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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듣는 조종사의 세계

중앙일보 2012.06.30 01:20 종합 18면 지면보기
항공기 조종사는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의 꿈을 실현시킨 사람들이다. 직업 중에 유일하게 자신의 손으로 하늘을 나는 조종사의 세계는 늘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 돼 왔다. 화물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출발해 앵커리지·마이애미·뉴욕·브뤼셀·밀라노·나보이를 거쳐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동안 여러 명의 기장을 만날 수 있었다. 조종사는 과연 어떤 직업일까, 어떤 보람과 애로사항이 공존할까.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시차와의 전쟁 … 외국 가도 한국 시간 맞춰 수면
불시 음주 검사 … 한 주에 막걸리 2병이 최대량

① 공중에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조종사는 매번 자신의 비행에 모든 걸 건다. 대한항공 민병주 부기장이 이륙 전 조종석에 앉아 차트를 보며 곧 있을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② 조종사는 고된 직업이다. 탕킨팽(57·말레이시아) 기장이 업무를 교대하고 조종석 뒤 좌석에서 잠을 청했다. ③ 모든 음식은 기장이 직접 챙겨 먹는다. 식사는 대부분 고열량·고단백식이다. “별로 안 움직여도 때가 되면 배고프다니까요….” ④ 1979년부터 비행기를 조종한 로바츠(53·브라질) 기장이 가장 사랑하는 세 가지. 가족과 비행, 그리고 한국의 신라면 컵라면. [박종근 기자]


●얼마나 근무하나



갈흥룡(59) 기장: 한 달에 순수 비행시간만 75~80시간이다. 근무시간은 그 두 배고. 1년이면 1000시간 비행에 2000시간 근무라고 보면 된다.



 홍인수(44) 기장: 인천공항으로 한 달에 세 번만 출근하면 월급이 나온다(웃음). 그동안 세계 각지에 머물며 다음, 또 다음 비행을 하니까.



 최종용(59) 기장: 조종사 정년은 55세지만 재계약이 가능해서 몸 관리만 잘하면 60세까지는 거뜬하다.



●여객기와 화물기는 선택사항인가.



 민병주(49) 부기장: 아니다. 보통 여객기 반, 화물기 반 비행을 한다. 개인적으로 화물기가 편하다. 승객들이 타면 신경이 더 쓰인다.



 홍인수 기장: 여객기를 선호하는 조종사도 있다. 여객기는 항로가 단순하다. 승객들 데려다 주고 돌아오면 된다. 그런데 화물기는 여기저기 찍고 와야 하니 힘들다.



●가장 힘든 점은.



 김창룡(41) 부기장: 시차다. 처음에는 비행하고 집에 가면 이틀 동안은 너무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다.



 조세훈(38) 부기장: 장시간 좁은 조종석 의자에 앉아있다 보니 배도 나온다. 교대할 때 스트레칭도 해 보지만 이 시간에는 자둬야 하니까 몸을 움직일 기회가 별로 없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갈흥룡 기장: 체력이 생명이다. 쉴 때마다 ‘의무적’으로 운동을 한다. 지금은 나이가 있어서 걷기를 많이 하지만, 전에는 골프·등산·사이클도 많이 했다. 또 물을 많이 마신다. 4시간 비행에 1.5L 한 통은 마신다.



 김창룡 부기장: 외국에 가서도 ‘한국시간’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밥도 한식 먹고, 잠도 한국이 밤일 때 자려고 한다. 시력·몸무게·체력관리 모두 철저히 해야 한다.



 민병주 부기장: 술은 되도록 자제한다. 일주일에 막걸리 2병 정도가 최대다. 조종사들은 규정에 따라 무작위(전체 5%)로 음주측정도 한다.



●조종사가 좋은 점은.



 김창룡 부기장: 민항기 기장이 꿈이라 항공대에 들어갔다. 실제 해보니까 힘들긴 해도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것 같다. 그게 어딘가.



 로바츠(Lovasz·53) 기장: 난 브라질 사람이다. 아버지도 파일럿이었다. 브라질에서는 비행 자격증 가진 사람이 100만 명에 한 명이다. 그것만으로 얼마나 멋진가.



 최종용 기장: 많은 것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좋은 직업이다. ‘자기 팔 자기가 흔들고 다닌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조종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병주 부기장: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이다. 위급 시에 거의 반사적으로 대응해야 하니까. 공중에서는 지각능력이 지상에서의 30%밖에 안 된다. 외국에서 사고 난 비행기 블랙박스 분석해보면 우리끼리도 ‘아니, 왜 이걸 가지고 사고가 났지?’라며 안타까워한다. 결국 생각이 안 나도 무의식적으로 대응이 되게 죽어라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김창룡 부기장: 정신력이다. 극한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게 말이다. 뭔가를 지적받아도 서운해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딛고 클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몰랐던 화물기와 조종사의 세계



* 화물기의 제1원칙은 ‘짐은 많이, 연료는 적게’다. 처음부터 많은 연료를 싣지 않고 여러 공항을 거치며 급유를 하는 것도 그만큼 화물을 더 싣기 위해서다.



* 공군 출신 조종사는 전투기를 몰던 습관 때문에 착륙을 거칠게(?) 한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안전을 생각할 때 ‘쿵’하고 떨어지며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펌 랜딩(firm landing)’이 착륙의 정석이다. 다만 여객기는 승객들이 불안해할까 봐 부드럽게 착륙하기도 한다.



* 공항 활주로 옆은 주로 푸른 잔디밭이다. 실수로 잔디밭에 착륙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위험하다. 부드러운 지면에 착륙하면 비행기 무게에 바퀴가 눌려 아래로 푹 가라앉아 무게중심을 잃은 비행기가 뒤집혀버릴 수 있다.



* 요즘엔 컴퓨터가 자동으로 조종하는 ‘자동항법장치’가 잘 발달돼 있다. 심지어 착륙도 자동으로 할 수 있지만 이륙만큼은 반드시 조종사들이 수동으로 해야 한다.



* 화물기엔 승무원이 없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직접 음식을 데워 먹어야 한다. 도시락·육개장·양식·비빔밥 등 보통 두세 종류가 실린다. 커피와 과일 등 후식도 있지만 술은 절대 반입금지다.



조종사가 되는 법



조종사가 되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에서 조종사 경력을 쌓거나, 민간 비행훈련 과정을 거치거나, 해외에서 조종면허를 따는 것이다. 군을 제외하고 가장 빠른 방법은 한국항공대학교나 한서대학교 항공운항학과에 입학해 각 대학에 개설된 조종사 양성프로그램을 마치는 것이다. 두 학교는 매년 약 100명의 학생을 선발하는데 경쟁률이 10대 1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일반 4년제 대학 졸업자라면 전공에 관계없이 항공대 부속 울진비행훈련원의 민항공 조종사 양성과정(APP)을 들으면 된다. 하지만 비용이 총 2억원가량으로 무척 비싸다. 지난해 대한항공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기장의 초봉은 1억2000만원(세전) 수준이지만 비행수당에 따라 차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글=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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