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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유럽발 위기와 기업가 정신

중앙일보 2012.06.27 00:32 경제 12면 지면보기
김종갑
한국지멘스 회장
금융·재정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유럽을 방문한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현지 사정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 다국적 기업들은 최소한 내년까지는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연초부터 대책을 강구해 왔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심각성을 별로 못 느끼는 분위기다. 정치권이 대기업 규제 강화 방침을 밝힌 이래 기업 활력과 성장을 위한 제안은 마치 국익에 반하는, ‘자본주의 3.0 시대의 유물’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우리가 경제개발을 시작한 후 어느 한 해도 쉬운 해는 없었다. 압축성장의 길을 걸어온 한국으로서는 해마다가 과도기요, 전환기였다.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끊임없이 대외 충격에 직면해 왔다. 하지만 기업보국, 산업보국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에 기업가 정신이 충만했고, 그것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이제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일고 있다. 기업들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국민이 실망하게 된 측면이 있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활력을 잃고 나면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논의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발전의 동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두 가지 기회 요인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먼저 자유무역협정(FTA)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자본 수출국들은 1980년대까지는 주로 G7 국가에, 지난 10~20년간은 주로 BRICs에, 최근에는 인도네시아·터키 등 ‘후발 성장국’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한국은 자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규제와 노사 불안정 등으로 ‘고비용 국가’로 분류돼 투자국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강력한 제조업 기반 및 연구개발 역량에다 최근 FTA 이행으로 기업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한국 시장을 재평가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대중국 투자는 신중해지고 있다. ‘시장’으로서의 중국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제조 기지’로서는 지난 20여 년과 같은 관심을 끌기는 어렵게 됐다.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고 노사문제 등 경제·사회적 불안요인이 잠재해 있는 데다 고부가가치 산업은 지식재산권 보호나 고객서비스 향상을 위해 생산시설을 소비국으로 이전하려고 한다. 중국 환경의 변화는 한국에 반사적 이익이 될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기회요인이 있다고 해서 한국이 획기적 투자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국인 투자제도와 관행을 더 개선하는 것은 기본이고, 동시에 한국 경제 및 산업환경 전반을 기업하기 좋은 구도로 근본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 과보호, 대기업 규제 강화, 산업지원부처 신설 등 세 가지 포퓰리즘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되 일정 기간, 일정 규모의 지원 후 졸업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중소기업 조달 품목이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으로 경쟁을 제한하기보다는 인력 및 기술개발에 역점을 둬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이 능사가 아니라 중소기업형 원료 부품 소재산업의 공급역량 강화를 통한 공급망 전체의 경쟁력 향상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처럼 중소기업을 복지정책 차원에서 다루는 한 구미 선진국에서 보는 ‘강소기업’의 성공사례는 영원히 남의 나라 얘기에 그치게 될 것이다.



 대기업의 불공정한 경쟁제한 행위는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그러나 계열사 수를 몇 개로 하든, 어떤 분야에 진출하든 이는 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지배주주 경영 혹은 전문 경영인 체제 중에 무엇이 더 바람직한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독일은 매년 2만2000개 기업이 경영승계를 하는데 최근 가족 경영승계 비율이 50%에 불과하다고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문제는 기존 법제 하에서 일관성 있게 단속하면 될 일이다.



 산업정책 과제들을 재정비·통합해야 하는 이때에 정부부처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융합의 시대에 맞는 종합적 지원을 해야 하지만, 정부부처가 신설되면 지원을 더 분산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정부의 재정지원보다는 금융 부문이 경쟁력을 갖춰 상업적 차원에서 경제의 혈관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인의 87%가 기업가 정신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정부의 제도와 규제(37%),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30%)가 주 원인이다. 제도 개선과 더불어 기업활동에 대한 국민적 성원이 필요한 때다. 정치적 포퓰리즘을 극복하고 기업가정신을 되살린다면 이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종갑 한국지멘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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