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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계급 불통의 올림픽대로

중앙일보 2012.06.27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후 7시13분. 변호사인 대학 선배 차를 타고 저녁 장소로 가던 길이었다. 선배는 고단한 표정으로 핸들을 잡고 있었다. 그는 공부 하나로 가난에서 몸을 일으킨 사람이다. 라디오에서 랩이 흘러나왔다.



 “월요일도 막히고 화요일도 막히고 수요일도 막히고 다 막히고.”



 형돈이와 대준이의 ‘올림픽대로’. 나는 선배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얼마 전에 나승철 변호사 만났거든요. 왜 작년에 서울변호사회 회장 선거 나섰다가 26표 차로 낙선했던 친구 있잖아요. 서른넷 나이로 청년변호사 돌풍 일으켰던….



 아, 그 친구.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나 변호사에게 왜 로스쿨에 반대하느냐고 했더니 그러더군요. ‘5000만~6000만원씩 드는 로스쿨 학비 감당하지 못해 좌절하는 친구들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요즘은 사법연수원에도 돈 있는 집안 출신들 많지 않나? 선배는 안경을 고쳐 썼다. 저도 그 부분을 물어봤어요. 나 변호사 얘기는 ‘그런 친구들이 늘어난 게 사실이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도 적지 않다’는 거예요. 연수원에 있는 어떤 친구는 밤 10시까지 공부한 다음에 부모가 하는 치킨 집에서 닭 튀기며 사법시험 준비했대요. 그런 친구들이 로스쿨에 갈 수 있겠느냐는 거죠.



 소문 들었어? 올해 첫 로스쿨 졸업생이 법조계 들어왔잖아. 대형로펌은 서울대·연고대 로스쿨 졸업이 기본이래. OOO 아들은 A로펌, △△△ 딸은 B로펌, 법조계 고위인사나 정·재계 인사들 이름이 들리던데…. 그의 말 사이사이로 ‘올림픽대로’가 비집고 들어왔다.



 “오빠 집이 어디야. 난 압구정. 난 까!치!산! 각자 사는 동네 외쳐 봐요. 큰소리로!”



 나도 목소리 볼륨을 키웠다. 지금까진 사시·연수원 성적 따라 법원, 검찰, 로펌 들어갔잖아요. 로스쿨 도입되면서 변호사시험 합격자 성적이 공개되지 않고 서류·면접으로만 선발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 아닌가 싶어요. 다들 능력이 되는데 괜한 오해를 받는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법조계 진입할 때부터 부모 ‘빽(배경)’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다는 불신이 싹트고 있는 거죠.



 그게 어디 로펌뿐이야? 대학 입시부터 사교육, 부모 경제력이 8할 이상이잖아. 엄마의 정보력부터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며? 로스쿨 들어갈 때도 외국어능력과 스펙이 중요하다는데 그게 부모 배경하고 무관하겠냐고. 로펌 취직할 땐 드디어 아빠가 가진 스펙까지 힘을 발휘하는 거지.



 “올림픽대로가 막혀요. 지금은 어딜 가나 막혀요. 내 인생도, 네 인생도 우리 인생도 다 막혀요.”



 선배는 차 안 공기가 답답한지 창문을 내렸지만 더운 바람이 들어왔다. C로펌 변호사들이 ‘좋은 집안 출신만 뽑는 건 문제 아니냐’고 했나 봐. 대표변호사가 발끈했대. 사건 수임부터 영향력 확대까지 로펌 경영에 도움 될 사람 뽑는 게 뭐가 잘못됐냐는 거지.



 정말 그런 식이라면 변호사가 된다 해도 혜택 받은 몇 %만 잘나갈 가능성이 크겠네요. 나머지는 거리의 변호사가 될 테고. 문제는 불평등의 뿌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정황만 있고 물증이 없으니 비판하기도 어렵고 항의도 못한다는 거, 어쩌면 그게 더 심각해요. 선배는 고개를 흔들었다. 계층 간 이동이 막힌 사회, 새로운 중세(中世)가 시작된 거야. 뭐가 어디서 잘못된 걸까. 법조인들 기득권 깨고 국민에게 다양한 법률서비스 제공하겠다고 로스쿨 제도를 선택했을 때 이런 부작용은 왜 생각하지 못한 걸까. 정의가 무엇인지 대답해야 할 법조계가 이래도 되는 걸까.



 우리가 침묵 속에 빠져들 때 노래는 미동도 않는 앞차를 향해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살다 보면 막히는 게 많아!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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