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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진짜 진보가 필요해

중앙일보 2012.06.27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어제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에 대한 2차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미 1차 조사에서 드러났던 온갖 부정이 대부분 재확인됐다. 꼭 어느 파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진보의 총체적 부정’이다.



 이에 따라 진보당과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한바탕 비난의 봇물이 예상된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행태에 대한 비난은 당연하다. 그런데 비난을 하더라도 구분해 보아야 할 대목은 있다. 진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당이라고 해서 모두 한 가지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대체적으로 진보를 한 가지로 몰아붙이는 흑백논리에 익숙해져 있다. 이젠 구분해 볼 때가 된 듯하다. 진보가 그만큼 중요해졌다.



 이번 부정경선 사태를 통해 드러났듯 진보당 내부엔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계열과 PD(People’s Democracy·민중민주주의)계열이 양립하고 있다. NL은 이번 사태가 터지기 이전까지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당권파라 불리며, PD는 사태 이후 당권을 장악하고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비(非)당권파다. 두 파벌의 싸움은 뿌리가 깊다. 언뜻 보기엔 같은 진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NL이다. 부정경선 당시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부정이 드러난 이후에도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처럼 부정경선으로 당선된 비례대표가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기본적으로 NL식 사고방식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NL식 사고체계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NL이란 말 그대로 이들은 ‘민족해방’을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로 여긴다. 우리 민족이 1945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이후 미국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니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이와 맞서는 북한에 민족의 정통성을 부여하게 된다. 남한의 정통성을 부인하기에 애국가와 태극기를 무시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극단적 민족주의다.



 NL이라고 모두 종북(從北) 주사(主思)파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했던 NL의 핵심은 주사파다. 민혁당 출신 이석기 의원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이 스스로 주사파라고 말한 적은 없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기에 주사파임을 밝히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다만 민혁당 사건 수사나 관계자들의 증언 등에서 드러난 그들의 행적을 볼 때 주사파로 보는 것이 맞다. 주사파는 NL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사파가 남한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적 절차도 부인한다는 점이다. 이번 진상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부정경선의 행태들은 과거 운동권 시절 투표관행의 연장선상에서 반복된 것이다.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투표함을 들고 작업장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이런 행태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기본적 사고방식, 즉 민주적 절차에 대한 무시와 부정은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변하지 않는다. NL은 2001년 제도권 정치 참여를 결의한 ‘군자산의 약속’에서 스스로 밝혔듯 정당을 ‘정치투쟁의 조직적 무기’로 본다. 정당은 민족해방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처럼 기본 룰을 인정하지 않는 선수는 장외 불법 운동권 세력에 불과하다.



 반면 PD는 기본 룰을 받아들인 진보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전까지만 해도 PD는 NL보다 더 과격했다. 소련을 만든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을 꿈꾸었다. 마르크스와 레닌, 심지어 마오쩌둥과 스탈린을 공부했다. 그러나 이들은 소련이 망한 이후 심한 몸살을 앓고 다시 태어났다. 물론 PD 역시 한 가지는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PD는 적어도 소련과 같이 현존했던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선 벗어났다.



 PD들이 대신 받아들인 것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다. 영국의 노동당이나 독일의 사민당이 자주 모델로 언급된다. 이런 식의 사회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그 사회의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며, 점진적인 사회변화를 모색한다. 그래서 이들은 북한의 세습과 핵, 그리고 인권문제를 비판하는 적응력을 보이는 것이다. PD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공존 가능한 진보인 셈이다.



 진보 정치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도권 내 진보 정치는 1959년 조봉암이 국가보안법으로 사형된 이후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진보정치의 역할이 필요해졌다. NL보다는 PD에 진짜 진보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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