르 달리. 39시간의 영속39
잠들기 전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려고 벨을 맞춰놓는다. 집을 나서면 시간은 왜 그렇게 빠르게 흐르는지…직장에 지각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이렇듯 시간은 흐른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다면 그 흐르는 실체가 무엇일까? 시간은 영원한가?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일까? 또는 영원무궁하게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일까? 오랜 시간을 지나면 다시 제시간으로 돌아올 것인가? 의문은 꼬리를 문다.

김제완의 물리학 이야기 시간의 비밀

시간이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라면 종교가 설 땅이 좁아진다. 신(神)은 틀림없이 우리와는 다른 존재이고 따라서 하느님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무한하다면 신이 시간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존재할 근거가 없어지고 그래서 우리와 섞여 있다는 논리로 비약된다. 어쩐지 하느님을 격하하는 느낌이 든다.
현대과학은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의 상식인 뉴턴적 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24시간이라고 하고, 이를 다시 분·초로 나눈 개념이다. 뉴턴적 시간은 우주 어느 곳이나 같은 절대시간이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인슈타인이란 천재가 ‘시간도 공간처럼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4차원 시공(Space-Time)의 개념을 도입한 상대성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시간은 속도에 따라 변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의 시간은 정지한다. 시간은 속도의 함수이고 중력이 강한 곳이면 시간도 역시 늦게 간다는 것이다.

허황된 말처럼 들리지만 자동차 내비게이션에도 이런 원리가 반영돼 있다. 자동차의 위치를 알려면 지구위치확인시스템(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을 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보내는 신호를 3개의 인공위성들이 받아 신호가 오는 시간으로부터 거리를 알아내 삼각측량법으로 자동차의 위치를 정한다. 그런데 GPS에서는 상대시간이 작용된다. 위성은 빠른 속도로 돌고 있어 상대시간이 ‘자동차의 시간’보다 늦어진다. 또 우주 공간의 약한 중력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저런 효과를 다 합해 위성시간은 약 4000나노초가 늦어진다. 이런 상대론적인 차이를 보정하지 않으면 자동차의 위치가 거의 1㎞ 오차가 나 내비게이션은 무용지물이 된다. 이렇게 우리는 ‘아인슈타인 시간’을 쓰고 있다.

그러면 원자 같은 극미의 세계에서는 어떨까. 미시 세계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지 않는다. 시간이 +로 흐르건 -로 흐르건 상관하지 않는다. 시간의 방향에 대해 무감각하다.

이런 세상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항상 일어난다. 보통의 삶에서 우린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는 인과법칙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미래도 현재에 영향을 주는 게 상식화되어 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전자가 지닌 지남철의 크기가 정확히 2가 아니고 2.0023193041992 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거시의 세계에서는 미래로부터 돌아올 수 없을까? 미시세계의 원리를 이용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가?

일반상대론은 타임머신을 원리적으로 허용한다. 어렵게 말하자면 ‘일반상대론의 굽은 시공에서는 닫힌 시간곡선에 해답이 있다’는 것인데 풀어 말하자면 ‘불가능하다고 금지된 현상이 아니면 이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물리 법칙이다.

타임머신이 불가능하다는 대표적인 논리를 소위 ‘할아버지의 모순(Grandfather Paradox)’이라고 한다. 이런 내용이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면 옛날로 돌아가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낳기 전에 살해한다. 그러면 아버지가 태어나지 않았기에 나도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이건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이를 피하는 방법이 양자론의 해석에서 나왔다. 양자론에서는 전자가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언뜻 ‘할아버지의 모순’ 못지않게 상식에 어긋나 보인다. 휴 에버렛 (1930~1982)이라는 미국 물리학자가 있었다. 그는 ‘쌍둥이처럼 똑같은 세상이 무한히 존재한다. 전자가 여러 곳에 동시에 있다는 것은 이런 쌍둥이 우주에 퍼져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아버지를 살해하더라도 쌍둥이 우주의 다른 곳에 사는 할아버지는 그래도 아버지를 낳고 아버지는 나를 낳는다. 우리는 쌍둥이 우주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결과 아무 일도 생겨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하겠지만 많은 물리학자가 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진지하고도 어려운 실험을 설계하고 있다.

시간이란 종족에 따라 달리 여겨진다. 호주 원주민들은 ‘꿈시간’이란 것을 믿고 있다. 시간이 앞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꿈에서처럼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흐른다는 것이다. 이 꿈시간은 ‘에버렛의 시간’을 연상케 한다. 언젠가 누군가 시간을 정말로 터득하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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