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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게릴라 첩보 … 이승만, 목포~부산 바닷길 피란

중앙일보 2012.06.25 03:00 종합 4면 지면보기
“다들 내 말 잘 들어. 내가 배멀미를 이기는 비결을 가르쳐 줄게.”


해군 『6·25 전쟁과 해군작전』 발간

 6·25 전쟁 초기 목포에서 해군함정을 이용해 부산으로 피란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심한 뱃멀미를 하던 프란체스카 여사와 수행원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비결이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님의 모습을 되살려 보게. 그리고 아랫배에 힘을 줘. 난 곤경에 빠지거나 위기에 처할 때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네. 그게 특효약이야.”



 해군본부가 6·25전쟁 62주년을 맞아 각종 증언과 기록들을 검증해 최근 발간한 『6·25 전쟁과 해군작전』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604쪽 분량의 책자엔 이 대통령의 피란 상황, 특히 19시간 동안 함정에서의 생활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 대통령 부부 일행이 해군 514정(320t급·정장 주철규 소령)에 오른 것은 전쟁 발발 일주일 만인 1950년 7월 1일 오후 4시. 6월 27일 서울을 떠난 이 전 대통령은 기차로 대구로 향했다가 대전으로 북상했다. 조금이라도 서울 가까이에서 전쟁을 지휘하겠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대전으로 피란한 정부는 부산으로 옮겨야만 했다.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려면 기차나 차량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통령 일행도 당초 차량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추풍령에서 남로당 지방조직과 게릴라들의 공격이 있을지 모른다는 첩보가 있었다.



 결국 대전~이리(현 익산)~목포까지는 기차로, 목포에서 부산까지는 해군 함정을 이용하는 우회로가 결정됐다. 이때부터 극도의 보안이 유지됐다. 목포에서 출항할 때 목적지를 진해항으로 정해 놓고, 가까이 가서야 항로를 부산으로 바꿨다. 진해까지 호위에 투입됐던 307정은 왜 진해까지 가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해상 피란에는 해군 514정과 309정(180t급·정장 김남교 소령)이 동원됐다. 이날 프란체스카 여사는 심한 파도로 배가 흔들려 출항 2시간 만에 쉬고 있던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는가 하면, 뱃멀미로 크게 고생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이 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이 정도 파도에 벌써 멀미를 하면 어떻게 하나. 억지로라도 참아야지”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또 프란체스카 여사와 비서진에게 “이럴 때는 인자했던 어머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거야”라며 조언했다는 증언도 소개돼 있다. 대통령 일행은 쌀밥에 김치와 된장국, 계란부침으로 선상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이들을 태운 함정은 뱃고동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조용히 부산항에 입항했다. 마중 나온 양성봉 경남도지사가 이 대통령에게 부산시민들을 위해 한 말씀 해 달라고 하자, 이 대통령은 “도망 나온 주제에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모두 관둬!”라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이 밖에 해군은 6·25전쟁 전 남북 간 해상 충돌, 전쟁기간 해군의 작전과 관련한 내용도 공개했다. 50년 9월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성공한 인천상륙작전(크로마이트 작전)은 당초 7월 ‘블루하트’ 작전으로 명명돼 실행할 예정이었다고 해군은 소개했다. 당시 북한군의 남진 속도가 워낙 빨라 낙동강 전선에 연합군 병력을 투입하는 바람에 2개월가량 늦어졌다는 것이다.



 또 49년 8월 북한군이 인천항에 정박해 있던 주한 미 군사고문단장(윌리엄 L 로버트 장군)의 전용보트를 훔쳐 가자, 이를 찾아오기 위해 함정 5척을 동원해 ‘몽금포 작전’을 벌였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 작전에서 북한과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으나, 북한군이 보트를 이미 평양으로 빼돌려 찾아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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