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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사람들 ①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

중앙일보 2012.06.25 21:56
무대 뒤 한 켠엔 멀티맨을 위한 전용 공간이 있다. 옷이 걸려있는 순서부터 그가 사용하는 소품들까지, 모두 멀티맨의 동선에 맞게 배치돼있다. 그 공간에서 멀티맨을 연기하는 김종구 배우와 그를 보조하는 전담 스텝들이 포즈를 취했다.



헬퍼 3명과 초치기 의상 교체 22번 연기 연습만큼 신경 쓰이죠

궁금했다. 조명이 걷힌 무대 뒤에서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듣고 싶었다. 가상을 연출하는 그들의 현실은 어떤 모습인지 말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 스테이지가 아닌 백스테이지에 초점을 맞췄다. 무대 뒤 사람들, 첫 번째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이다.



 이달 1일 오후 3시, 평일 낮 시간의 대학로는 조금 한산한 모습이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한참 비켜나있는 ‘예술마당’ 주변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근처 카페의 커피머신 돌아가는 소리만이 요란한, 참으로 조용한 동네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드레스리허설 현장을 찾기 위해 예술마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지하, 무거운 극장 문을 힘껏 당겨 열고 무대의 맨 살과 마주했다. 위의 거리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공간을 움직이는 스텝들은 분주했고, 오고 가는 말소리는 크고 높았으며, 새 시즌 새롭게 합류한 밴드의 연습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그 중에서도 ‘멀티맨’과 그의 전담 보조 스텝 ‘헬퍼’들의 움직임은 그 누구보다도 바빠 보였다. 한 극에서 다수의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를 멀티맨이라 일컫는데, 이 극에서 멀티맨은 무려 22역을 소화한다. 역할을 맡은 배우 김종구는 ‘땀’이라는 한 글자로 멀티맨을 요약했다. “저는 오히려 무대 위가 더 편해요. 무대 위에는 바라봐주고 사랑해주는 관객들이라도 계시지, 무대 뒤에서는 힘들고 정신 없고 외롭다라는 생각만 들거든요. 오히려 무대 위에서 쉬는 기분이죠.” 대화 내내 ‘전쟁터’ ‘결승점’ 등 긴박함을 뜻하는 온갖 수식어를 다 쏟아내면서도, 시종일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유쾌하게 웃어보인다. 그런 모습이 멀티맨과 참 잘 어울린다. 배우 김종구가 들려주는 ‘멀티맨으로 사는 법’에 귀 기울여봤다.



무대 위 22중 인격 만드는 역할은 한 마디로 ‘땀’



 드레스리허설은 밴드의 합주소리로 시작됐다. 김씨는 이날 드레스리허설의 참관자로서 무대에는 오르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고가 생겼다. 같은 역에 캐스팅 된 배우 심정완씨가 역할을 소화하던 중 크게 넘어져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해당 씬은 암전 중 객석 뒷부분까지 올라간 멀티맨이 무대를 향해 경사를 타고 ‘콩콩’ 뛰어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암전된 상태에서 연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들 사이에선 부담되는 장면이었다. 리허설이 잠시 멈추고 극장 안에 있던 모든 배우와 스텝들이 심씨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얼음을 공수해 와 찜질을 하는데도 심씨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본 공연을 코 앞에 두고 있어 근심이 더욱 깊은 것 같았다.



 김씨는 그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안다는 눈치였다. 같은 배역을 연기하면서 본인도 고스란히 느꼈던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좁은 극장 전체를 누비며 짧은 순간에 뭔가를 해야 하니 곳곳에서 위험을 느낀다”는 그는 “멀티맨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배역만큼이나, 극장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을 연습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치료를 위해 자리를 비운 심씨를 대신해 ‘배우 김종구’가 리허설에 즉각 투입됐다. 관객들 안웃어 “도와주세요” 해도 용서되는 배역 세 사람이 반듯이 서있기도 좁은 무대 뒤. 멀티맨은 그곳에서 초를 다투며 의상을 갈아 입는다. 혼자 입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멀티맨 전담 헬퍼들과 함께 합을 맞춰보는 것이 공연 전에 하는 주요 과정이다. 22역의 의상을 단 시간 내에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연기 연습 보다 더 신경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의상 헬퍼 3명은 멀티맨이 들어오기 전부터 다음 의상을 잡고 대기하고 있다. 연기를 마친 멀티맨이 이전 의상을 벗으면서 무대 뒤로 들어오고, 헬퍼들이 잡고 있는 의상에 한 쪽 팔을 넣을 때쯤, 다른 헬퍼가 가발을 씌워주고 멀티맨을 연기하는 배우는 남은 손으로 소품을 챙긴다. 2시간 남짓한 극에서 이 과정이 22번, 기계처럼 이뤄져야 한다. 갈아입을 시간이 짧은 캐릭터일 때는 고개만 무대 밖으로 내놓고 연기하면서, 무대 뒤에서 하의를 갈아입기도 한단다. 관객도 이런 노력을 알기에 멀티맨에겐 마음을 많이 열어주는 편이라고. 관객들이 유독 웃지 않는 날에는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해도 용서되는 열린 배역이다.



 김씨는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 역할을 맡았다. 그간 없어진 역할도 있고 새로 생긴 역할도 있지만, 22역 모두 제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펼친다’는 말마따나 한 극 안에서 22역을 모두 연기하는 그는 나름대로 고충이 컸을 터다. 공부도 참 많이 했다고 한다. “멀티맨은 짧은 순간에 그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함축적인 에너지를 토해내야 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각 인물들이 나타내는 전형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따라 하고 익혔어요.” 때문에 ‘빵상아줌마’같이 주위에서 본 적도 없는 캐릭터를 연구할 때는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극에 잠깐 나오는 캐릭터이지만, 김씨는 22가지 인물에 나이, 학벌, 재산, 출신 지역 등을 자기 나름대로 다 부여해놨다. 그 모습이 무대에선 보여지지 않을지언정 그에겐 다 필요한 노력이다. 배우에는 ‘센스 있는 배우’와 ‘노력하면서 역할을 만들어가는 배우’가 있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후자에 속한다고 얘기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멀티맨은 확실히 센스가 필요한 역할인데, 자신에겐 그 부분이 부족하기에 인물 분석에 소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과제에 어깨가 무겁기도 하지만 이 역할을 통해 자신이 월등히 성장했음을 느낀다고 한다. 웃음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멀티맨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많이 개발하게 된다는 그. 다른 극에서 주인공 역할도 여럿 맡았던 그가 다시 멀티맨으로 돌아오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매 순간이 전쟁이고, 또 결승”이라는 각오로 무대에 오른다는 그다. 올 여름, 우리는 그 결승점에 서서 ‘김종구 찾기’에 나서기만 하면 된다.



<글=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CJ E&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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