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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상태에서 질문하면 답 못하는 사람은…

중앙일보 2012.06.25 05:38 건강한 당신 6면 지면보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는 병이 있다. 사회적 편견이 심해 직장에 다니거나 결혼도 힘들다. 바로 뇌전증(간질)이다. 경련이 올 때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원인은 비정상적인 뇌파 때문이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돼 미세한 전기적 신호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뇌신경세포에 과도하게 전류가 흐르면 발작이 나타난다. 20년 이상 뇌전증을 연구한 미국 세인트 조셉병원 신경과 스티브 정 교수가 이달 5일 한국을 찾았다. 대한뇌전증학회 국제학술대회(KEC 2012)에서 발작을 조절하는 새로운 치료제의 임상 결과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손영민 교수와 스티브 정 교수의 대담을 통해 뇌전증의 심각성과 치료에 대해 알아봤다.


뇌전증(간질) 더이상 난치병 아니다 스티브 정 교수-손영민 교수 대담
“약으로 발작 조절 가능 … 뇌전증이 학교·직장생활 영향 안 줘”

미국 세인트 조셉병원 스티브 정(왼쪽)교수와 서울성모병원 손영민 교수가 뇌전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현]


-손영민: 한국에선 뇌전증을 앓고 있다면 사회생활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하게 발작하는 환자는 25%에 불과하다. 대부분 환자는 잠깐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한 곳을 보거나 얼굴 또는 손·팔을 떠는 정도다.



 ▶스티브 정: 멍한 상태에서 말을 걸면 대답을 제대로 못한다. 이런 사람은 뇌전증을 의심할 수 있다. 67세인 한 여성은 TV를 볼 때 고개를 약간 옆으로 떨어뜨리고 보다가 가끔 의식을 잃곤 했다. 마침 이웃집에 사는 간호사가 그 모습을 보고 뇌전증을 의심해 진단을 권유했다. 증상이 나타난 지 7~8년 됐다고 한다. 뇌파 검사 결과 상태가 심각했다.



 -손: 치매와 혼동하기도 한다. 뇌 전문가인 신경과 의사도 뇌파검사를 하기 전까지 혼동한다. 고령 환자는 발작이 일어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병원에서도 뇌파검사를 하고 나서야 뒤늦게 뇌전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스티브: 미국에선 정확한 진단을 위해 뇌파검사를 한다. 치매 클리닉에서 뇌전증 클리닉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많다. 치매환자의 23%는 뇌전증 환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사람은 제대로 치료받지 않아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



 -손: 어떤 사람이 뇌전증에 잘 걸리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전체 환자의 3분의 1은 뇌졸중같이 뇌에 손상을 입어 후유증으로 발작을 보인다. 나머지는 원인을 잘 모른다. 유전적이나 다른 원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스티브: 뇌전증 치료의 핵심은 발작 조절이다. 초기에 치료하면 발작을 완전히 억제할 수 있다. 대부분 발작은 짧게 나타나고 바로 정상으로 돌아온다. 증상이 경미하다고 생각해 방치하기 쉽다. 중요한 것은 발작하는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느냐다. 언제 어떻게 올지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전이나 수영을 할 때 발작을 한다면 위험성이 커진다.



 -손: 지속적으로 발작을 하면 뇌에 충격을 줘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발작도 점점 심해진다. 일상적인 활동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엔 의학이 발달해 뇌전증 환자의 70%는 약으로 발작을 조절할 수 있다. 발작 초기부터 적극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티브: 나머지 30%는 난치성 발작이다. 여러 가지 약으로 지속적으로 치료해도 발작이 제어되지 않는 경우다. 발작이 잘 조절되지 않아 증상이 악화돼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엔 난치성 발작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면서 부작용을 줄인 약(빔팻·한국유씨비제약)도 나왔다.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이 적고, 다른 뇌전증 약과 달리 인지장애가 거의 없다.



 -손: 젊은 사람도 뇌전증에 걸린다. 최근에 진료한 사람은 30대 펀드매니저였다. 몸이 돌아가는 형태의 발작을 자주 했다. 평소 힘을 주거나 하품을 해서 발작을 억제했다. 그런데 몸이 피곤하거나 술을 마시면 발작이 쉽게 제어되지 않았다. 그는 전문직업인이라 발작을 완전히 억제하길 원했다. 약을 7개나 먹었지만 가끔 발작을 억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 나온 약을 복용한 뒤 발작을 완전히 조절해 만족하고 있다.



 ▶스티브: 뇌전증 환자라고 하면 발작 때문에 학교나 직장생활을 제대로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간질환자가 많다. 치료만 잘하면 얼마든지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



 -손: 앞으로 뇌전증 치료에도 맞춤 시대가 온다. 확실히 타기팅할 수 있는 약을 만들 것이다.



 ▶스티브: 지금은 발작을 예측하지 못해 하루 2회 약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발작이 일어날 순간을 미리 파악해 예방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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