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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58> 중국정치 속의 시 한 수

중앙일보 2012.06.27 00:30 경제 13면 지면보기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數風流人物, 還看今朝’ 장제스 만난 마오쩌둥, 혁명가의 속내 비쳐



“옛날 제후가 이웃 나라들과 만날 때 짧은 말로 서로 생각을 주고받았다. 인사할 때는 반드시 시(詩)로 뜻을 비유해 상대가 현명한지를 구별하고, 상대국의 성쇠(盛衰)를 살폈다.” 중국 역사서인 『한서(漢書)』의 문장이다. 이렇듯 중국 지식인들은 시를 건네 마음의 뜻을 전하곤 했다(賦詩言志).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이 읊조렸던 시를 통해 중국 정치의 ‘멋’을 음미했다.



두보를 인용해 미국 꾸짖다 후진타오







태산은 어떠한가(岱宗夫如何)/제나라, 노나라에 푸른빛 끝없네(齊魯未了)/조물주는 신비한 기운을 모았고(造化鐘神秀)/그늘과 양지는 어둠과 밝음을 나눈다(陰陽割昏曉)/부푼 가슴엔 층층의 구름이 일고(胸生層雲)/가늘게 뜬 눈엔 돌아가는 새 들어온다(決入歸鳥)/반드시 정상에 올라(會當凌絶頂)/저 낮은 산들을 둘러보리라(一覽衆山小)




 중국에서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당(唐)나라의 시인 두보(杜甫·712~770)의 작품 ‘망악(望嶽)’이다. 2006년 4월 중국 4세대 최고 지도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미국 땅을 밟았다. 중국은 국빈방문 형식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한 단계 낮은 공식방문을 선언했다. 중간선거를 앞둔 부시 행정부가 대중국 강경책을 고수한 것이다. 4월 20일 오전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환영행사가 열렸다. 사회자는 중국의 국가가 연주될 때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이라 하지 않고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라고 소개했다. 후 주석의 연설 도중에는 백악관 출입기자였던 파룬궁(法輪功) 신도가 반(反)중국 구호를 외쳤다. 연설을 마친 후 주석이 자리로 돌아갈 때에는 공교롭게 부시 대통령이 그를 안내하며 소매를 잡아끌었다. 의도했다고 하기에는 치사하고 실수로 보기에는 큰 결례가 연거푸 벌어졌다. 미국의 푸대접을 참다 못한 후진타오가 두보의 시를 인용해 일침을 가했다. 언젠가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 지금은 높아 보이는 저 산도 내 발 아래 있음을 확인하겠다는 구절을 꼭 집어 읊었다. 세계 최강 미국을 반드시 넘어서겠다는 오기와 자존심을 시 한 구절에 담아 밝힌 것이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 ‘포커페이스’로 불리는 후진타오다. 그의 2006년 백악관에서의 결기는 집권 10년 안에 일부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로 보여준 지도자의 자세 원자바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지난 3월14일 베이징에서 열린 그의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회견이 열린 인민대회당 3층 금색대청(金色大廳) 벽에 중국을 찬양하는 ‘중화송(中華頌)’ 서예 작품이 걸려 있다. [중앙포토]






홍콩 봉황 위성TV의 웹사이트인 펑황왕(鳳凰網)이 원자바오가 인용한 한시들을 모아 만든 특집 페이지.
만남도 어렵지만 헤어짐도 어려워(相見時難別亦難)/봄바람 약해지니 꽃들이 시듭니다(東風無力百花殘)/봄누에는 죽어서야 실을 그만 뽑고(春蠶到死絲方盡)/양초는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릅니다(蠟炬成恢淚始乾)/새벽녘 시름하나니 거울 속 흰머리는 날로 성글어져(曉鏡但愁雲改)/깊은 밤 읊조리다 찬 달빛에 잠이 깹니다(夜吟應覺月光寒)/봉래산 가려 해도 길이 없으니(蓬山此去無多路)/파랑새야 살며시 날 위해 찾아가주렴(靑鳥殷勤爲探看)



 당나라 말엽의 시인 이상은(李商隱·812~858)이 스스로 ‘무제(無題)’라는 제목을 붙인 시다. 그는 15세 때 옥양산(玉陽山)에 올라 도교에 심취했다. 당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그가 젊음의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에 담았다. 죽어서야 실뽑기를 그치는 누에처럼, 재가 되어서야 눈물을 그치는 촛불처럼 자신의 사랑은 죽어서야 그칠 것이라는 독백은 애틋하고 가엾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명시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지난 3월 14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을 마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10년 임기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했다. 그가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당서기에게 반성을 요구하며 직격탄을 날린 자리다. “시로써 뜻을 말하고 속내를 전하다(以詩言志留丹心)” “따뜻한 문장과 아름다운 시로 뜻을 말하고, 문장은 상전벽해를 이루고 글귀는 더욱 정교해졌다(溫文爾雅詩言志 賦到滄桑句便工)”는 등의 제목으로 다음 날 중국의 거의 모든 신문들은 원자바오가 지난 10년간 구사한 시구를 총정리한 특집을 실었다. 중국에서만큼은 보시라이 사건보다 원자바오의 한시(漢詩)가 더 큰 관심사였다.



 시인 총리로 불리는 원자바오가 2009년 2월 인터넷에서 네티즌과 대화를 나눴다. 어떤 각오로 일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상은의 시에 나오는 ‘봄누에와 양초의 심정’으로 일한다고 대답했다. 단 14글자였다.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었다. 당시 쇄도한 질문은 50만 개. 질문을 던진 네티즌은 물론 대화를 지켜보던 수억의 중국인들 역시 만족했다. 중국 정계에서 시 한 구절이 최고의 정치 레토릭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연설때마다 애국시 인용 장쩌민






미약한 힘으로 중임을 맡아 오래도록 정신이 피로하니 더 고갈되어 쇠약해지면 지탱하지 못하리나(力微任重久神疲, 再竭衰庸定不支)/진실로 나라에 이롭다면 목숨 바쳐 다할 뿐 어찌 화복 때문에 따르거나 피하겠는가(苟利國家生死以, 豈因禍福避趨之)/임금의 후덕한 은혜로 귀양 떠나는 몸 변방의 수졸이 되어 내 본분을 지키리(謫居正是君恩厚, 養拙剛於戍卒宜)/장난 삼아 아내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며 늙은이 머리 잘린 노래나 읊어줄까




 청나라가 떠오른 제국 영국과 일 합을 겨룬 아편전쟁 직전 황제의 특명을 받고 현장으로 파견됐던 흠차대신(欽差大臣) 임칙서(林則徐·1785∼1850)가 지은 부수등정구점시가인(赴戍登程口占示家人·군복무를 떠나며 가족에게 부침)이란 시이다. 광저우(廣州)에 도착한 임칙서는 아편 1200여t을 압수한 뒤 20여 일에 걸쳐 전량 소각하는 초강경 조치를 취했다. 이에 영국은 전쟁을 도발했고 위세에 눌린 청 조정은 협상파 기선(琦善)을 파견하고 임칙서는 변방으로 인사이동시켰다. 지금의 신장(新疆)으로 가는 사실상의 귀양 길에서 그가 읊조린 것으로 전해진다. 애국시의 대명사다.



 때와 장소에 맞춰 한시 읊기를 즐겼던 중국 3세대 최고지도자 장쩌민(江澤民)이 2001년 국방대학을 방문해 고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연설 도중에 이 시를 인용했다. 그뿐 아니라 칭화(淸華)대, 샤먼(廈門)대를 찾아 젊은 대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줄곧 “진실로 나라에 이롭다면 목숨 바쳐 다할 뿐”이라는 이 시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젊은이들에게 나라 사랑을 호소하는 데 애국 영웅의 대명사인 임칙서의 작품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중국 정치인에게 시는 이렇듯 외교무대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에도 애용된다.





황제의 꿈 비친 ‘심원춘·설’ 마오쩌둥








북국의 풍광을 보라, 천리에 얼음 덮이고, 만리에 날리는 눈발(北國風光, 千里封, 萬里雪飄)/만리장성 안팎엔, 오직 망망한 설원뿐, 얼어붙은 황하는 출렁임을 멈추었다(望長城內外, 惟餘莽莽 大河上下, 頓失滔滔)/산맥은 춤추는 은빛의 뱀, 들판은 달음질치는 하얀 코끼리, 하늘과 높이를 겨루고 있다(山舞銀蛇, 原馳蠟象, 欲與天公試比高)/눈 그쳐 날 개면, 붉은 단장 고운 자태는, 더없이 어여쁘리(須晴日, 看紅裝素, 分外妖)/강산이 이처럼 교태를 부렸기에, 수많은 영웅들이 다투듯 요절했구나(江山如此多嬌, 引無數英雄競折腰)/애석해라 진시황과 한무제는 글재주가 부족하고, 당태종과 송태조는 시인이 아니었네(惜秦皇漢武, 略輸文采, 唐宗宋祖, 稍遜風騷)/천하를 호령한 칭기즈칸도 독수리를 향해 활 쏠 줄만 알았네(一代天驕, 成吉思汗, 只識彎弓射大)/아, 모든 것은 지나간 일, 천하의 풍류인물을 찾으려면, 지금의 세월을 보아야 하리(俱往矣, 數風流人物, 還看今朝)




 대장정을 마치고 옌안(延安)에 근거지를 마련한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이 1936년 창작한 ‘심원춘·설(沁園春·雪)’이란 시다. 혁명가이자 문학가였던 마오의 속내를 드러낸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TV드라마와 관련이 깊다. 지난해 중국에서 국민드라마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끈 ‘보보경심(步步驚心)’에도 이 구절이 나온다. 우연히 청(淸)나라 시대로 시간이동한 현대 여성이 강희제(康熙帝)를 처음 대면한 장면에서다. 현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작품이지만 강희제는 처음 듣는 문장이었다. 강희제를 진시황·한무제는 물론 칭기즈칸보다 뛰어난 명군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강희제와 황자들은 훌륭한 시를 즉석에서 읊은 주인공에게 흠뻑 빠진다. 지난 2008년에는 한국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이 작품이 적힌 병풍이 수양제(隋煬帝)의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다. 동북공정으로 양국 국민감정이 격앙돼 있던 때였다.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은 시대고증도 못하느냐며 강하게 비난했다.



 ‘심원춘·설’은 과거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홍문연(鴻門宴)에 비견되는 마오쩌둥과 장제스(蔣介石)의 1945년 충칭(重慶)회담 중에 세상에 공개됐다. 언론을 통해 이를 접한 장제스는 “마오가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이 작품을 비난하는 기사가 연일 국민당 기관지에 실렸다. 마오 진영에서도 반격에 나섰다. 궈모뤄(郭沫若)는 “기세와 법도가 어우러진 격조 높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수세에 밀린 국민당은 문학에 소질이 있는 당원은 물론 외부 문인들을 총동원해 ‘심원춘’ 제목으로 사(詞)를 짓도록 독려했다. 마오보다 뛰어난 작품을 짓기 위한 고육책이자, 총칼을 동원한 전쟁보다 더 격렬한 전투였다. 하지만 마오를 뛰어넘는 명작은 나오지 못했다. 국공내전은 어찌 보면 1945년 ‘심원춘 전투’에서 결판이 났던 셈이다.



참고자료: 이규일, 『한시, 마음을 움직이다』(리북,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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