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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칠레에서도 확인한 절전의 소중함

중앙일보 2012.06.27 00:32 경제 12면 지면보기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하늘엔 그믐달이 떠 있었다. 남반구에서는 북극성을 볼 수 없어 남십자성으로 동서남북을 파악한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그러자 한국에서도 지금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달이 떠 있을지 궁금했다. 달력을 확인해 보니 음력 5월 초순.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그믐달이 아닌 속눈썹 모양의 초승달이 떠 있을 것이다. 이곳이 남반구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칠레에 도착하던 날 저녁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내일 아침이면 안데스 산맥 위의 하얀 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비가 개면 오랜만에 스모그 없는 산티아고를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주칠레 대사가 말한다. 아침에 깨서 보니 정말 안데스 산맥 위의 하얀 눈이 지척에서 다가왔다. 맑은 하늘에선 강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칠레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4000달러로 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다.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독일식 문물을 받아들였고, 구리와 리튬의 생산량이 세계 1위인 자원강국이다. 우리는 칠레산 포도주를 마시고 구리와 리튬을 수입한다. 칠레는 현대와 기아차를 타고 삼성과 LG 제품을 즐겨 사용한다.



 이번 방문에서 우리는 칠레와 신재생에너지 기술과, 광산 개발 피해 방지를 위한 기술을 함께 개발하자는 양해각서(MOU)를 각각 체결했다. 지금까지의 자원협력이 칠레의 자원을 그냥 사오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기술협력을 포함해 자원협력을 하자는 취지다. 기술 수출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칠레도 전력난이 심각하다. 전기요금은 우리보다 3배 가까이 비싸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아직도 나무를 땔감으로 쓴다. 이것이 산티아고 스모그의 주범 중 하나라고 한다. 산티아고 시내에서 나무 때는 것을 줄이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기요금이 비싸 서민은 여전히 장작을 때고 있다. 발전소 건설이 그만큼 시급한 데도 지역민의 민원으로 환경영향평가까지 통과한 대형 수력발전소 건설계획이 최근 취소됐다고 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몇 시간 뒤 한국에서는 정전대비 비상훈련을 했다. 불과 20분 만에 화력발전소 10기에 해당하는 전력 소비를 줄이는 저력을 국민이 보여 주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느꼈다.



 국내 전력 사정은 2014년이 되어야 나아진다. 그때까지 공장에서는 피크 시간대를 피해 조업하고, 사무실이나 가정에서는 전기를 아껴 줘야 위기를 면할 수 있다. 우리는 전기요금이 싸다 보니 가스나 석유를 써도 될 곳에 전기를 사용한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50% 이상의 에너지가 사라지니 지구온난화를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요금이 싸다 보니 절전 관련 기술도 제대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전등을 켜놓기도 한단다. 지난 5년간 1인당 전기 사용량 증가율이 OECD의 6배 이상이라는 수치는 믿기가 어려워 몇 번이고 확인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정전 대비훈련을 하면서 ‘절전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사용하지 않는 제품의 플러그에 저절로 손이 가고, 문 열고 에어컨을 켜는 가게에는 들어가지 않으며, 겨울에 집에서 반팔 옷을 입고 있으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문화는 이제 더 이상 어려운 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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